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경기 광주시의원 유지호 / 옛날에 물건을 훔치는데 신통한 재주가 있는 쥐가 있었다.

그러나 늙어지면서 차츰 눈이 침침해지고 기력도 쇠진해져 더 이상 제 힘으로는 무엇을 훔칠 수 없게 되었다.

그때 젊은 쥐들이 찾아와서 그에게서 훔치는 기술을 배워 그 기술로 훔친 음식물을 나누어 늙은 쥐를 먹여 살렸으며, 그렇게 꽤 오랜 세월이 지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젊은 쥐들이 수군 됐다.

“이제는 저 노서의 기술도 바닥이 나서 우리에게 더 가르쳐 줄 것이 없으니 앞으로 음식을 나누어 줄 필요가 없다”며 그 뒤로 음식을 나누어 주지 않았다.

늙은 쥐는 몹시 분했지만 어쩔 수가 없어 그냥 지낼 수밖에 없었다.

조선중기의 학자 고상안이 쓴 ‘효빈잡기’에 실려 있는 노서라는 글의 앞부분이다.

쥐들은 일상의 생활을 공유하는 집단 공동체이다.

따라서 늙은 쥐는 젊은 쥐들을 가솔(家率)로 생각하고 지내왔을 것으로 생각이 든다.

때문에 늙은 쥐도 젊은 쥐에게 거는 소망은 굶지 않을 만큼 음식을 나눠주길 바랄뿐이다.

노서의 소망은 피로에 지친 지금의 우리 사회가 처한 상황과 사뭇 다르지 않다.

가족도 이해타산으로 점철돼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도 노년의 외로움과 고통과 질병은 나이 들면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가벼운 우울증이라 치부하는 현실은 관습화 되었다.

‘늙은 부모는 누군가 보지 않으면 내다 버리고 싶은 존재’라는 일본 영화감독 기타노 다케시의 말을 곱씹어 보면 우리의 도덕적 가치는 고민되지 않고 상실되었으며, 썩은 동물을 물고 다니는 하이에나 수준의 추악한 존재만큼이나 타락했다.

그럼에도 양의 탈을 쓴 위정자들은 시민 모두를 미움과 증오로 편 가르고 줄 세우고 정적은 짜증나게 나쁜 놈, 없어져야 할 적으로 몰아 난도질 치며, 마치 난파선에서 벌어지고 있는 혈투처럼 지난날의 정적 실세들을 줄줄이 오랏줄로 줄 세우는 낮 설지 않는 액션드라마의 광경들이다.

또한, 역사에 실사되어 있는 가까운 시대, 닭 모가지를 비틀듯 숙적들을 제거했던 3공화국에서 조선시대를 거슬러 올라가서는 살생부에 의하여 무참히도 도륙 냈던 4번의 사화(士禍)와도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국가 권력에 있어 중심부터 잡아야 할 정부 정책은 갈 길을 몰라 움츠리는 땜질식 처방에 서민층의 삶은 더욱 팍팍해져 있음에도 정책의 시간표는 선거일에 다이얼이 멈춰져 있다. 또한편에 지방정부도 자치능력 부족으로 헛발질을 하고 있는 가운데 어중이떠중이 지방의회는 견제, 구조조차도 할 수 없는 비능률의 한계점에서 반쪽 지방자치 운영으로 위상과 존재 가치를 훼손시켜 이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았다.

얼마 전 국회에 전시되어 관심을 끌었던 에두아르 마에의 ‘올랭피아’를 패러디한 작품에 대통령을 나체로 풍자한 그림이 세간의 관심을 끄는 가운데 모두가 침묵으로 내심 즐기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 같은 사회 분위기라면 조만간 야한 그림들로 악명을 떨쳤던 ‘쿠르베’의 노골적인 발가벗긴 여성성기 부분만 클로즈한 나체 그림이 관심 있게 국회의사당에 전시될 것이다.

예술이란 이름으로 말이다.

이쯤 되면 이제 성희롱은 대한민국에서는 처벌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 시대의 대한민국은 너무나도 무능하고 천박한 위정자의 오만함의 정치로 사회 부패지수는 절대적 부패 수준까지 떨어지는 막장의 시대를 지나 엽기의 시대로 들어섰다.

복수의 일념으로 가득찬 대한민국은 어느 구석 병들지 않은 곳이 없다. 그래서 서민들은 늙은 쥐만큼이나 많이 아프고 고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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