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설을 앞두고 한 PR업체는 거래업체 관계자들에게 유정란(계란) 10알들이 2판씩을 설 선물로 일괄 전달했다. 김영란법의 선물 가액한도 (5만원)를 지키고 AI(조류인플루엔자)로 인해 계란 값이 폭등해 주부들이 계란 선물을 반긴다는 점도 반영했다. 

#2. A 제과업체는 김영란법 시행 이후 처음 맞은 이번 설명절에 거래업체 관계자들에게 과자와 라면을 담은 선물세트를 보냈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2~3만원 정도다. 김영란법도 철저하게 지키는 한편 명절에 가족 친지들이 모인다는 점을 고려할 때 과자 선물세트도 유용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3. 한 속옷 회사는 지난해 명절까지는 여성용 속옷 한세트씩을 선물했지만 올 설에는 여성용 스타킹을 설 선물로 보내기로 했다. 명절 선물로는 다소 어색한 감도 있지만 김영란법도 준수하고 실생활에 유용하다는 판단에 설 선물로 정했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이 시행된 이후 명절 선물 풍속도가 확 바뀌고 있다. 

정형화된 설 명절 선물세트들이 점점 자취를 감추고 있는 대신 마음이나 의미를 담은 선물이 전달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설 선물로 인기가 높은 한우, 굴비, 청과 선물세트가 김영란법에서 정한 가액범위를 대부분 넘는다는 점도 설 선물 풍속도를 바꾸는 데 일조하고 있다. 

이를 반영하 듯 계란, 스타킹, 과자선물세트, 귤 10개, 사과 5개, 주방용 앞치마 등 금액으로 따지면 1~2만원, 많아야 2~3만원 상당의 선물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예전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품목들이 명절 선물로 등장한 것이다.

아예 설 선물을 하지 않는 업체들도 상당수다. 

지난해 명절 때까지는 설 선물을 주고받으며 한 해동안 고마웠던 마음을 거래 업체에 전달했지만 김영란 법이 시행된 이후 설 선물을 안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A그룹은 그룹 차원에서 이번 설 명절 선물을 하지 않키로 했다. 가액 범위내에서 명절 선물을 해도 된다는 유권해석은 있었지만 김영란법이 시행되고 있는 가운데 설 선물이 자칫 업무 연관성 부분에 저촉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어 설 선물을 포기했다. 

김영란법으로 인한 설 선물 풍속도의 변화는 유통업계 매출에도 직접적인 변화를 주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롯데백화점이 지난 2일부터 10일까지 9일간 진행한 설 선물세트 판매 매출을 살펴보면 5만원 이하 선물세트의 경우 매출 증가율이 45% 이상으로 나타났다. 축산부분 매출이 10%, 청과가 12% 매출 증가율을 기록한 것과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신세계백화점도 이번 설 명절을 맞아 판매한 설 선물세트 중 5만원 이하 상품 매출은 작년보다 141%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소셜커머스 위메프에 따르면 지난해 12월26일부터 진행하고 있는 ‘설레는 선물대전’에서 판매 수량 기준으로 2만원대 이하 상품이 90% 이상 판매됐다. 

판매 수량을 기준으로 5000원 이하부터 2만원대 이하 상품이 전체 판매된 상품 중 92%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했다. 가격대별로는 5000원 이하 11%, 1만원 이하 39%, 1~2만원대 42%, 3~4만원대 5%, 5만원대 이상 3%이다. 

김영란법이 명절 선물 풍속도에 일대 ‘파란’을 몰고 왔지만 소비위축은 갈수록 현실화되고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소비절벽’ 고착화로 소상공인들과 국내 농수축산 농가들이 파산위기에 내몰릴 수 있다는 것이다. 

소상공인연합회 최승재 회장은 “김영란법을 개정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종합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라며 “김영란법이 도입된 이후 국산 농수산물이 외면받고 수입 농수산물이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는 것은 법의 취지가 변질된 것”이라고 강력비판했다. 

이어 “정부와 국회가 금액에 함몰돼 5만원 이상은 뇌물이다라는 식의 이분법적인 사고를 하면 안된다”며 “금액은 중요하지 않다. 김영란법 시행으로 인해 쓰러져가는 농수산축산업계와 화훼업계를 살릴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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