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산 주광현가을의 풍성함이 잘 드러나는 10월이다. 들녘엔 가는 곳마다 수확을 기다리는 오곡백과가 널려 있다. 봄부터 여름 내내 농부들의 가꾼 정성이 들녘을 꽉 채운 것이다. 

‘청둥호박’이라는 순우리말이 있다. 나는 이 말을 처음 듣고 너무 생소하여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찾아보았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청둥호박’이 어떤 호박인지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을 줄로 안다. 

우리말과 글을 사랑하고 아낀다는 내 자신이 무척이나 부끄러워 졌다. 국립국원원 발행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청둥호박’을 이렇게 풀어 놓았다.

청둥호박 : 「명사」 『식물』 늙어서 겉이 굳고 씨가 잘 여문 호박

위와 같이 ‘청둥호박’에 대한 풀이 중 ‘늙어서~’라고 서술한 대목이 마음에 걸린다. 이 말을 ‘익어서~’ 또는 ‘잘 익어서~’라고 표현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또 마음에 상처가 된다.

왜 익은 과일(호박)을 ‘늙었다고 했을까? 개인적인 생각으로 국립국어원에서 발행한 표준국어대사전이 이런 점에서 마음에 앙금이 인다. 유감이고 불만이라는 얘기다. 이런 일을 비롯하여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이치에 맞지 않게 풀어 놓은 낱말도 있다. 그런 낱말을 발견하면 즉시 댓글을 달아 보내지만 회신은 받지 못한다. 일방적인 약속으로 필요하면 댓글은 달되 회신은 해주지 않는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는 국립국어원에 댓글을 몇 번 달다가 댓글로는 회신도 못 받고 더구나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 없다고 판단되어 국립국어원 홈페이지 게시판에 들어가 표준국어대사전에 올라 있는 어휘 풀이의 용례 중 오류 부분을 지적하고 이에 대해 국립국어원에서 그들의 잘못을 시인하고 고칠 것을 약속 받은 일도 있다. 이에 관한 내용은 지면 관계상 여기서는 더 언급하지 않겠다.

여기서는 호박에 대하여 호박 대변인 격으로 나서서 잘못 부르고 있는 호박 지칭에 대한 얘길 하려고 한다.

가을은 다른 오곡백과와 같이 들녘에서 온 햇살과 비바람 소나기까지를 맞으며 노랗게 잘 익어가는 호박 수확의 철이기도 하다.    

호박은 어떤 열매인가? 호박은 채소이다. 다 아시는 바와 같이 채소에는 세 종류가 있다. 즉 뿌리채소(根菜類)와 잎줄기채소(葉菜類), 그리고 열매채소(果菜類)가 그것이다. 

그 중에서 호박은 열매채소이다. 열매채소에는 호박뿐만 아니라 더 여러 가지 채소가 있다. 보기를 들면, 가지, 오이, 호박, 수박, 박, 참외, 딸기, 고추, 토마토 등 참 많이 있다. 

이렇게 여러 가지 열매채소의 열매에는 ‘늙다’라는 동사를 붙이지 않는다. ‘익었다.’ 라고 하면 될 일이다. 그러나 일부러 한번 ‘늙었다.’를 이들 채소 앞에 붙여보면 어떤 느낌이 드는가 보자. 늙은 고추, 늙은 가지, 늙은 수박, 늙은 참외, 늙은 딸기, …….자! 어떤가? 늙은 수박이나 늙은 참외라고 한다면 이 과일을 먹고 싶은 마음이 생길까? 전혀 아니다. 식욕감퇴 증이라도 생길 것이다. 그런데 호박도 다른 과일과 같은데 왜 익은 호박에만 ‘늙은 호박’이라 할까? 

  호박은 그 크기나 여물기에 따라서 여러 가지 식용 재료로 다양하게 사용하고 그때마다 부르는 이름도 다르다. 그 식용에 따라 다음과 같이 대개 3단계로 구분한다.

꽃이 떨어 진지 며칠 되지 않아 한창 크고 있는 어린 호박은 ‘애호박’이라 부르고, 애호박 시기를 지났지만 아직 익지는 않아 푸르거나 녹색 빛을 띈 큰 호박은 ‘풋 호박’이라 한다. 그리고 이 풋 호박이 그 시기를 넘으면 주황빛이나 노란 빛을 띈 ‘익은 호박’이 된다. 그러나 통상적으로 부를 때는 익은 호박도 그냥 호박이라 해야 한다. 하지만 굳이 이를 애호박, 풋 호박, 익은 호박으로 구분지어 말할 때는 ‘익은 호박’이라 해야 한다. 이때 익은 호박을 ‘늙은 호박’이라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늙다’는 것은 ‘사람이나 동물, 식물 따위가 나이를 많이 먹다.’라는 뜻으로 말할 때만 쓰는 동사이다. ‘늙은 호박’이라는 말! 정말로 잘못된 말이다. 

옛날엔 그러지 않았는데 근래 약 40여 년 전후부터 호박 사러 다니는 사람들이 먼저 이렇게 지칭했는지 아니면 방송국에서 이런 말이 먼저 나왔는지 그것도 아니라면 어느 지방에서는 옛날부터 이런 잘못된 지칭을 썼는지 알 수 없으나 참으로 개탄할 일이다. 어쩌다가 우리말이 이렇게 저질로 변해 가고 있는지 장래가 암담하다. 잘못을 알면 고쳐 말할 일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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