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서주(序奏)처럼 느껴지는 건반 주축의 서정적인 전주에 이은 ‘오픈 암스(Open Arms)’의 합창은 전율을 선사했다. 점층적으로 웅장해지는 사운드의 절정에 환희가 찾아왔다. 순간 지난 1970~80년대로 타임 슬립을 하는 듯했다. 

결성 44년 만에 첫 내한한 미국 록 밴드 ‘저니’가 지난 15일 한남동 블루스퀘어 삼성카드홀에서 펼친 첫 내한공연은 이 팀을 기다려온 팬들의 숙원을 단번에 해결했다. 

블루스퀘어 홀이 위치한 한강진 역은 평소 20~30대 여성들로 북적거리는 곳이다. 블루스퀘어의 또 다른 대형 공연장인 삼성전자홀이 인기 뮤지컬의 터전이기 때문이다. 현재 박효신·박은태·전동석을 앞세운 뮤지컬 ‘팬텀’이 오르고 있다. 

이날 한강진역은 하지만 30~50대 남성들이 유독 눈에 띄었다. 지난달 고척 스카이돔을 들끓게 한 헤비메탈 밴드 ‘메탈리카’ 내한공연 당시 구일역을 떠올리게 했다. 

실제 국내 최대 티켓 예매사이트 인터파크티켓 예매율을 살펴보면 ‘팬텀’은 남녀 비율이 약 2대 8이다. 연령별로 살펴보면 20대(37.6%), 30대(33.9%)가 압도적인 비율로 높았다. 

반면, 저니의 남녀 예매 비율은 7대 3이다. 40대가 37.9%로 가장 높았고 30대가 30%, 20대가 15.4%로 뒤를 따랐다. 내한공연에 본래 외국 관객이 많지만 공연장이 이태원에 위치한 만큼 그 비율이 더 높아 보인 점도 특기할 만했다. 

지난 메탈리카의 공연장을 채운 30~50대 남성은 패기로 무장했다면 이번 저니의 공연장을 채운 같은 세대 남성들은 추억을 한껏 머금은 듯 좀 더 포근했다. 

이에 따라 공연을 매진시킨 1500명은 ‘오픈 암스’ 같은 서정적인 곡에 특히 반응했다. 애잔한 ‘페이스풀리(Faithfully)’에서 합창은 구슬픈 정서의 농도를 더 짙게 했다. 

‘라이츠(Lights)’를 부를 때 팬들은 스마트폰 불빛을 좌우로 흔들며 낭만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전주 없이 단숨에 첫 소절로 돌진한 ‘애니 웨이 유 원트(Any Way You Want It)’에서는 강력한 추억이 묻어나는 합창이 진동을 했다. 

아저씨들의 추억에 젖은 합창에 이들 마음 한 곳에 숨겨졌던 서정과 낭만이 그 얼굴을 빠끔히 드러냈다. 여전히 겨울은 혹독하나 봄 같던 이들의 청춘은 다시 소풍을 맞은 듯 고개를 들이밀었다.

저니의 전성기를 함께 한 보컬 스티브 페리가 없다는 것에 대해 상당수 한국 팬들은 공연 전에 우려를 보냈다. 하지만 저니 멤버들이 유튜브 영상을 본 뒤 영입한 마닐라 출신의 보컬 아넬 피네다는 화끈한 에너지로 아쉬움을 충분히 덜어냈다. 

첫 곡 ‘세퍼레이트 웨이스(Separate Ways)’를 시작으로 2시간여 공연 동안 무대를 종횡무진하고 마이크를 쉴 새 없이 공중에 던진 뒤 받으면서 분위기를 장악했다. 

저니 공연에 스탠딩석이 없다는 볼멘 목소리를 내던 팬들은 너나할 것 없이 첫곡부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열광했다. 본 공연의 마지막 곡 ‘돈트 스톱 빌리빙(Don’t Stop Believin’)’에서는 비교적 얌전하던 2층 끝 좌석의 관객까지 모두 기립했다. 

창단 멤버이자 현재까지 밴드를 이끌어가고 있는 닐 숀(기타)과 지난 1980년대 저니의 황금기를 함께 일궈낸 조나단 케인(키보드)과 스티브 스미스(드럼)는 본 공연에서 들려준 솔로 연주로 녹슬지 않은 기량을 과시했다. 

특히 앙코르 곡 ‘라 라자 델 솔(La Raza Del Sol)’과 ‘러빙, 터칭, 스퀴징(Lovin’, Touchin’, Squeezin’)’ 사이에 닐 숀, 케인, 그리고 원년 멤버인 로스 밸로리(베이스)가 가세해 삼각 편대로 선보인 합주는 괴력에 가까운 연주였다. 

멤버 탈퇴와 해체 그리고 재결성을 거쳤어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밴드라는 사실을 증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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