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철 열사 가족을 만나뵈었어요.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습니다. 조금의 실망감도 안겨드리고 싶지 않았어요”


영화 ‘1987’(감독 장준환, 개봉 12월27일)의 제작진과 배우들은 본격 촬영에 앞서 이 작품의 시발점이 되는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의 희생자 고(故) 박종철(1964~1987) 열사의 가족을 만났다. 배우 김윤석(49)은 미리 사과를 했다고 말했다. 


“굉장한 악역을 맡았다고 했습니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듯한 아주 강력한 악역을 연기할 거라고 그래야 이 영화가 산다고 했어요. 그 분들께서는 ‘마음의 부담이 크겠다. 최선을 다해달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연출을 맡은 장준환 감독과 각별한 사이이기도 한 김윤석은 이 작품이 시나리오 초고 단계일 때부터 영화 참여를 결정했다. 


그는 “영화로서 충분한 가치가 있는 이 사건에 관련 다큐멘터리를 뛰어넘는 좋은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윤석이 연기한 대공수사처장 ‘박처원’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조사받던 중 고문당해 사망한 서울대학생 박종철의 죽음을 은폐하려는 인물이다. 


한 마디로 그릇된 신념에 지배당해 ‘권력의 개’가 된 캐릭터다. 영화 ‘1987’은 대통령 직선제를 이끌어낸 6월 항쟁을 그린다. 민주주의의 발전이라는 거대한 물결을 만들어내기까지 국민의 작은 힘들이 어떻게 모여가는지를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을 출발점 삼아 담아낸다. 


김윤석의 박처원은 암울한 시대의 상징이다. 오직 권력 유지를 위해 무고한 사람들을 이른바 ‘빨갱이’로 몰아넣었던 30년 전 어둠이 박처원에게 담겼다.


김윤석은 전작들에서 보여준 바 있는 무시무시한 카리스마를 내뿜으며 객석을 또 한번 압박한다.


“당연히 연기를 잘해야 했죠. 하지만 내가 연기를 잘하느냐 못하느냐, 혹은 내가 관객에게 이런 연기를 선뵈겠다고 하면서 나서는 그런 현장은 아니었습니다. 각자 맡은 배역이 상징하는 것들이 있는데 그 부분을 제대로 완성해놓고 가자는 것이었죠. 모두가 그랬어요. 감독님뿐만 아니라 배우들 스태프들, 아주 작은 것 하나 놓치지 않으려는 현장이었습니다”


이미 알려진 것처럼 김윤석은 박 열사의 고등학교 후배다. 물론 역할은 박 열사 대척점에 선 인물이지만 이런 영화가 반드시 나와야 한다는 그 마음만은 이 작품에 참여한 다른 어떤 배우 못지 않게 컸다. 


그는 “모든 작품에서 최선을 다해왔지만 특히 이번 작품은 완성도를 최대한 끌어올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가 이 작품에 임했던 마음가짐을 알 수 있게 하는 말이다. 


“작품의 의미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다 알잖아요. 전 정말 잘 만들고 싶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부분에서 최선을 다하기 위해 했습니다. 그게 박 열사와 가족분들, 당시 민주화에 공을 세우신 모든 분들께 보답하는 길이라고 생각했어요. 솔직히 말하면 두 마리 토끼 다 잡고 싶어요. 완성도가 높고 재밌는 영화라는 말 듣고 싶습니다. 우리 영화가 이번 연말에 1등 했으면 좋겠어요”


촬영에 한창일 때 대한민국 정세가 급변했다. 이른바 ‘국정농단 사건’이 발생했고 광장에 모인 촛불이 결국 정권을 교체했다. 이 영화가 담으려는 바로 그 이야기가 실제로 펼쳐졌다.


김윤석은 “매우 묘한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우리가, 그리고 시대가 이상하게 다 연결돼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시사회 때 온 지인들 중에는 6·10 항쟁 때는 대학생으로 촛불집회 때는 한 가정의 가장이 돼 광장에 계셨던 분들이 있었어요. 기분이 참 이상하더라고요. 뭔지 모르겠지만 그때 시사회장에서 영화를 보는 우리가 모두 같은 감정을 공유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영화 보면서 그렇게 편하게 눈물 흘렸나봐요.(웃음) 아마 개봉하고나서 이 영화를 볼 관객들도 저와 비슷한 감정을 느낄 거예요”


김윤석은 예비 관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뻔한 이야기이지만 이 영화를 절대 놓치지 마시라는 겁니다. 다른 말로 하면 이번 연말 이 영화가 아마 최고의 시간을 선사할 거라는 거죠. 그만큼 자신할 수 있는 작품이 나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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