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살인자의 기억법’은 원신연 감독과 설경구 등 출연 배우들이 수차례 밝힌 것처럼 원작 소설과 다른 작품이다. 

영화의 각색 방향은 스릴러다. 이 과정에서 남은 건 딸을 가진 치매에 걸린 범죄자라는 설정 하나다. 주인공의 반사회적인격장애는 사라졌고 허상에 가까운 두 인물이 살아났다. 그러면서 원작에는 없던 대결 구도가 발생한다. 

소설과 영화를 확연히 구분하는 또 한 가지는 주인공을 추동하는 강력한 감정이 하나 있다는 점이다. 바로 부성애다.

김병수(설경구)는 알츠하이머 판정을 받고 투병 중이다. 그는 평생 수의사로 일하며, 딸과 함께 살아왔지만, 병세가 악화해 일도 그만둬야 하는 상황과 마주한다.
평범한 노인처럼 보이지만 그는 사실 연쇄살인마다. 평생 사람을 죽이며, 살아오다가 십수년 전 한 사건 이후 살인을 멈췄다. 그런 그 앞에 젊은 살인마 민태주(김남길)가 나타난다. 우연히 그를 알게 된 김병수는 민태주가 자신과 같은 연쇄살인마임을 직감하고 딸 은희(김설현) 주변을 맴도는 그를 제거하기로 결심한다.

같은 설정을 통해 소설은 인간 심연으로 들어가고 영화는 장르물로 나아가니 영상이 글을 얼마나 잘 구현했는지 따지는 건 무의미하다. 그보다는 영화가 가진 스릴러로서 매력을 짚어봐야 할 텐데 이 지점에서 ‘살인자의 기억법’은 보통 이상을 해내지 못한다. 단순화를 무릅쓰고 말하자면, 각색 과정에서 빼낸 건 기억이고 더한 건 사랑이다. 

이 작품을 전진케 하는 건 딸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이다.

김영하의 ‘살인자의 기억법’과 원신연의 ‘살인자의 기억법’의 차이는 치밀함에서 발생한다. 소설을 스릴러 영화로 변형한 것을 문제 삼을 수는 없다. 중요한 건 일단 정한 방향으로 어떻게 나아가느냐다. 원신연의 영화가 김영하의 소설을 뛰어넘지 못했다는 건 소설을 살려내지 못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영화가 소설보다 덜 집요하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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