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경 호 안산시 중앙도서관장 방어진항 바람이 차갑다. 어둠을 걷어내며, 걷다보니 어느새 수평선 위로 해가 떠올라 있었다. 지난 2월부터 해파랑길 트레킹을 시작하면서 한 달에 한 번씩 바다에서 일출을 맞이했다. 해는 어제도 떴고 오늘도 어김없이 뜨고 있지만 새로운 마음을 갖게 해서 좋다. 

2쇠귀 신영복 선생은 “살아간다는 것은 수많은 처음을 만드는 것이다”고 말했다. 늘 마음을 새롭게 하라는 가르침이다. 일출을 맞이하면서 느슨해지는 마음을 다잡아본다. 

아욱된장국에 밥 한 덩어리 말아 먹고 슬도를 향해 어슬렁 걷는 모습들이 여유롭다. (瑟島)슬도는 갯바람과 파도가 바위에 부딪칠 때 거문고 소리가 난다고 해 붙여 진 이름이다. 바위로 밀려 온 파도가 바위에 부딪혀서 하얀 포말로 부서져 먼 바다로 나아갔다.

오늘 코스는 방어진항에서 시작해 대왕암을 둘러보고 일산해변을 거쳐 현대중공업 담장을 따라 봉대산 고개를 넘고 주전해변에 도착하는 여정이다. 해안가에 피어난 분꽃이 바람에 한들거렸다. 

누렇게 익은 보리 옆으로 초록색 옷을 입은 양파가 싱그러움을 느끼게 한다. 햇볕에 덜 말려 진 오징어가 공터 후미진 곳에서 가끔 넘실대는 바닷물을 따라 움직이고 눈을 시리게 하는 햇빛이 물비늘을 만들어 놓는 동해를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탕건같이 생겼다고 해서 붙여 진 탕건바위가 바다 속에서 삐쭉 솟아 있었고 부부소나무(松)가 바위틈을 비집고 나란히 서 있었다. 천년만년 후대들에게 좋은 금슬을 떠올리게 하는 모습을 보며, 내 모습을 들여다본다. 

5년 전 백두대간 종주산행을 함께했던 김정녕 안산등산클럽회장과 몇몇이 웃음꽃을 피어내고 있었다. 함께 트레킹을 하는 여성들이 벚을 따려고 까치발을 띄고 있는 모습을 보고 웃고 있는 것이다. 어릴 적에 벚을 따먹어 검게 물든 입술을 하고 동무들과 멱을 감던 때가 떠올랐다. 요즘 자주 옛 생각이 나는 걸 보면 내가 나이를 먹어 가기는 하나보다.  

짙은 소나무향을 풍기는 곳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해송이 울창한 곳에 서서 생각하니 어제가 33년 전 지방공무원에 임용됐던 날이었다. 남은 기간도 늘 푸른 마음으로 청년답게 살아갔으면 좋겠다.

대왕암이 병풍처럼 서 있었다. 나라를 지키는 용이 되고자 스스로 동해에 수장(水葬)된  신라 30대 문무왕. 그 옛날 아낙들은 지아비를 따라갔다고 했던가. 왕비의 넋도 용신(龍神)이 돼 바위가 됐다는 대왕암은 바위와 바위가 이어져 있었다.  1400여년 세월은 조각조각 바위를 잇고 이어 하나의 역사를 만들어 놓았다. 



저 멀리 일산해수욕장이 펼쳐져 있었고 현대중공업 기계들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해파랑길은 일산해수욕장에서 해안길이 끊어져 시내로 연결돼 있었다. 때 이른 초여름 바다는 아직도 차가운데 헤엄을 쳐서 모래언덕으로 걸어 나오는 젊은이들을 보며, 저 멀리에서 “저기 물개 봐라, 아니 돌고래다” 하면서 박자를 맞추고 있었던 우리는 멋쩍게 웃었다. 사람이면 어떻고 돌고래면 어떤가! 이 또한, 여행의 즐거움이다.

길은 현대중공업 담장 옆으로 이어져 있었다. 넝쿨장미가 화사하다.  안산시 꽃 (市花)은 장미. 잠시 여행자를 혼돈케 하려고 그러는지 상록수 요양병원도 있고  안산삼거리도 눈에 띄었다. 붕어빵을 몇 개 사서 베어 물었다. 바닷가에서 붕어빵이라니, 옆 동네 울진에서는 멸치가 잘 잡히니 민물고기인 붕어가 아니라 멸치가 빵 속에 들어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가 산산조각 났지만 이 또한, 여행의 재미가 아닐까.

주전해변을 가기 위해서는 봉대산 고개를 넘어서야 했다. 이내 아스팔트로 이어진 길에는 그늘이 드리어져 있었다. 점심 먹기 참 좋은 곳이다 생각하며, 지나쳐 버스가 기다리는 주전해변에 도착하니 30명이 앉을 곳이 마땅치 않았다. “아까 우리가 지나쳐 왔던 곳이 좋지 않겠어!” 하며, 동의를 구하는 말에 모두들 “그 곳이 좋지!”하며, 맞장구를 쳤다. 발품을 팔아 다시 지나쳐 왔던 그늘진 곳에 깔판을 깔았다. 막걸리 한 잔 털어놓고 번개탄에 그을린 삼겹살 한 점을 입에 넣으면서 “행복이 별건가!” 하는 내 말에 모두들 맞장구를 친다. 행복은 자기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 아니겠는가! 그렇게 해파랑길 트레킹은 즐거움과 기쁨과 행복을 함께하는 시간이 됐다.

2013. 5. 25.  

울산 동구 주전해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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