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피겨스케이팅 남자 싱글의 맏형 이준형(22, 단국대)이 부담감을 이겨내지 못했다. 동생 차준환(17, 휘문고) 대역전극의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2차 선발전까지 차준환에게 27.54점까지 앞선 이준형은 마지막 선발전에서 실수를 연발, 스스로 따 온 평창 동계올림픽 남자 싱글 출전권을 동생에게 내줘야 했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국가대표 1~3차 선발전이 시작되기 전 한국 남자 싱글의 올림픽 참가는 불투명했다. 평창올림픽 국가별 출전권이 걸린 지난해 3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김진서(22, 한국체대)가 쇼트프로그램 26위에 그치면서 출전권 확보에 실패했다.

지난해 7월 평창올림픽 피겨 국가대표 1차 선발전에서 남자 싱글 1위에 오른 선수가 마지막 올림픽 추가 자격 대회인 국제빙상경기연맹(ISU) 네벨혼 트로피에 출전, 평창올림픽 티켓 확보에 도전해야 했다.

평창올림픽 선발전을 앞두고 남자 싱글 1위의 가장 강력한 후보로 거명된 선수는 4회전 점프를 가장 안정적으로 구사하는 차준환이었지만, 1차 선발전에서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차준환은 발에 꼭 맞지 않는 부츠를 신고 훈련을 하다 오른 발목과 왼쪽 고관절 부상을 떠안았고 제 컨디션이 아니었다. 206.92점으로 3위에 머물렀다. 4회전 점프를 시도하는 모험을 하기보다 안정을 택한 이준형은 1차 선발전에서 228.72점으로 우승했다.

1차 선발전 1위는 곧 올림픽 출전권 확보라는 무거운 짐을 짊어져야 한다는 의미였다. 경쟁이 치열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도 있었다. 그러나 이준형은 자신의 ISU 공인 개인 최고점인 222.89점으로 5위를 차지해 한국에 평창올림픽 피겨 남자 싱글 출전권을 선사했다.

2차 선발전에서도 230.40점으로 1위에 올라 1, 2차 선발전 합계 459.12점으로 선두를 질주했다. 2차 선발전에서 224.66점으로 2위에 랭크된 차준환의 1, 2차 선발전 합계 점수는 431.58점이다.

하지만 부담감 속에 이준형은 3차 선발전에서 실수를 연발했다. 쇼트프로그램에서 점프 실수를 저지른 이준형은 76.80점을 받는데 그쳐 ‘클린 연기’로 84.05점을 얻은 차준환에 20.32점 차로 쫓겼다. 추격을 받은 이준형은 부담을 극복하지 못한 채 프리스케이팅에서도 두 번이나 빙판 위에 넘어졌다. 프리스케이팅에서 146.18점을 받는데 그친 이준형은 역시 완벽한 연기로 168.80점을 추가한 차준환에게 역전을 허용하고 말았다.

이준형은 운이 따르지 않는 선수다. 차준환 등장 이전 한국 남자 싱글 최강자였다. 지난 2014년 8월 2014~2015 ISU 주니어 그랑프리 1차 대회에서 한국 남자 싱글 사상 최초로 우승을 차지한 차준환은 해당 시즌 주니어 그랑프리 7차 대회에서 3위에 올라 한국 남자 싱글 사상 최초로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 무대를 밟았다. 

한창 성장세를 구가하던 이준형은 2015년 여름 교통사고를 당했고 이후 고질적인 허리 부상에 시달리게 됐다. 같은해 말 스케이트날에 오른쪽 정강이를 찔리는 부상까지 입으면서 내리막길을 걸었다.

지난 2016~2017시즌 허리 통증 탓에 진통제를 먹어가며, 훈련을 이어간 이준형은 차준환의 가파른 성장을 지켜봐야 했고 평창 무대를 바라보며 이를 악물었다.

“코치 선생님이 하라는 것보다 훈련을 더 많이 했다”고 말할 정도로 구슬땀을 쏟은 이준형은 한국 피겨 남자 싱글 선수가 지난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대회 이후 16년 만에 올림픽에 나설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이준형과 아이스댄스의 민유라·알렉산더 게멀린이 기대 이상의 선전을 펼쳐준 덕분에 한국은 평창올림픽 단체전 출전도 노려볼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최후에 웃은 자는 이준형이 아니었다. 어머니와 함께 평창 무대를 밟을 기회도 사라지고 말았다. 

남자 싱글에 앞서 끝난 여자 싱글에서 김하늘(16, 평촌중)이 2위로 평창올림픽 출전권을 땄다. 김하늘은 이준형의 어머니 오지연씨의 지도를 받고 있다. 이준형이 7일 프리스케이팅에서 20점차 리드를 지켜냈다면 어머니와 평창올림픽에 나설 수 있을 터였다.

믿을 수 없는 역전을 허용한 이준형은 대회 후 시상대 위에서도 갈라쇼 도중에도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관중이 모두 떠난 후에야 김진서(22, 3위)를 부둥켜 안고 눈물을 쏟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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