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포크음악의 대부’ 조동진(1947~2017)의 ‘행복한 사람’(1979)은 지난 1980~90년대 청춘을 산 사람에게는 회고담이다. 지난달 29일 세상과 작별한 고인의 빈소에서 나지막하게 울려 퍼진 이 곡은 남은 자들의 슬픔을 달래는 ‘위로가(歌)’이기도 했다. 

지난 2010년대를 사는 청춘에게 ‘행복한 사람’은 바로 지금이다. “울고 있나요 당신은 울고 있나요 / 그러나 당신은 행복한 사람”이라는 노랫말은 팍팍한 인생에 대한 ‘치유가(歌)’다. 싱어송라이터 겸 작사가 조동희(44)의 목소리로 기억되고 있다. 

지난 1980년대와 2016년을 오간 타임 슬립 드라마 ‘시그널’(2016)에 곡이 삽입됐는데 조동진이 아닌 조동희의 목소리였다. 아득하게 먼 곳으로부터 들려오는 듯한 그녀의 목소리는 어느새 마음에 스며들어 여기를 노래한다.  

조동희는 조동진의 동생이자, 전설처럼 회자되는 포크 듀오 ‘어떤날’의 멤버였던 조동익(57)의 동생이다. 영화 ‘철조망’(1960)을 만든 조긍하(1919~1982) 감독의 막내딸이기도 하다. 

본인의 이름만으로 홀로 서는 것이 아티스트의 자존심이다. 그럼에도 조동희는 ‘누구의 동생’, ‘누구의 딸’이라는 수식에 개의치 않았다. 자신의 오빠·아빠지만 다른 누구나처럼 예술적 업적을 이룬 아티스트로 대했다. 이들에 대한 자부심 그리고 자신 안에 바로 서 있는 자존감이 있어 가능했다. 

지난 9일 부암동에서 만난 조동희는 “조동진·조동익의 영향을 정말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지난달 29일 오빠 조동진을 떠나보내고 마주한 자리였다. 

“동진이 오빠가 돌아가시고 난 뒤 새삼 돌아보니까 비슷한 면이 많더라고요. 록밴드로 음악 경력을 시작했고 핑크 플로이드도 엄청 좋아했어요. 다른 사람에게 작업한 곡을 주다 자신의 앨범을 뒤늦게 나온 것도 같죠”

음악가 조 씨 집안 나아가 한국 대중음악계의 평행 이론이다. 조동진은 지난 1966년 미8군 밴드 멤버로 음악을 시작했다. 밴드 ‘쉐그린’ ‘동방의 빛’에서 리드 기타를 맡아 연주뿐만 아니라, 작곡에서도 소질을 드러냈다. ‘행복한 사람’이 포함된 1집(1979)으로 한국 서정주의 혹은 자연주의 포크의 서막을 썼다. 

조동희는 지난 1993년 김정민 1집 수록곡 ‘다시 만나는 그날까지’로 작사를 시작했다. 동네 오빠들이었던 작사가 하해룡, 밴드 ‘플라워’의 고유진이 “글 잘 쓴다”고 해 한번 지어본 노랫말이었다.

같은 해 가수 조규찬의 1집 수록곡 ‘조용히 떠나보내’를 통해 제대로 작사가 이름을 올렸다.   

지난 1998년 조동진이 이끈 음악공동체 ‘하나음악’ 옴니버스 앨범 ‘뉴페이스’에 참여하면서 싱어송라이터로 데뷔했다. 2002년 신윤철의 밴드 ‘원더버드’에 합류, 2집에서 보컬·작사·작곡으로 활약했다. 그리고 음악을 시작한 지 18년 만인 2011년 첫 솔로 앨범 1집 ‘비둘기’를 내놓았다.  

“저도 몰랐는데 오빠가 했던 이야기와 비슷한 이야기를 저도 하고 있는 거예요. 오빠의 피가 흐른 줄도 몰랐죠”

조동희는 어린 시절부터 동요가 아닌 조동진 1집을 듣고 컸다. 

조동희는 오빠를 잃은 충격에도 고인의 장례는 물론 여러 일을 도맡아했다. 오는 16일 오후 7시 한전아트센터에서 열리는 ‘조동진의 꿈의 작업 2017-우리 같이
있을 동안에’도 그녀의 손길이 가득 묻어 있다. 

지난 6월부터 조동희가 대표를 맡은 음악 기획사 푸른곰팡이의 레이블 공연이다. 조동진의 곡 ‘그’를 시타르 연주함께 들려주는 조동희를 비롯해 장필순, 한동준, 더버드, 이규호, 정혜선, 오소영, 소히, 새의전부, 오늘 등이 나온다. 이병우가 스페셜 게스트다. 

