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성 23주년을 맞은 ‘모던록 대부’ 밴드 ‘언니네이발관’의 리더 이석원(46)이 돌연 가요계 은퇴 선언을 했다. 

이석원은 지난 7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글을 남겨 “미안해요. 나는 아주 오랫동안 이 일을 그만 두길 바라왔다”고 밝혔다. 

지난 5월 언니에 이발관의 마지막 앨범으로 예고한 6집 ‘홀로 있는 사람들’을 발표했는데 은퇴 수순을 위한 절차였던 셈이다. 

마니아층을 보유한 이석원 “어딘가에 내 음악을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하면 그런 마음(은퇴)을 털어놓긴 쉽지 않았다”며 “그래서 이번 한번만 이번 한장만 하다가 세월이 이렇게나 흘렀다”고 했다. 

그는 “그동안 실천하지 못한 계획들도 있고 마지막으로 무대에 서서 인사드리고 떠나면 좋겠지만 여기서 멈출 수밖에 없었다”며 “좋아하는 음악을 할 수 있어서 행복해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저는 음악이 일이 돼버린 게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래서 항상 벗어나고 싶어했기에 음악을 할때면 늘 나 자신과 팬들에게 죄를 짓는 기분이었다”고 털어놓았다. 

이석원은 “더이상은 그런 기분으로 무대에 서고 싶지 않음을, 이렇게밖에 맺음을 할 수 없는 제 사정을 이해해주면 좋겠다”며 “이제 저는 음악을 그만 두고 더이상 뮤지션으로 살아가지 않으려 한다”고 했다. 

다만, “훗날 언젠가 세월이 정말 오래 흘러서 내가 더이상 이 일이 고통으로 여겨지지도 않고 사람들에게 또 나 자신에게 죄를 짓는 기분으로 임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온다면 그때 다시 찾아 뵙겠다”고 덧붙였다. 

지난 1994년 결성된 언니네이발관은 1집 ‘비둘기는 하늘의 쥐’(1996), 2집 ‘후일담’(1998), 3집 ‘꿈의 팝송’(2002), 4집 ‘순간을 믿어요’(2004), 5집 ‘가장보통의 존재’(2008)까지 희대의 명반을 내며 마니아층을 구축했다. 

특히 섬세함과 예민함을 넘어 독하다는 이야기까지 듣는 감수성 짙은 이석원의 멜로디와 노랫말 그리고 그의 완벽성이 팀의 구심점 역할을 해왔다. 한국어 가사를 가장 잘 쓴다는 평가를 받는 이석원은 에세이 ‘보통의 존재’, 장편소설 ‘실내인간’ 등의 베스트셀러를 펴낸 작가이기도 하다.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는 “델리 스파이스와 더불어 한국 록 신에 모던 록을 도입했다”며 밴드 이름부터 가사까지 영어를 거의 쓰지 않고 오직 한국어로 창작활동이 가능함을 증명했으며, 앨범을 낼 때 마다 멜로디의 중요성을 환기시켰다”고 봤다. 

무엇보다 TV에 얼굴에 드러내지 않고도 앨범과 공연만으로 마니아층을 보유한 점도 특기할 만하다. 김 대중음악평론가는 “일체의 방송 활동 없이 앨범을 발매하고 공연을 하는 것만으로도 스테디셀러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줬다”고 했다. 

언니네 이발관은 특이한 밴드 결성 이야기로 인디 신에서 전설처럼 회자되는 팀이다. 이석원은 지난 1990년대 초 PC통신 내 음악 동호회가 활성화됐을 당시 독설가로 유명했다. 

다른 밴드를 가감 없이 비판하던 그는 자신이 음악을 업으로 삼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알게 되면 비난받을까 두려워 자신이 언니네 이발관이라는 밴드의 리더라는 거짓말을 했다. 당시 존재조차 하지 않던 이 밴드의 이름은 이석원이 본 성인영화 제목에서 따왔다고 한다. 

당시 악기조차 다루지 못했던 이석원을 비롯한 멤버들은 혹독한 훈련 끝에 연주력을 갖춘 건 물론 자신들의 곡을 작곡, 작사하는 완전한 밴드의 꼴을 갖추게 된 것이다. 

인디신을 주름잡는 뮤지션들도 배출한 밴드다. 결성 당시 팔다리가 길다는 이유로 드러머로 발탁된 유철상은 현재 한국 레게 솔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김반장이다. 듀오 ‘가을방학’ 등의 멤버로 감수성 짙은 멜로디가 일품인 정바비(정대욱)도 이 팀의 초창기 멤버다. 

마지막 앨범인 이번 6집은 언니네 이발관의 역사를 정리할 만하다. 수록곡 ‘누구나 아는 비밀’에 아이유가 피처링을 했다는 이유로 혹자는 언니네이발관이 변심했다고 뾰로통하지만 그들이 세상에 마지막으로 내보인 9개의 곡, 아니 풍경은 충분히 피날레를 장식하기에 충분하다.  

언니네이발관이 23년 걸어온 길의 정서를 관통하는 트랙인 첫 번째 곡 ‘너의 몸을 흔들어 너의 마음을 움직여’가 특히 그렇다. “나 이렇게 살아가게 됐지 /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빈손으로”라는 노랫말은 ‘황홀한 폐허’다.

이대화 대중음악평론가는 “이석원이 소속된 언니네 이발관은 홍대 신이 지금의 존재감을 갖게 만든 일등공신 중 하나”라며 “특히 2집과 3집은 음악적으로 좋았을뿐만 아니라, 홍대 언더그라운드 신의 대외적인 인상을 결정지은 대표작들”이라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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