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곽경택 감독을 ‘휴머니스트’라고 부른다.

그가 이제껏 선보인 작품들, 한 사람에게 집중한 ‘친구’(2001), ‘챔피언’(2002), ‘똥개’(2003) 등 드라마 장르는 물론 누아르 장르인 ‘친구2’(2014), 범죄 수사 장르인 ‘극비수사’(2015)마저도 진한 사람 냄새를 풍기는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곽 감독이 지난 12일 신작 ‘희생부활자’로 돌아왔다. ‘RV(Resurrected Victims)’라는 가상의 초현실적인 현상을 소재로 하는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 영화다. 

RV 현상은 억울한 죽임을 당한 사람이 부활해 진범에게 복수한 뒤 자체 발화해 소멸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자체도 낯설지만 곽 감독과 미스터리 스릴러라니 전혀 안 어울리는 조합으로 여겨진다.

 주목할 것은 RV 현상을 곽 감독이 새롭게 창작한 것이 아니라 박하익 작가의 소설 ‘종료됐습니다’를 각색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영화와 소설은 크게 다르다. 일종의 SF로 끝맺는 원작 소설과 달리 영화는 휴머니즘에 기초한 판타지로 귀결된다.  

그렇다 보니 원작 소설을 재미있게 읽은 뒤 이 영화를 본 일부 관객은 극 초반에는 소설 속 새로운 세계관을 뒤따르는 것 같더니 중반 이후부터는 자신의 세계관을 펼쳐 보인 곽 감독에 대해 “결국엔 신파네”, “또 모성애냐. 식상하다” 등 반발할 수 있다. 

그러나 영화를 본 관객 대부분은 “역시 곽경택”이라며 만족감을 나타낸다. 

이 영화도 곽 감독의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사람 이야기’라는 얘기다. 그것도 가장 숭고한 ‘모성애’를 주제로 한다. 그만큼 대중이 받아들이기도 쉽다.

여기서 문득 곽 감독이 모성애나 휴먼 드라마 등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 전혀 새롭게 도전해보는 것도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또한, 관객 중 많은 사람이 RV 현상을 생생하게 받아들이는데 실화는 아니더라도 모티브가 된 현상은 정말 있는 것인지 궁금해진다.

게다가 이 영화는 지난 2015년 촬영이 끝났으나 약 2년이라는 긴 ‘숙성’ 기간을 거쳐 이제야 스크린에 걸렸다.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호기심이 증폭한다.

이런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개봉을 하루 앞둔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소격동 한 카페에서 곽 감독을 직접 만났다. (편집자 주: 미스터리 스릴러인 만큼 최대한 시간을 보낸 뒤 만남의 기록을 전한다)

전날인 지난 10일 낮에 언론배급 시사회, 밤에 VIP 시사회를 모두 마치 곽 감독은 무척 편안해 보였다. 

“어제 굉장히 편하게 잤다. 결과를 떠나 큰 짐 덩어리를 내린 기분이다. 아침에 일어나니 그동안 ‘이 영화가 나를 짓누르고 있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나리오 집필 기간까지 합치면 무려 3년이다. 완전하진 않으나 다소 해방감을 맛봤다. 마치 RV를 몸에서 뗀 것 같은 기분이라고나 할까. 하하하”

곽 감독은 영화 개봉이 늦어진 이유로 후반 작업을 꼽았다.

곽 감독은 “나도 영화를 찍어놓은 뒤, 이번처럼 오랫동안 편집이나 CG를 만지고 또 만지면서 후반 작업을 한 적은 없었다”며 “CG에 특히 신경을 써야 했다. 진범에게 복수한 RV가 자체 발화해 소멸해야 하는데 CG가 어색하면 관객이 ‘에이 저게 뭐야’라고 하게 된다. 그 순간 영화는 끝장이다. RV 얼굴에서 발화가 시작하는 곳을 정하는 것도 중요했다. 그에 따라 RV가 무서워 보이기도 하고  불쌍하게 느껴지는 등 관객의 감정이 달라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CG가 전부가 아니었다. 불이 붙을 때 들리는 사운드도 중요했다. 결국 나와 CG팀, 사운드 디자이너가 끊임없이 주고받고 해야 했다. 다들 에너지를 잃지 않고 잘해줘 생생한 장면이 나올 수 있었다”고 부연했다. 