조동진은 방광암 투병 가운데도 이 무대에 오르기 위해 준비 중이었다. 고인의 13년 만의 콘서트 무대로 기대를 모았다. 20년 만인 지난해 발매한 6집 ‘나무가 돼’로 여전히 음악적 역량을 과시한 그였다. 자연주의 서정성을 여전히 머금은 지난 20세기의 포크가 21세기에 위대한 귀환을 했다. 올해 2월 ‘제14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올해의 앨범’상을 받았다. 

이번 공연은 푸른곰팡이 소속 가수들의 합동공연 형식이었다. 조동진은 ‘행복한 사람’과 ‘나뭇잎 사이로’ 같은 대표곡과 함께 6집 수록곡 ‘천사’를 부르려 했다. 지난 2014년 먼저 떠났고 지금은 함께 영면한 아내를 그리워하며, 만든 곡이다. 고인의 아내 곁에 잠든 이후 이날 공연은 고인에 대한 헌정과 추모 무대로 꾸며진다.

조동희는 “공연을 해야 될 지 말아야 할 지 망설였는데 빈소에 팬들이 정말 많이 왔다”며 “옛날 편지를 가지고 오신 분들도 계셨어요. 이미 공연 티켓을 산 팬분들이 공연을 꼭 해줬으면 좋겠다고 해서 진행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본래 이번 공연은 올해 예정에 없던 것이다. 오는 12월29~30일 고양 아름누리 새라새극장에서 ‘푸른곰팡이 연합공연’이 주 무대였다. 하루는 조동진 단독 공연, 하루는 푸른곰팡이 레이블 공연이었다. 레이블 공연에 현재 외부에 있지만 유명해진 뮤지션을 충분히 부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후배들에게 더 기회를 줘야 한다는 조동진의 말을 조동희는 기억해냈다. 

추모 무대가 된 돌아오는 공연은 심장이 약하던 조동진의 병세가 갑자기 더 기울면서 마련한 공연이었다. 좌석은 이미 모두 팔려나갔다. 조동진은 하늘나라로 떠나기 전날 매진 소식을 들었다.

조동희는 “오빠가 이번 공연에 누가 오겠냐고 말씀하셨거든요. 매진된 사실을 알고 돌아가셔서…”라고 말했다. 

이번 추모 공연 당일에는 로비에서 조동진 관련 전시가 진행된다. 특히 조동진의 6장의 리마스터링 앨범이 공개된다. 문학평론가 황현산, 시인 나희덕, 음악 평론가 신현준·성기완·박준흠·최지선·김영, 시인 이원 등의 비평집도 포함된다. 

조동희는 “오빠에게 드리는 마지막 선물”이라고 했다. “우리 대중음악계에서 다른 것과는 비교 불가한 박스세트를 만들고 싶었어요. 제 모든 인맥을 동원했는데 내로라하는 음악평론가, 문학평론가, 디자이너들이 그림자처럼 많은 도움을 주셨어요. 각자 분야에서 일류분들인데 무일푼으로 도움을 주셨죠. 무엇보다 ‘조동진에 대한 연대기’가 정리가 잘 돼 있어요”

푸른곰팡이의 전신은 하나음악이다. 조동진이 이끈 작가주의 음악공동체였다. 이곳을 통해 김광석, 유재하, 장필순, 김현철, 조규찬, 이소라, 한동준, 유희열 등이 직간접적으로 세상에 소개됐다. 조동진은 하나음악 이전에 싱어송라이터를 양성한 지난 1980년대 동아기획에 몸담으면서 들국화, 장필순을 말 없이 도왔다. 

하나음악은 특히 상업적인 색깔이 없는 한국에서는 전례가 없는 레이블이었다. 소속 뮤지션들이 오직 음악에만 집중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조동희의 어린 시절 음악 놀이터이기도 했다.

“지금은 너무나 유명해진 분들이 그곳에서 항상 합주를 하고 있었어요. 그 가운데서 매일 놀았죠. 스피커의 마이크 단자에 헤드폰을 꽂으면 소리가 나와 노래를 했는데 오빠가 ‘집안 망신시키지 말라’고 핀잔을 주기도 했어요”

서울예대 영화과를 나온 조동희는 부친처럼 영화에 뜻을 두고 있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감독이었지만 예술을 탄압하는 억울한 일에 휘말려 영화 사업에 실패한 뒤 세상을 뜬 부친의 명예를 회복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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