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미남 스타들이 악역으로 ‘변신’하고 있다. 

한때 보기만해도 미소 짓게 하던 ‘천사’ 같던 그들이 이젠 모골이 송연해지면서 몸서리쳐지는 ‘악마’가 돼버렸다.

지난 3일 개봉해 18일 400만관객 돌파를 눈앞에 둔 범죄 액션 ‘범죄도시’(감독 강윤성)에서 중국 하얼빈 출신 조선족 ‘장첸’은 뛰어난 싸움 실력과 야차 같은 잔인함으로 부하 2명과 함께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차이나타운을 삽시간에 장악한다. 

장첸을 열연한 배우는 윤계상이다. 지난 2000년대 그룹 ‘god’ 시절의 감미로운 미소나 연기 경력 14년 동안 TV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여준 부드러운 이미지는 모두 장발 속에 감추고 다시 태어났다. 

영화에서 마동석이 ‘마석도 형사’로 보여준 코믹함과 엉뚱함은 윤계상의 장첸이 있었기에 생명력을 얻을 수 있었다. 

19일 개봉하는 시대극 영화 ‘대장 김창수’(감독 이원태)에서 지난 1896년 명성황후를 살해한 일본인 무사를 황해도에서 때려죽인 ‘김창수’’(조진웅)가 수감된 인천 감옥소에는 소장 ‘강형식’이 있었다. 일본 세력과 결탁한 그는 김창수를 비롯한 재소자들을 억압하고 착취하며, 부와 권력을 키워나간다.

강형식으로 호연을 펼친 배우가 송승헌이다. 범죄자가 아닌 관리인 만큼 악역이라 해도 보여줄 수 있는 악행에 한계가 있었지만 그는 때로는 불같이 몰아치고 때로는 차갑게 얼려버리며, 감옥소 안 최고 권력자를 만들어냈다.

‘송승헌’ 하면 떠오르는 반듯하고 선한 이미지는 자신의 친일 행위를 조선을 발전시키기 위한 선택인 것으로 정당화하는 그의 그릇된 신념 앞에서 눈 녹듯 사라져버렸다.          

지난 12일 개봉한 미스터리 스릴러 영화 ‘희생부활자’에서 ‘최명숙’(김해숙)을 아들 ‘서진홍’(김래원) 앞에서 살해한 조선족 강도로 특별 출연한 배우는 김민준이다.

김민준이 악역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 영화 연출자 곽경택 감독의 전작 ‘사랑’(2007)에서도 악랄한 건달 ‘치권’ 캐릭터를 생생하게 만들어냈다. 곽 감독이 이번에 그에게 조선족 강도 카메오 출연을 부탁한 이유로 “치권 캐릭터를 정말 잘해줘서”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런데도 주목받는 것은 비록 짧은 분량이었지만 중국 공안의 추적을 피해 한국으로 밀항해 숨어 지내는 조선족 강력 범죄자의 강렬하고 표독스러운 모습을 여실히 표현해서다.

특히 서진홍 검사와의 격투 장면에서는 빨간 팬티 하나만 입은 다소 웃기는 차림이었으나 관객이 전혀 웃지 못 하고 지켜봐야 할 정도로 리얼했다.

이밖에도 지난 8월23일 개봉한 ‘브이 아이 피(VIP)’에서 북한 최고위층 출신 탈북자 ‘김광일’, 납치한 여성을 부하들에게 집단 성폭행하도록 명령하는 것도 모자라 마약에 취하게 만든 뒤 철사로 목을 졸라 살해하며, 쾌감을 느끼는 김광일의 악마적인 모습을 실제처럼 보여준 배우는 이종석이다.

작고 하얀 김광일의 얼굴에 여성의 선혈이 튀길 때의 충격적인 모습은 우리가 익히 보아온 이종석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영화계 인사들에 따르면 신인도 아닌 꽃미남 스타들이 이처럼 악역을 기꺼이 맡는 이유는 다양하다. 

가장 큰 이유는 연기 스펙트럼 확대다. 자신의 이미지가 너무 고착화했거나 지나치게 선한 쪽으로 소비된 경향이 있을 때 자신이 가진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악역을 택한다. 

특히 꽃미남 스타들은 오히려 역할이 제한적이기 마련이어서 악역이 좋은 탈출구가 될 수 있다. 

배우들은 “지금까지 보여주지 못한 악랄한 역이라 선택했다”(윤계상), “배우로서 다양한 캐릭터에 갈증하던 중 이 캐릭터를 만났다”(송승헌) 등 연기 변신을 위해 악역을 선택했다고 전한다. 

또한, 그동안 이렇다 할 대표작이 없거나 티켓파워가 정체됐을 때 ‘변곡점’으로 삼기 위해 악역을 선택하기도 한다.

과거와 달리 악역을 맡았다고 해서 배우의 이미지가 망가지지 않는 것도 꽃미남 스타들이 악역 선택을 주저하지 않게 된 이유다.

실제 이정재는 지난 2013년 사극 ‘관상’(감독 한재림)에서 악역인 ‘수양대군’을 맡았으나 이미지가 나빠지기는커녕 오히려 ‘제2 전성기’를 열어가고 있다.

이종석 역시 ‘브이 아이 피’를 상영 직후인 지난 9월 말 SBS TV 수목 드라마 ‘당신이 잠든 사이에’(극본 박혜련, 연출 오충환·박수진)에서 주인공 ‘정재찬’으로 나섰지만 시청률 파워에는 흔들림이 없다.

다만, 꽃미남 스타들의 악역 선택은 당분간 스크린에 국한되리라는 것이 영화계 인사들의 중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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