15일 밤 잠실종합운동장 올림픽주경기장 자체가 오선지가 됐고 밤하늘은 검은 캔버스가 됐다. 
 

현존 세계 최고의 밴드로 통하는 영국의 ‘콜드플레이’가 이날 결성 19년 만에 펼친 첫 내한공연 ‘현대카드 슈퍼콘서트 22 콜드플레이(COLDPLAY)’는 대형 야외공연장이 예술적 장치로 승화되는 순간이었다. 
 

서정적이면서 몽환적인 질감과 역동성의 양감을 지닌 사운드는 올림픽주경기장 곳곳을 음표처럼 부지런히 옮겨 다녔다. 
 

콜드플레이 공연의 특기할 만한 LED 발광 팔찌인 ‘자일로 밴드’가 화려한 주연 배우로 나서고 화려한 조명·불꽃·스크린 영상이 명품 조연 역을 한 빛의 색채의 명암은 마법과도 같았다. 
 

특히 이날 공연장에 운집한 5만 관객이 팔목에 착용한 ‘자일로밴드’는 무선 신호를 이용, 개별 또는 통일성을 갖고 여러 빛깔로 시시각각 변하며 진풍경을 만들어냈다. 

팔레트에 담긴 다양한 색채의 빛을 콜드플레이 음악이라는 붓으로 찍어 공연장 곳곳에 흩뿌리는 듯했다. 수시로 공중에 흩뿌려진 종이 가루들이 빛과 만나 나비 또는 새의 날갯짓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런 마술 같은 풍경은 잘 만들어진 음악이라는 마법 가루가 있어서 가능했다. 
 

이날 오후 8시6분께 마리아 칼라스 버전으로 유명한 푸치니 오페라 ‘잔니 스키키’의 대표 아리아 ‘오, 다정한 아버님’(O mio babbino caro) 녹음 음원으로 고조된 공연은 자이로밴드의 붉은 빛과 함께 이번 투어 타이틀인 ‘어 헤드 어 풀 오브 드림스’로 포문을 열었다. 
 

시작부터 합창은 당연했다. 화려한 불꽃의 굉음 속에 프런트맨인 크리스 마틴의 감미롭고 서정적인 목소리가 뚫고 나오자 콜드플레이가 내한했다는 꿈 같은 이야기가 마침내 현실로 다가왔다. 
 

자일로 밴드의 노란 불빛과 제목만으로도 현 시국에 위로가 되는 ‘옐로’가 이어지자 위로가 찾아왔다. ‘에브리 티어드롭 이스 어 워터폴(Every Teardrop Is a Waterfall)’을 들려줄 때 마틴이 태극기를 번쩍 들기도 했다. 감미로운 ‘더 사이언티스트(The Scientist)’가 이어졌고 ‘버즈(Birds)’에서는 타악기 사운드가 명징했다. 
 

한국 팬이 지난 13일 공항에서 쓴 코끼리탈이 등장하는 ‘파라다이스(Paradise)’가 울려 퍼질 때는 자일로밴드와 조명이 다양한 색채로 변하며, 형형색색의 황홀감을 안겼다. 

“오오오~”라는 합창 속에서, 콘서트 때마다 돌출무대를 힘껏 달리는 마틴은 이날도 여지없이 런웨이 같은 그 무대를 누볐다. 
 

세계 곳곳의 사람들에게 애정을 쏟아야 한다는 복싱 선수 무하마드 알리(1942~2016)의 연설이 후반부에 포함된 어쿠스틱 버전의 ‘에버글로(Everglow)’는 잔잔함으로 감동을 안겼다. 반면, ‘힘 포더 위켄드(Hymm For The Weekend)’는 일렉 사운드가 강하게 묻어 있어 공연장이 순식간에 클럽처럼 변하기도 했다. 
 

마침내 한국 팬들이 가장 아끼는 곡 중 하나인 ‘픽스 유(Fix You)’. 공연 전 기자들과 만난 드러머 윌 챔피언이 세월호 참사 3주기인 16일 한국의 슬픔과 공감하면서 연주하겠다고 밝힌 이 곡은 슬픔이 있는 사람들을 위로해주는 곡이다. 
 

서정성이 짙은 이 곡은 마틴이 전 부인인 할리우드 영화배우 기네스 펠트로가 부친상으로 힘들어했을 당시 그녀를 위로하기 위해 쓴 곡으로 알려졌다. 
 

공연 직전 인터뷰에서 “’픽스 유’를 부를 때마다 공연장에서 하늘을 본다”고 했던 마틴은 실제 이날 도입부에 무대에 누워 하늘을 보며 불렀다. “별을 보면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노래를 하게 된다”는 그의 마음이 보컬에 묻어났고 그 위로의 마음이 객석에게 가닿아 일부 팬들을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바로 이어진 곡으로 한국 팬들이 가장 사랑하는 노래 중 하나인 ‘비바 라 비다(Viva la vida)는 웅장함으로 드라마틱한 변환을 이뤄냈다. 
 

