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경 호 안산시 중앙도서관장 새벽 4시에 도착한 곳은 진하해수욕장. (지난달에는 미포항에서 대변항까지 걸었으니 오늘은 대변항부터 걸어야 하나 간절곶에서 일출을 맞이하기 위해 트레킹 코스를 역순으로 했다.) 물빛이 맑기로 유명한 진하해수욕장에는 잔잔한 파도가 가끔 철썩거렸다. 마치 이곳에서 열흘 있으면 전국 윈드서핑대회가 있으니 놀러 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10여분을 걸어서 만난 명선교에서 명선島를 감상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된장국에 밥 한 덩어리 말아서 오물거리며, 하늘을 보니 별이 총총히 떠있었다. 

진하에서부터 간절곶까지는 40여분 걸어야 했다.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해가 떠오르는 간절곶. 울주군 서생면 대송리 공기 맛이 달콤하다. 막힌 코가 뻐-엉 뚫리는 기분이다. 들꽃들이 기지개를 켜고 수평선에는 붉은 기운이 용솟음치기 시작했다. 

과연 간절곶 일출이다. 해 기운을 받은 간절곶은 황금빛을 받아 번쩍거렸고 바닷물이 처얼썩하며, 소리를 질렀다. 먼 바다에서 바라보면 뾰쪽하고 긴 간짓대(대나무 장대)처럼 보인다해 붙여진 간절곶. 그곳에는 새천년 기념비와 신라 박제상을 기다리는 모녀상. 행운을 배달하는 우체통이 설치돼 있었다. 해안가 옆으로는 나무데크가 설치돼 있었고 카페촌이 형성돼 있었다. 통상 바닷가에 줄지어 선 횟집 풍경과는 대조적으로 유럽풍이다. 어둠이 몰려드는 저녁시간에 쟝 클로드 보렐리가 연주하는 바다의 협주곡을 들으면서 마시는 커피는 어떤 맛일까.  

저 멀리에서 보였던 커다란 물체가 점점 다가왔다. 고리원자력발전소였다. 2004년 5월 규모 5.2의 지진이 발생했던 울산시 울주군이다. 2010년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발생해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아가며, 자연은 인간에게 경고를 했다.  2012년 준공한 고리원자력발전소는 리히터 7.0의 지진에 대비해 만들어졌다고 했다. 그러나 그곳 주민들은 이런 시설이 들어선 것이 마땅치 않은 것 같이 보였다. 우리에게도 지진해일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해안가에 장이 서 있었다. 바닷가 옆이니 각종 해산물과 봄을 알리는 밭작물이 도로에 가지런히 펼쳐져 있었다. 여행을 하면서 5일장을 만나면 즐겁다. 호떡을 입에 베어 물고 이곳저곳 기웃거리는 것도 여행의 즐거움이다. 몸빼바지도 있고 등산셔츠도 빠질 수 없다. 통영 동피랑마을의 담장 벽화가 유명세를 탔기 때문에 그랬을까. 이곳에도 담장벽화가 발걸음을 잡는다.  

발걸음이 다른 사람들이 제각각 임랑해수욕장 방향으로 걸었다. 은빛파랑에서 이름을 땄다는 임랑해변은 파도가 하얀 이빨을 드러냈다. 한 달에 한 번씩 걷는 해파랑길. 2년 전, 백두대간종주를 하면서 그랬던 것처럼 요즘은 해파랑길에서 삶을 생각하며, 즐거움을 찾고 싶다. 알랭 드 보통은 <여행의 기술>에서 “여행은 생각의 산파다”고 했다.



예전에 칠암항에는 바위 7개가 있었는데 방파제가 만들어 지면서 바위 흔적은 없어지고 지금은 이름만 남아 있었다. 무엇인가 허전했다. 우리 삶도 언젠가는 실체는 없어질 것이고 이름만 남을 것이다. 어쩌면 이름조차도 쉽게 잊혀 지겠지!

이상한 물체가 보였다. 등대는 분명한데 그동안 보았던 등대모형과는 다르다. 야구등대였다. 한켠에는 큰 등대 모양을 축소해서 어른 키만 한 등대 모형의 포토존이 있었다. 흰색은 야구등대, 적색은 갈매기등대였다. 

2002년 세계야구대회 우승을 축하하기 위해 만들어 진 야구등대 내부에는 롯데 자이언츠팀 소속 부산갈매기 故 최동원 선수에 관한 내력이 적혀 있었다. 부산 사람들이 왜 그토록 야구장에서 롯데를 열광하며, 응원하는 지 알 것 같다. 아들녀석은 아무 연고가 없는 롯데 팬이다. 왜 롯데 팬이 됐냐는 내 물음에 “꼭 이유가 있어야 돼?” 하며, 나에게 반문했다.  

일광해수욕장으로 향하다가 바다에서 어른 키 보다 큰 다시마를 건져냈다. 해변을 오르내리다 보니 다시마는 물기가 말라갔다. 자연 건조한 다시마에 입맛이 다셔졌다. 울창한 소나무 군락지 옆 도로에 설치된 반사경에 내 모습이 보였다. 공직에서 33년을 보낸 내 얼굴이다. 아직 40대 초반 밖에 안 된 것 같은데 시간이 빠르다. 청춘이 어디론가 가버린 모습이다. 

이천강과 이천포가 맞닿는 일광해수욕장에는 젊은이들이 시끌시끌했다. 오늘 트레킹 일정을 마친 다리가 부르르 떨렸지만 모처럼 편안하게 걸었다. 지난 트레킹에서 점심을 먹었던 대변항에서 멸치회랑, 꽁치회를 안주 삼아 막걸리를 걸쭉하게 들이켜고 싶다. 

(2013. 4.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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