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행산 주필 지금 평양에서 2박3일 일정으로 열리고 있는 3차 남북정상회담에 우리 국민뿐만 아니라 세계의 이목이 모아지고 있다. 청와대는 이번 회담에서 남북관계 개선 발전과 비핵화를 위한 미북 대화 중재촉진, 남북 간의 군사적 긴장과 전쟁위협 종식이 의제가 될 것이라고 했다.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발전시키는 일이랄지 군사적 긴장과 전쟁위협을 종식시키는 일은 북한이 핵탄두와 핵물질, 핵시설을 폐기하고 핵 프로그렘을 제시하면 저절로 풀려나가게 된다. 미북 대화 촉진도 마찬가지다. 문제의 핵심은 북한의 핵이고, 북핵 폐기가 모든 문제의 전재조건인 것이다. 

미국과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악의 축’으로 규정될 정도로 호전적이고 국제 규범을 아예 무시한 채 제 멋 대로 날뛰는 북한이 가공할 핵무기를 다량으로 개발해 몸에 감고 세계를 향해 대들면서 막나가는 행태를 글로벌 재앙으로 규정하고 경제봉쇄에 가까운 고강도의 제재를 가하고 있다.

지난 6월의 싱카포르 미북 정상회담은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고, 판문점에서 가진 두 번의 남북 정상회담 역시 국내외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러나 이들 회담에서 합의된 ‘완전한 비핵화’는 모호한 단어 몇 개가 전부였고, 북한 김정은은 그 회담들 이후로도 ‘완전한 비핵화’를 직접 육성으로 말한 적이 없다. 물론 북한의 가시적인 조치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문재인 대통령의 방북 결단과 이에 따른 3차 정상회담 성사는 그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의미가 있고 중요하다.

지금 미국과 북한은 종전선언과 북핵 폐기를 맞바꾸는 문제를 두고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북한은 종전선언을 먼저 해줘야 핵을 내려놓겠다고 버티고 있고, 미국은 비핵화의 핵심인 신고·검증 방법과 시한 등 이른바 핵 신고서라도 제출해야 종전선언이 가능하며 제재도 풀 수 있다고 압박하고 있다. 

종전선언은 문 대통령이 지난해 7월 베를린선언에서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정착을 위해 종전과 함께 관련국이 참여하는 평화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밝힌 뒤 구체적인 안을 마련해 11월 미국 정부에 제안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한반도 종전선언에 대해 지금 국내외적으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만약 북한 비핵화 이전에 종전선언을 하게 된다면 자칫 대한민국 안보 자살의 서막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핵무기를 완전히 폐기하기 전에 종전선언이 성사되면 북한은 다음 수순으로 모든 한미 연합훈련의 영구 중단과 대북제재 완화,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고 나올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되면 대한민국은 북한이 가공할 핵폭탄 말고도 수천 기에 이르는 각종 다연장 로켓과 엄청난 양의 화학무기 등을 대한민국을 향해 군사분계선에 전진 배치해놓고 있는 상황이 유지되는 가운데 사실상 북한의 포로가 될 수밖에 없다. 해외 전문기관들은 북한이 현재 핵폭탄을 약 30여개 정도 개발해두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북한 핵은 남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세계평화와 직결된 문제이기도 하지만 제1차 피해 당사국은 대한민국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정책·군사분야 싱크탱크인 랜드연구소(RAND Corporation)에 의하면 북한은 핵무기와 미사일 말고도 국제적으로 개발과 사용이 전면 금지된 VX 등 맹독성 화학무기를 현재 약 5천여 톤 정도 개발해두고 있으며, 이 같은 화학무기 1천 톤이면 대한민국 인구의 80%에 해당되는 약 4천만 명을 한 순간에 몰살시킬 수 있다고 한다. 

북한 핵은 마땅히 폐기되어야 한다. 그러나 북한 비핵화를 종전선언과 맞바꾸는 일은 신중하게 해야 한다. 종전선언은 당사자 간 적대행위를 종식한다는 합의에 따라 국제법적 구속력이 부여된다. 북한은 종전선언 이후 적대행위 종식이라는 국제법상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서라는 명분을 내걸어 합법적으로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할 수 있다. 정전협정은 유엔군사령부가 관리하고 있고 그 사령관은 주한미군 사령관이 겸직한다. 정전협정 체제유지의 실질적 근간이 주한미군인 것이다.

국가 원로급 인사들로 구성된 ‘대한민국 수호 비상국민회의’라는 시민사회연합체가 지난 4일 시국선언 기자회견을 열고 ‘한반도 정전선언은 월남 패망의 도화선이 된 1973년 파리평화협정의 전철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 며 ‘연내(年內) 종전선언 포기’와 ‘선(先)비핵화’ 원칙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주문했다.

파리평화협정은 1973년 1월 미국과 남베트남(자유월남), 북베트남 사이에 조인된 종전선언으로, 이 선언에 따라 그해 3월 미군은 남베트남에서 철수하고 그로부터 2년 만에 남베트남은 북베트남에 의해 흡수 공산화되어 자유월남이라는 국가는 지구상에서 사라졌다. 수많은 지식인과 기업인, 공무원과 군·경 출신들이 학살되고 수백만의 월남 국민들이 재산을 몰수 당하고 직장에서 쫓겨나 보트 피플이 되었다.

우리 정부와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한반도 종전선언에 보다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북한이 핵무기를 남김없이 폐기하기 이전에 성급하게 한반도 종전선언을 하게 되면 자칫 감당하기 어려운 재앙이 닥칠 수도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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