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종방한 tvN 드라마 ‘명불허전’(극본 김은희, 연출 홍종찬)은 로맨스 코미디에 판타지(타임슬립), 메디컬 등 다양한 장르를 융·복합한 드라마다. 

장르별 고정 팬이 있는 만큼 이들을 모두 TV 앞에 앉히면 ‘대박’을 기대할 수도 있으나 동시에 모두의 외면을 받아 ‘쪽박’도 못 챙길 가능성도 있었다.

‘비밀의 숲’ 후속으로 지난 8월12일 출발한 이 드라마는 첫날 시청률은 2.7%(닐슨코리아, 유료플랫폼 가입 가구 기준)에 그쳤으나 거의 매회 자체 최고 시청률을 경신할 정도로 상승세를 이어갔다. 마침내 최종회 시청률은 6.9%에 달하며, ‘비밀의 숲’(6.7%)을 넘어서 대성공을 거뒀다. 

그 중심에 ‘배우’가 있었다.

남주인공인 조선 제14대 선조(1552~1608) 때 의원 ‘허임’을 맡아 호연을 펼친 김남길의 부담감도 대단했겠지만 여주인공인 2017년 한국의 의사 ‘최연경’을 열연한 김아중이 짊어진 무게는 분명 그보다 더 했을 것이다.  

실제 김아중은 연기하기가 정말 어렵다는 흉부외과 의사 역할로 메디컬에 처음 도전한 데다 데뷔 초인 지난 2004년 KBS 2TV 드라마 ‘해신’ 출연 이후 장장 십수 년 만에 사극 연기를 다시 했다. 

로코 역시 오랜만이었다. TV 드라마에서는 로코를 10여 년 전 신인 시절에 한 뒤 주로 장르물(SBS TV ‘싸인’(2011), ‘펀치’(2014), ‘원티드’(2016)) 주연을 맡았다. ‘장르물 여신’ ‘장르 퀸’ 등으로 불릴 정도다. ‘미녀는 괴로워’(2006)가 출세작이다 보니 충무로에서는 ‘로코 퀸’으로 통하지만 ‘캐치미’(2013) 이후에는 로코를 하지 않았다. 

처음 해보거나 처음 하는 것과 마찬가지거나 오랜만에 하는 것 일색이었으나 김아중은 뛰어난 연기력으로 ‘AI(인공지능) 로봇’처럼 차가웠던 의사가 따뜻하고 인간미 넘치는 의사로 변모하는 과정을 잘 표현해냈다. 

당연히 김아중을 향해서도 호평이 쏟아졌다. 

최근 서울 강남구 신사동 한 카페에서 만난 김아중은 이를 아직 실감하지 못 하는 눈치였다.

“방송이 끝난 때가 추석 연휴여서 가족과 보냈어요. 친척 언니, 동생들을 만나 드라마 얘기를 좀 했을 뿐이죠. 그래도 드라마 관련 기사에 붙은 댓글에서 ‘김아중, 장르물 때려치우고 로코만 해야 한다’ 등 좋은 반응이 많아 기뻐요”

로코가 잘 되려면 기본적으로 남주인공은 멋있고 여주인공은 예뻐야 한다. 그래야 시청자가 ‘환상’에 빠지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김아중은 이 드라마 제목처럼 명불허전(名不虛傳)이었다. 첫 회에서 클럽에서 춤출 때의 섹시한 모습은 말할 것도 없고 의사 가운이나 평상복 차림도 출중했다. 

연기 칭찬이 이어지자 김아중은 “정말 그건 아니다”라며 자세를 낮추며, 공을 제작진에게 돌렸다.

“촬영 감독님, 조명 감독님을 향해 몇 번이라도 절하고 싶을 정도예요 정말 예쁘게 찍어주셨거든요. KBS 2TV 드라마 ‘그저 바라보다가’(2009) 이후로 ‘예쁘다’는 얘기를 처음 들어봤어요. 이제는 나이를 먹어 내세울 것도 없는데. 정말 감사하죠”

흉부외과는 국내 메디컬 드라마의 ‘단골 진료 과목’이다. 그만큼 매의 눈으로 지켜봤을 많은 시청자가 김아중의 흉부외과 의사 연기에 “이 드라마가 로코라는 것을 잊게 만들 만큼 발군이었다”고 입을 모으며, ‘엄지 척’을 한다. 

김아중은 “작품 들어가기 전에 한 병원 흉부외과에서 일주일가량 살다시피 하며, 의사들이 어떻게 생활하는지를 지켜봤어요. 아침 콘퍼런스, 회진은 물론 하루 일곱 차례 수술 참관 등등을요. 심지어 이머전시 콜(Emergency Call)이 뜨면 의료진과 함께 정신없이 달려갔고 심장 적출이나 이식 수술도 지켜봤죠”

매사에 겸손한 그도 스스로 만족스러웠는지 이야기를 아끼지 않았다. 