‘신파’라는 비판을 무릅쓰면서까지 모성애에 연연할 필요가 있었느냐는 질문에 그는 단호한 어조로 “그렇다”고 잘라 말했다. 

“지난 2014년 어느날 원작 소설(‘종료됐습니다’)을 읽기 시작했는데 흡인력이 엄청나게 좋아 정신없이 바로 절반까지 읽어 내려갔다. 그런데 그때부터 갑자기 이야기가 이상한 데로 가더라. 그렇게 좋은 세계관을 구축해놓고 말이다. 사실 나는 RV 현상이 재미있었고 엄마와 아들 얘기에 빠져들었는데…. 그래서 더 보면 안 되겠다 싶어 책을 덮었다. ‘그 좋은 이야기를 왜 진부한 모성애로 풀었냐’고 누가 뭐라 해도 그렇게 가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다”

엄마와 아들 이야기로 방향을 잡았다면 이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남녀 주연배우를 선정해야 했다. 

곽 감독은 아들 ‘서진홍 검사’ 역할을 김래원에게 제안했다. 문제는 있었다. 일단 김래원이 그즈음 SBS TV 드라마 ‘펀치’(2014)에서 검사 역할을 맡았던 탓이다. 

사실 원작에서 서진홍은 벤처 사업가로 나온다. 하지만 관 감독은 복수와 죗값, 벌과 용서의 이야기인 만큼 직업을 검사로 바꿨다. 김래원에게는 같은 검사라도 다른 인물이라는 점을 내세워 설득했다.

문제는 또 있었다. 영화의 진짜 주인공은 서진홍이 아닌 어머니 ‘최명숙’이라는 점이다. 서진홍은 시종 당황하고 당혹해하며, 혼란스러워하는 인물이다. 곽 감독의 전작들 속 남자 주인공과도 전혀 다르다. 

다행히 김래원은 검사라는 설정에 동의했고 서진홍의 심리 상태에 관해서도 “쉽게 이해되지는 않지만. (곽)감독님이니 믿고 가겠다. 우리 한 번 인연 맺어보자”며 출연을 결정했다.

곽 감독은 “사실 김래원이 출연하기로 해 파이낸싱(투자)이 이뤄졌고 덕분에 작품을 만들 수 있었다”면서 “김래원에게 너무 고맙다”고 털어놓았다.

김래원이 캐스팅되자 곽 감독은 어머니 ‘최명숙’ 캐스팅에 들어갔다. 여러 중견 여배우가 물망에 올랐으나 내심 김해숙을 탐냈다. 

“극 중 이미지가 극단적으로 변하는 것을 굉장히 자연스럽게 해낼 분이 누구일까 생각했다. 자기 자식밖에 모르는 대한민국 엄마 모습, 복수하려는 처단자 같은 느낌, 용서를 구하며, 한도 없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인간의 정서까지 잘 표현해내실 분으로 김해숙 선생님을 떠올렸다”

그렇다면 곽 감독은 이 영화를 정말 왜 만들고 싶었던 것일까. 

“내가 어렸을 때는 일본이 우리나라보다 자살률이 높았다. 그래서 다들 ‘우리가 못 살아도 더 행복하다’고들 한다. 그러나 어느새 우리나라가 그렇게(일본처럼) 됐다. 분명히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운데 정신적으로는 공허하다. 다들 가지려고 하고 빼앗으려고 하지 나누려고 하지 않는다. 그런 경쟁에서 도태되는 사람은 스스로 삶을 포기한다. 그뿐만 아니다. 과거에는 있을 수 없었던 존속 살인이나 자녀 학대 등이 벌어진다.
우리 영화만 봐도 행복한 사람은 하나도 없지 않은가”

그는 ‘희생부활자’를 통해 복수나 응징이 아닌 용서와 화해를 말하기 위해 했다. 영화는 절절하게 어머니의 아들을 향한 모성애를 그렸으나 결말에서는 용서와 화해가 그 가치마저 뛰어넘는다.

“이 세상에 RV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느냐”라는 마지막 질문에 곽 감독이 “필요 없다”고 답한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가 서로를 용서하며, 화해한다면 증오나 분노도 눈 녹듯 사라져 복수나 응징이 필요 없는 세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휴머니스트는 따뜻한 가슴으로 웅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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