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헌 원장
김동엽 기자 / 우리나라의 병폐 가운데 하나는 소위 말해 지도층의 도덕적 해이다
. 사법시험을 통해 입신양명에 성공한 수많은 법조인들, 대학교수, 국회의원, 고위공직자들의 비리사건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지금도 주위를 둘러보면 오로지 좋은 대학교 진학만을 목표로 초·중학교 시절 자사고, 사립고, 외국어고, 과학고 등 특수목적의 고등학교 입학을 준비하는 수많은 학생들이 있다.

이들은 국어, 수학, 영어 점수를 남들보다 더 높게 받기 위해 노력하지만 정작 자신이 무엇을 위해 열심히 공부하는지는 명확히 알지 못한다.

한눈 팔지 말고 공부만 열심히 해라’ ‘좋은 대학만 가면 나머지는 다 해결된다공부만을 염려하는 학부모들, 선생님들의 말씀에 충실할 뿐이다.

그러나 그것은 정말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공부보다는 먼저 사람이 되는 방법을 가르치고 영어단어나 문법보다는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인사성과 배려심 등 예절과 도덕심을 강조하는 인물이 있다.

안성에서 최상헌영어교습소를 운영하고 있는 최상헌(사진·55) 원장이 주인공이다. 지난 28일 안성시 최상헌영어교습소 강의실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학생들에게 공부보다 더 중요한 것을 가르친다고 전했다.

입시를 통해 좋은 대학교에 진학하는 것도 중요하죠. 그러나 인성교육이 되지 못하면 사회에 나가서 잘못된 행동을 하고도 반성을 할 줄 모르게 됩니다.”

최 원장은 이처럼 철두철미한 교육 철학을 긴 세월동안 고수하고 있었다. 강의시간이 아니더라도 그와 마주친 학생들은 지나가면서 그에게 밝은 표정을 지으며 인사를 했다. 학생들은 아픈 친구를 위해 좋아하는 음료수를 사다주는가 하면, 무릎담요를 빌려주기도 했다.

이들의 성적도 뛰어났다. 각종 경시대회에서 수상한 학생과 현재 학교에서도 우수한 성적을 유지하는 학생들이 많이 있었다. 그에게 가르침을 받았던 수많은 실력과 인간미를 두루 갖춘 모범적인 사람으로 성장했다.

안성시 금광면 개산리에서 태어난 최 원장은 어린 시절부터 가난을 알았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는 주경야독이 하루의 일과였다.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공부에 대한 집념을 버리지 않았던 그는 서울대 수의학과에 4년 장학생으로 합격했다.

처음에는 서울대 약대를 원했지만 여러 가지 사정상 수의학과에 들어가게 됐어요. 합격 소식이 전해지자 고향에 계신 이웃들과 부모님이 경사났다며 다들 기뻐해 주셨죠.”

학창시절의 모범적인 생활을 마치고 1983년 서울대 수의학과에 입학하자 공부만 하던 어린시절에 몰랐던 군사독재정권에 대해 알게 됐다. 정부에 대한 비판을 하기만 해도 쥐도 새도 모르게 잡아가던 서슬 퍼런 시절이었다. 그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이때부터 수업보다는 학우들과 함께 직접적인 민주화 운동에 나서게 됐다.

영화 ‘1987’이 대중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는데 저는 그 영화를 보면서 마음이 참 아프고 울컥했습니다. 그 당시에 집회에 나섰던 기억도 새록새록 남아있고요. 이제는 시간이 많이 지나 이렇게 민주화된 나라에서 살고 있어 행복합니다.”

그렇게 민주화를 외치던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러지 말고 고향에 내려가 후배들과 고향 사람들에게 내가 보고 배우고 느낀 것을 가르쳐야겠다.’ 당시에는 배움을 갈망하는 사회적 풍도가 강했다.

노동자들도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야학이나 독서 모임을 통해 배움을 이어갔다. 이에 최 원장은 안성으로 내려와 후학양성에 힘쓰게 됐다.

문민정부가 들어설 무렵에는 자신의 영어 실력을 바탕으로 당시 안성에서 진학학원을 운영했던 선배와 함께 강사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안성에서 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선배의 권유로 학원강사생활을 시작했죠. 그러다 선배가 갑자기 안성을 떠나게 되면서 제가 학원을 인수하게 됐습니다.”

학원을 인수받은 이후 최 원장은 수백명에 이르는 학생들을 가르치게 됐다. 근무했던 강사들만 해도 10명이 넘었다. 그렇게 많은 학생들이 최 원장의 가르침 덕분에 과학고, 외국어고, 특목고에 입학했다.

특히 가정형편이 어려워 학원비를 마련하지 못하는 학생들이나 소년소녀 가장들에게는 학원비를 받지 않고 무료로 학원을 다니게 했다. 그런 학생들 가운데 외할머니를 모시고 힘들게 살았던 한 학생은 이제는 안성시 공무원이 돼서 가정을 이루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한다.

안성 학원계에서 승승장구하던 그에게도 시련은 찾아 왔다. 1997IMF사태와 빚보증으로 인해 그는 하루아침에 망하게 됐다. 감당할 수 없는 채무도 지게 됐다.

보증을 해준 것이 잘못돼 하루아침에 땅바닥에 주저 앉게 됐죠. 한번은 죽을 생각에 옥상에 올라갔지만 당시 술이 만취해 정신을 잃어 뛰어내리지 못하기도 했어요.”

좌절의 시간을 보내고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된 것은 우연히 접한 TV속 대사였다. 당시 유명 인사였던 작가 이외수 씨는 프로그램에 출연해 자살을 거꾸로 읽으면 살자가 된다는 명언을 전했다. 그날 이후 그는 다시 일어서고자 술과 담배도 끊고 이를 악물고 버텼다.

현재도 약간의 빚이 있지만 다짐했던 결심을 잊지 않고 열심히 생활해야죠. 앞으로도 안성시 교육계의 한 면을 책임지는 선생으로서 사람으로서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덕목을 학생들에게 알려주고 싶습니다.”

지금 그에게 작은 소망이 남았다. 가르침을 통해 많은 학생들에게 올바른 길을 알려주는 것이다. 그의 여정은 계속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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