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제훈(33)은 “매순간 노심초사 했다”고 말했다. 영화 ‘박열’(이준익)에서 그가 연기한 독립운동가 박열은 살아 날뛰는 듯한 인물이다. 멋대로 자란 수염에 산발한 머리, 뜨거운 결기 속에서도 유지되는 유머, 박열은 이전에 우리가 봤던 단정한 이제훈과는 꽤나 멀리 떨어진 캐릭터다.
 

그가 ‘박열’ 시나리오를 받은 건 지난해 11월 중순이다. 본격적인 촬영에 들어간 게 올해 1월 초인 만큼 이제훈은 두 달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박열이라는 인물이 돼야 했다.

“고강도의 집중력이 필요했어요. 후회하지 않는 연기를 해야 하는데, ‘내가 할 수 있을까’에 대한 압박과 부담이 심했죠. 지나간 연기를 되돌릴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영화는 단 24회차 만에 모든 촬영을 마쳤다. 다음달 개봉을 앞둔 영화 ‘군함도’가 120회차인 점을 감안하면 굉장히 짧은 기간이다.
 

이제훈은 마지막 촬영을 마치고 눈물을 흘렸다. 그는 ‘박열’에 대해 “일반적인 시나리오는 아니었다”고 했다. “상업적인 측면이 눈에 들어오기보다는 이 영화의 가치와 의의를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준비 시간이 짧은 것뿐만 아니라, 연기 자체에 부담감이 생겼습니다. 이전 작품들을 할 때와는 다른 진중함 같은 게 있었던 거죠.”
 

영화는 박열이 지난 1923년 일본 도쿄에서 ‘불령사’(不逞社)라는 단체를 만들어 활동하던 시기를 다룬다. 일본 수뇌부가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박열을 희생양 삼아 체포하자 그는 황태자 암살계획을 자백하고 대역죄인을 자처한다. 그리고나서 박열은 오히려 언론을 이용해 일본 제국주의의 민낯을 드러내 권력을 압박한다.

“노력했어요. 대사 자체가 대부분 길었고 일본어도 있었죠. 일본어로 정보 전달만 하는 게 아니라 감정도 함께 전달해야 했습니다. 쉬지 않고 연습했어요. 제가 매순간 일본어를 읊고 있으니까 주변 사람들이 노이로제에 걸릴 것 같다고도 했거든요.”
 

이제훈은 모든 촬영을 마치고 한 달 동안 함께한 스태프의 얼굴을 하나하나 보고 눈물을 쏟았다. “제가 박열을 만든 게 아니고 그분들이 만들어줬더라고요.”
 

그는 “물리적인 시간은 짧지만 ‘박열’은 앞으로 연기 인생에 분명히 큰 영향을 줄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아직 그게 뭔지 구체적으로 말할 수 없다”며 “앞으로 고를 작품들이 ‘박열’의 영향 아래 있게 되지 않겠느냐”고 했다.
 

이제훈이 박열을 연기하는 데 어려움을 느낀 건 짧은 준비 시간과 시대가 주는 무거움도 있지만 박열이라는 인물이 쉽게 규정하기 힘든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모든 권력에 대항한 무정부주의자이면서 조선인을 마음 속 깊이 사랑한 민족주의자였으며, 동지이자 연인이었던 가네코 후미코를 열렬히 사랑한 낭만주의자였다.
 

이제훈은 “이 작품을 하기 전까지 박열이 누구인지 몰랐다”고 고백하며 “관객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말했다. “ ‘박열’은 우리의 뿌리를 알 수 있는 과정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편하게 보면서 즐기다가도 강렬한 감정을 느끼게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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