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어송라이터 루시드폴(42, 조윤석)이 2년 만인 30일 정규 8집 ‘모든 삶은 작고 크다’를 발표했다.

4년 째 제주에서 감귤 농사를 짓고 있는 루시드폴은 이번 앨범을 위해 현지 농장에 작업 공간인 오두막을 손수 지었다. 작사, 작곡, 편곡은 물론 녹음과 믹싱 작업까지 이 공간에서 직접했다. 그리고 농사를 짓는 일상을 에세이와 사진으로 남겼다. 

이번 앨범은 총 9곡이 실린 CD와 자신의 첫 에시이집 ‘모든 삶은 작고 크다’가 하나로 묶여 온오프라인 서점에서만 판매가 된다. 

아홉 번째 트랙 ‘밤의 오스티나토’는 음원 사이트에서는 들을 수 없다. 오직 CD에만 실린 보너스 트랙으로서 오두막에서 여름밤에 채집한 소리로 노래가 시작된다. 풀벌레가 숲속을 가득 메웠던 여름밤의 기억이 녹아 있는 곡이다. 

타이틀곡 ‘안녕’ 뮤직비디오는 낡은 필름 카메라와 슈퍼 8mm 무비 카메라로 촬영한 지난 2년의 일상을 남겼다. 

현실에서 음악을 길어 올리고 있는 그를 최근 신사동 안테나 뮤직에서 만났다. 

자신의 감귤 과수원이 ‘무농약 인증’을 받았다며, 노래가 1위를 차지한 것 이상으로 기뻐한 그는 이제 ‘농부의 마음’을 가진 뮤지션이 아닌, 진짜 ‘농부 뮤지션’이었다. 

- 이번에 에세이를 원고지에 썼다고? 소설 ‘무국적 요리’를 쓴 작가이자 시쿠 부아르키의 ‘부다페스트’와 다비드 칼리의 ‘어쩌다 여왕님’을 번역한 번역가이기도 하다. 

▶ 요즘 가사를 스마트폰으로도 쓰는데 난 옛날 사람이다.(웃음) 사실 목 디스크가 있다. 노트북으로 글을 쓰면 목과 어깨의 근육이 뭉쳐 이번 에세이까지 그렇게 쓸 자신이 없더라. 팬분들이 선물해주신 만년필로 400자 원고지, 800자 원고지, 1600자 원고지를 주문해서 썼다” 

- 오두막은 어떻게 짓게 된 것인가?

▶ “지금까지 밭을 빌려 농사를 짓다가 내 밭을 마련했다. 내 밭이 생기면 창고를 만들고 싶었다. 녹음할 수 있는 공간이 됐으면 했다. 스튜디오처럼 완벽한 공간은 아니지만 곡과 글까지 쓸 수 있는 공간 말이다. 낮에는 농장 일을 했다. 오후 7~8시쯤 자서 새벽 3시쯤 집에서 일어난다. 농장에 도착하면 3시30분쯤이다. 3월부터 작업을 시작했는데 그 때는 추워 난로를 켰다. 9~10시 이후에는 노래 작업이 안 된다. 주변에서 트랙터 소리가 난다. 주변에서 일을 시작하신 거다. 그럼 나 역시 농장 일을 해야 하니까(웃음). 밤새 작업한 것보다 시간이 그래서 더 오래 걸렸다. 담배나 약간의 술기운을 빌린 것이 아닌 멀쩡한 정신에서 작업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 베이시스트 스티브 스왈로우가 초기에 쓰던 68년형 깁슨 베이스를 손수 구하고 70년대 야마하 드럼 셋을 찾아내 녹음한 것으로 안다. 빈티지 아날로그 사운드를 찾은 이유는 무엇인가? 

▶ “스왈로우가 쓰던 베이스는 굉장히 둔탁한 소리 같지만 따듯하게 느껴진다. 드럼은 위에다 수건을 얹고 갖은 방법을 동원해 소리를 만들었다. 요즘 마이크를 많이 쓰는데 그것 역시 최소화했다. 기타 역시 일반 어쿠스틱이 아닌 집시 기타를 썼다. 날카로운데 또 투박하다. 이제 윤기 있는 소리에 매력이 없어졌다고 해야 하나. 재미가 없다. 소리는 결국 감동을 받기 위한 것인데 말이다. 이번에 내 이야기를 전달하는데 너무 편하고 좋은 것보다는 조금 더 특별한 것을 도구로 사용하고 싶었다. 이제 아날로그 소리가 아이러니하게 재현이 안 되는 시대다. 사운드적으로도 그게 더 힙합 것이다”

- 타이틀곡 ‘안녕’에는 역시 제주에 사는 이상순이 일렉기타에 참여했다. 피아노는 이진아가 쳤더라. 또 다른 수록곡 ‘폭풍의 언덕’에는 이진아와 SM 뮤지션들 작업에 참여한 사이먼 페트렌이 함께 했다. 

A. “상순이네 기타를 빌리러 갔다가 네가 직접 쳐달라고 해서 연주까지 하게 됐다. 처음 연주가 마음에 안 들어, 다시 제대로 해달라고까지 했다(웃음). 진아에게는 미안했다. 연주를 기가 막히게 하는 친구인데 일부러 못 치게 연주를 해달라고 했으니까. 사이먼은 직접 제주 오두막까지 왔다. 미디 작업을 귀신까지 하는 친구라 함께 하고 싶었다. 뜨거운 여름에 와서 고기국수 먹고 이틀동안 작업만 하고 갔다(웃음). 

- 지난 2015년 발매한 정규 7집 ‘누군가를 위한’은 TV 홈쇼핑 채널을 통해 음반과 직접 쓴 동화책 ‘푸른 연꽃’, 엽서, 제주에서 직접 재배한 귤 등을 묶은 패키지를 판매해 화제가 됐다. 올해는 그런 기획을 하지 않았나?

▶ “올해도 직접 키운 귤을 함께 드리고 싶었지만 귤이 많이 안 열렸다. 과일 나무는 한해 많이 열리고 한 해는 안 열리는 해거리가 심하더라. 올해는 많이 열리지 않는 해였다. 혹시 몰라 음반을 농산물 유통과 함께 할 수 있는지 알아보기도 했는데 귤이 많이 열리지 않아서 불가능하게 됐다. 책은 처음부터 음반과 함께 내고 싶었다. 음원 위주의 시장에서 물리적인 음반이라는 것의 가치에 대해서는 꾸준히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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