한 때 세상을 다스렸던 권력자의 쓸쓸한 최후에 대해 노래하는 이 곡은 ‘인생이여 만세’라는 뜻으로 최근 국내 시국과 맞물리며 큰 주목을 받았는데 지정석의 관객마저도 자리에서 일어나 번쩍 손을 들고 합창했다. 
 

‘어드벤처 오브 어 라이프 타임(Adventure of a Lifetime)’ 때는 플로어석에 형형색색의 애드벌룬이 떠다니며, 축제의 분위기를 더했다. 
 

마틴이 아닌 챔피언과 기타의 조니 버클랜드가 리드 보컬로 나선 ‘돈트 패닉’ 이후 ‘갓 풋 어 스마일 어펀 유어 페이스(God Put a Smile Upon Your Face)’를 선보였다. 이후 마틴이 싸이의 ‘강남스타일’ 언급 등을 살짝 녹여내 짧게 만든 ‘사우스 코리아 송(South Korea Song)’ 이후 다시 화룡점정이 시작됐다. 
 

가장 핫한 EDM 듀오 ‘체인스모커스’와 함께 부른 ‘섬싱 저스트 라이크 디스(Something Just Like This)’는 다시 한번 사운드와 색채의 마법을 소환했다. 
 

수퍼히어로 같은 특별함이 아닌 평범함을 원한다는 내용의 이 노래로 뭉클함을 안겨준 뒤 들려준 ‘어 스카이 풀 오브 스타스(A Sky Full of Stars)’는 별이 가득한 밤하늘을 공연장으로 끌고 들어왔다. 
 

실제 이날 밤하늘이 흐린 탓에 별이 거의 보이지 않았는데, 제목처럼 대형 스크린을 가득 채운 별들로 인해 올림픽주경기장은 낭만적으로 변했다. 5만개의 자일로밴드 불빛 역시 별빛처럼 보였다.
 

2시간 러닝타임의 피날레를 장식한 ‘업 & 업’은 마지막 곡으로 더할 나위 없었다. 대형 고래가 하늘에서 첨벙거리고 난민의 배가 욕조 안에 갇혀 있고 토성의 고리 위에서 자동차가 달리며, 화산 분화구에서 팝콘이 튀겨지고 있는 뮤직비디오가 대형 스크린을 통해 흘러나오고 그 위에 “우리는 해낼거야, 지금 함께 해낼 거야”라고 노래하는 마틴의 목소리가 겹쳐지는 순간 그 어떤 희망가보다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선사했다. 
 

이번 콜드플레이 내한공연은 지난해 11월 티켓 예매에서 4만5000석이 수분만에 팔려나가면서 화제가 됐다. 이에 따라 이튿날인 16일 같은 장소에서 한 차례 더 공연을 추가했는데 이 역시 지난해 12월 예매에서 모두 팔려나갔다. 예매를 위한 티켓사이트 동시접속자수는 무려 90만명에 달했다. 
 

양일간 9만명은 역대 내한공연 중 최대 규모다. 하지만 공연 직전 저렴한 가격에 시야 제한석을 오픈한 첫날 관객이 5만명까지 늘어나 기록은 더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15년 5월 같은 장소에서 첫 내한공연한 ‘비틀스’ 출신 폴 매카트니는 1차례 4만5000석으로 공연한 바 있다. 
 

이 같은 열기는 공연 당일 오전에도 입증됐다. 팬들은 아침부터 콜드플레이 내한공연 현수막 등이 걸린 올림픽주경기장 주변을 배경으로 기념사진 촬영을 했다. 
 

머천다이즈(기념품)를 파는 부스는 오전 11시부터 오픈했는데 오전 9시부터 이곳에서 줄을 늘어선 팬들은 한두명이 아니었다. 오전부터 수백명이 부스에서 티셔츠, 모자, 프로그램 등의 머천다이즈를 구매했다. 
 

마틴은 환호하는 한국 팬들을 향해 “세상에서 가장 놀라운 관객이었고 대단한 밤이었다”고 말했다. 멤버들과 함께 마지막 인사를 한 뒤 바닥에 놓여 있는 태극기에 입맞춤을 하기도 했다. 
 

흥분, 위로 그리고 희망까지 아우른 놀랍고 신기한 마법 같은 밤이었다. 자일로밴드의 불빛은 별빛처럼 계속 반짝였고 환경오염 방지를 위해 이 밴드를 반납한 이후에는 심장이 대신 쿵쾅거렸다.

저작권자 © 경기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