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러시아 월드컵 얘기다. 신태용 감독은 경기 직전까지 작전을 노출시키지 않고 연습에 총력을 기우린다고 했다. 그의 리더십이 자못 진지(眞摯)하고 믿을 만 했다. 그러나 첫 게임에서 우리나라는 아쉽게도 스웨덴에게 1:0의 석패(惜敗)를 하게 됐다. 이어서 두 번째 게임인 멕시코와의 경기에서도 2:1로 쓴잔을 마시고 말았다. 이렇게 되자 16강의 진출은 좌절의 위기에 놓인 것이다.  

그런데도 마지막 게임에 응원의 열기는 식을 줄 몰랐다. 6월 27일 밤 11시 이전부터 응원의 열기가 대도시의 큰 거리에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독일 축구는 FIFA 랭킹(ranking) 1위이다. 전차군단으로 지칭될 만큼 그 위용이 잘 알려 진 독일이다. 이런 독일과 맞상대로 일전(一戰)한다는 것만으로도 어쩌면 대견한 일이다. 신태용 감독과 대표 선수들은 물론 응원하는 국민들 모두가 하나 같이 비장(悲壯)한 각오이다. 이런 경기에서 전∙후반전 90분 모두 0⁚0 무승부로 끝나가는 시간까지 왔다. 추가시간이 6분 주어졌다.

그런데 일은 예상외로 엉뚱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독일 축구 골대 문전에서 어지럽게 공방(攻防)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때다. 월드컵 경기를 새로 쓰는 이변(異變)이 일어났다. 추가 시간 1분에 김영권이 1골, 6분에 손흥민이 1골, 우리의 실점 없이 2:0으로 깨끗한 승리를 했다. 

그러나 이 큰 기쁨을 받고도 F조에 속한 우리나라 축구는 16강에서 탈락했다. 정말 애석한 일이다. 여기서 어부지리(漁夫之利)를 한 나라는 멕시코이다. 우리나라가 독일에게 졌다면 멕시코는 3위로 밀려나 16강에서 탈락할 것인데 우리나라 덕에 16강에 진출한 것이다. 그들은 16강 진출에 얼마나 기뻤던지 우리나라 사람만 보면 얼싸안고 춤을 추기도 하고, 큰절을 하며 코리아를 연발했다는 외신 보도가 있었다.

운동 경기에서 ‘승부욕’이라는 잘못된 어휘를 쓰고 있다. 월드컵 얘길 했으니 이름 난 축구 선수 얘기로 예를 들어 보겠다.

“박지성과 이영표 선수는 ‘승부욕’이 남다르게 강한 선수이다.”라고 했다면, 여기서 ‘승부욕’이란 어휘는 잘못된 말이다. 왜 그런가? 그 이유는 아래와 같기 때문이다.

‘승부욕’은 ‘승부 + 욕’의 합성어이다. 이를 다시 더 풀어 보면 ‘승부’에 욕심을 갖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승부’는 ‘이길 승(勝)자’에 ‘질 부(負)’자로 된 낱말이다. 즉 승부는 ‘이김(勝)과 짐(負)’이다. 따라서 ‘이김과 짐’에 욕심을 부릴 수가 없는 것이다. 이는 논리적 모순이요 자가당착(自家撞着)이다. 이렇게 ‘승부욕’은 모순된 어휘이기 때문에 쓸 수도 없고 써서도 안 된다. 다만 여기서 ‘욕심 욕(慾)자만 빼고 나면  ’승부(勝負)‘만은 하자(瑕疵)가 없는 반듯한 어휘이다. 예를 들면 “정식 경기를 하여 양 팀의 ’승부‘를 다시 내야 할 것이다.” 라든지,  ’어떤 경기에서 승부가 나지 않을 때는 다른 경기로 승부를 낼 수도 있다‘ 또는 축구 경기에서 합성어가 돼 버린 이기고 짐을 가르는 ’승부차기‘ 도 정당한 어휘이다.   

그런데도 ‘승부욕’이라는 잘못된 말을 언중(言衆)에서는 물론, 각종 방송이나 언론 매체에서까지도 쉽게 보고 듣게 된다.

특히 방송을 비롯한 언론 매체는 국민들에게 학습 효과가 매우 크다. 때문에 언론 매체에서는 신중(愼重)을 기하여 이런 잘못된 어휘를 쓰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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