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 기자 /
 프로농구 ‘철인’ 주희정(40)이 20년간의 프로 선수 생활을 마치고 정든 코트를 떠났다.

주희정은 18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KBL센터에서 은퇴 기자회견을 열고 “은퇴 결정을 내린 순간부터 지금까지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당장이라도 휴가 끝나고 (동료들과) 훈련을 할 것만 같은 생각이 드는데 조금씩 마음을 비워내며 미래를 준비하는 마음으로 공허함을 채우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주희정은 아들 지우(7)와 함께 기자회견장을 방문했다. 삼성 이상민 감독과 이규섭 코치도 자리를 함께했다. 

주희정은 준비해 온 은퇴 소감문을 읽어 내려가며 뜨거운 눈물을 훔쳤다. 그는 “국내 프로 감독들의 장점만을 배우고 싶다. 여기에 나만의 노하우를 쌓아 후배들에게 도움이 되는 지도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 다음은 주희정과의 일문일답

- 은퇴 소감은.

▶ “많은 분들이 와주셔서 감사하다. 정신이 없어서 머릿속에 다 담지 못했다. 구단과 은퇴결정을 내린 소감부터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순간도 꿈을 꾸는 것 같다.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다. 마음의 정리가 되지 않는다. 언젠가 나도 은퇴를 하겠지 막연히 생각했다. 막연히 농구가 좋고 미쳐서 지금까지 살아왔다. 대체할 무엇이 지금까지 생각나지 않는다. 농구공을 갖고 노는 것이 즐거웠던 초등학교 시절 강동희 선수를 보며, 꿈을 키웠던 중학교 시절 하나뿐인 할머니를 호강시켜주려 죽도록 열심히 했던 고등학교 시절, 간절하고 성숙했던 대학교 시절, 일찍 입문해 20년을 보낸 프로시절들. 이제는 과거가 됐다. 프로에 와서 더 발전하고 성장하는 주희정이 되기 위해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나 자신과 힘든 싸움을 이겨가며, 여기까지 왔다. 농구인생에 후회는 없다. 항상 최선을 다했다. 눈을 감는 순간까지도 농구에 대한 열정은 놓을 수 없을 것 같다”

- 프로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프로 20년 동안 정말 생각나는 경기가 없다. 시간이 너무 빨리 흘러갔다. 많은 팀을 거쳤지만 삼성시절 통합우승(2001년)이 가장 잊을 수 없는 시절이다.”

- 한 시즌 더 뛸 것으로 예상됐는데.

▶ “아직도 내가 이 자리에 있다는 것이 솔직히 믿어지지 않는다. 당장이라도 휴가 끝난 다음에 훈련을 할 것 같은 기분이 계속 든다. 이제 조금씩 비우려고 준비하고 있다. 빨리 비워내야한다. 미래가 더 빨리 다가올 것이다. 공허함을 사로잡으면 안 될 것 같다”

- 은퇴 후 가장으로서 생활은.

▶ “지금 가장 머릿속에 생각나는 것은 아이들과의 약속이다. 아들이 1년 만 더 선수생활을 하면 안 되겠냐면서 울었다. 꼭 하겠다고 약속했었는데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해 마음에 남는다”

- 은퇴를 납득하지 못하는 분위기도 있다.

▶ “후배들은 프로이기 때문에 실력으로 먼저 보여줘야 된다고 생각한다. 결과는 기다려야 되는 입장이다. 프로선수니까 후배들은 나이가 들수록 눈치를 보지 말고 프로답게 실력으로 보여주고 구단의 인정을 받았으면 한다”

- 가장 애착이 가는 기록은.

▶ “운이 좋아서 많은 기록을 갖고 있다. 다 소중한 기록들이다. 1000경기를 이룬 것이 첫 번째 애착이 간다”

- 후배 선수들에게 충고하고 싶은 이야기는.

▶ “나는 개인적으로 학창시절부터 무식하게 훈련을 해왔다. 프로 때도 슛이 없는 반쪽짜리 선수라고 불린 적도 있다. 무작정 열심히 했다. 요즘은 시대도 많이 바뀌었다. 그냥 막무가내로 노력하기보다 생각을 하면서 경기에 도움이 될 수 있는 훈련을 하길 바란다. 타 팀 선수가 잘하는 기술이 있다면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도록 배우고 느껴야 한다. 후배들에게 끊임없이 자기개발을 위해 생각하고 노력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 본인이 그리고 있는 지도자상이 있다면.

▶ “일단 명장 감독님들의 장점만을 배우고 싶다. 몇 년 전에 NBA 중계를 봤다. 스티브 내쉬가 피닉스에 있을 때 봤는데 마이크 댄토니 감독이 계셨다. 상대팀이 공격 횟수가 40번이면 피닉스는 70~80번 정도를 하는 것을 봤다. ‘저 부분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고 내가 원하는 농구 스타일이다’라고 생각 했다. 만약에 지도자로 돌아온다면 그 감독처럼 전술을 한국에 맞게끔 다이나믹하고 재미있게 팬들이 즐거워할 정도의 농구를 하는 지도자가 되고 싶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선수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지도자다”

- 떠오르는 인물 중 한 명이 할머니다. 할머니께 하고 싶은 말은.

▶ “너무나 정말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다. 질병이 심각하신데도 불구하고 손자 하나 잘 키우기 위해 고생을 너무 많이 하셨다. 정말 효도다운 효도를 못한 것 같다. 평생 죽을 때까지 가슴이 아플 것 같다. 할머니에 대해서는 늘 생각한다. 매경기에 마음 속으로 ‘이기게 해달라고 도와달라’고 빌었다. 이제는 할머니 얼굴조차 머릿속에 잘 생각이 나지 않지만 매일매일 보고 싶고 매 경기 때마다 기도한다. 나중에 할머니 곁에 간다면 그 때는 잘해드리고 싶다”

-목표 중에 이룬 것도 많지만 못 이룬 것도 있을텐데.

▶ “원없이 했다. 한 시즌, 한 시즌 지날 때마다 목표가 새롭게 생겼다. 기록적인 면을 말한다면 예전에는 트리플더블 10번을 채우고 은퇴하겠다고 했는데 못 이뤘다. 아쉬움보다는 미련이 남는다” 

-위기의 프로농구에 던지고 싶은 메시지는.

▶ “팬들이 경기장에 많이 찾아주신다면 농구의 발전이 더 많아질 것이다. 그 전에 선수들이 재밌는 경기를 하면서 팬들의 눈을 즐겁게 해준다면 한국농구가 발전할 것이다. 이기는 것이 첫 번째지만 선수들도 개인기량을 향상시킨다면 팬들도 많아질 것이다”

-앞으로 구체적인 지도자 계획은.

▶ “아직 구단과 상의한 것이 없다. 차차 하나씩 준비해나갈 것이다. 당분간 아이들과 즐기겠다. 1학년 막내 아들이 농구를 상당히 좋아한다. NBA 농구도 꾸준히 시청하고 있다. 아들은 농구선수가 꿈이다. 초등학교 5학년이 돼도 변함이 없으면 꿈을 이뤄주겠다고 했다. 아빠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 되고 NBA에 진출할 실력이 된다면 뒷받침하겠다”

저작권자 © 경기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