“수술방에서는 의사들도 많이 긴장한다는데 (물론 연기였지만) 저는 편안했어요. 수술방에 워낙 많이 가서 그랬나 봐요. 진짜 수술방에 들어가시는 간호사 분이 촬영 현장에서 오셔서 도와주시는데 그분이 ‘그동안 메디컬 드라마 자문을 많이 나가봤지만 실제 수술 순서를 이렇게 꿰고 있는 사람은 (김아중이) 처음이다. 수술은 건별로 다른데 각 수술이 어떻게 진행하는지 알고 하는 것 같아 놀랍다’고 하셨답니다. 호호호”

이러다 몇 년 뒤 배우가 아닌 ‘화제의 의대 신입생’으로 인터뷰하게 되는 것이 아닌지 겁이 덜컥 날 정도였다. 김아중의 학구열이 남다르다는 것을 익히 알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김아중은 의대 진학보다 의사 연기 재도전을 선택했다.

“이번 작품에서는 한의학과 같이 나오다 보니 시간이 부족해 생명을 구하기 위해 분초를 다투는 응급 상황 등 흉부외과를 깊이 있게 그려내지
는 못 했어요. 그래서인지 아쉬움이 남습니다. 의사 캐릭터를 한 번 더 해보고 싶어요. 흉부외과든, 뭐든 상관없고요”

김아중이 이 작품을 통해 도전한 것은 장르뿐만 아니다. 지상파가 아닌 첫 케이블 채널 드라마 도전이기도 했다.

“평소 차별화한 좋은 작품이 있으면 어디든 출연하겠다는 생각이었어요. 그래서 이번 작품도 (대본을)읽어보고 ‘현대의 흉부외과 의사가 임진왜란 시절로 간다’는 얘기가 재미있어서 바로 선택했죠. 이번에 tvN 드라마를 처음 해보니 지상파 드라마와는 매우 다르더라고요. 프리 프로덕션만 2개월 남짓을 했어요. 현장 스태프뿐만 아니라 뒤에서 일하는 스태프들도 좋은 작품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프리 프로덕션부터 정성을 쏟더군요. 마치 드라마와 영화의 반반 작업 같았다고나 할까요. 이래서 ‘tvN 작품이 좋다’고 하는구나 싶었어요. tvN 작품을 또 하고 싶으냐고요? 불러만 주시면 감사하죠”

김아중은 ‘명불허전’뿐만 아니라, 지금껏 출연한 많은 작품에서 대부분 성공을 거뒀다.

전작 ‘원티드’도 시청률에서 적잖이 아쉬움을 남겼으나 ‘웰메이드 드라마’라는 평가를 받았다. 당연히 ‘선구안’이 궁금해진다. 

“사실 여배우다 보니 이런 캐릭터를 맡고 싶다, 이런 장르에 출연하고 싶다 해서 의도대로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에요. 여배우가 출연할 만한 작품 자체가 많지 않으니까요. 그렇다 보니 늘 제게 주어진 것 중 가장 재미있는 작품을 고르죠. 가장 먼저 작품을 봐요. 짜임새, 완성도, 새로움 등 시청자나 관객이 재미있게 볼지를 생각하죠. 캐릭터는 그다음이에요”

 ‘작품이 먼저 살고 그 안에서 내가 살면 된다’는 똑똑한 생각이다. 자신이 돋보이려고 캐릭터에만 집착하다 끝내 무너지는 스타가 한둘이 아닌 연예계에서 김아중이 스타의 위상을 흔들림 없이 지켜오는 비결은 그것이었다.

이는 그가 ‘명불허전’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대사로 ‘의사에게는 자격이 필요하지만 환자에게는 필요하지 않다’를 꼽으면서 “이 대사를 하며, 배우의 자격이 무엇인지, 제게 그런 자격이 있는지를 고민했어요. 작품 활동을 통해 어떤 감동을 전달하는 것이 배우의 역할인데 제가 잘하고 있는지, 대중을 감정적으로 변화시키거나 울림을 줄 수 있는 배우인지를 생각하게 됐죠”라고 한 고백과 맞닿아 있다.

다음 작품은 무엇일까. 여세를 몰아 다시 안방극장일까. 아니면 스크린으로 되돌아갈까?

김아중은 “회사(킹 엔터테인먼트)에서는 다음 작품은 영화를 했으면 하네요. 개인적으로는 그동안 TV 드라마를 장르물로, 영화를 로코물로 했는데 이제는 바꿔보고 싶어요. TV 드라마는 말랑말랑한 것을 하고 영화는 진지한 것을 하는 것”이라며 “책(대본, 시나리오)이 몇 권 들어왔는데 아직은 손에 잡히지 않는다”며 아직 차기작을 결정하지 않았다고 내비쳤다.

“서른 살이 넘어서면서부터 일 욕심이 생겼어요. 그 전에도 일 욕심이 없는 것 아니었지만 겁이 더 많았는데 이제는 제 연기에 자신감이 생겼는지 겁도 없어졌어요. 작품 하나 끝내면 딱 2주만 쉬면 돼요. 어서 빨리 일하고 싶어요. 친구들도 이제는 결혼해서 만나기도 쉽지 않고 저는 연애도 안 하니 일이나 열심히 하죠.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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