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안가에서 일행과



최 경 호 안산시 중앙도서관장 오늘 트레킹 거리는 22.3km. 주전해변을 출발해 정자항을 거쳐 경주시에 위치한 나아해변까지 걷는 코스다. 지난 2월 부산 오륙도에서 출발한 해파랑길 트레킹은 울진과 

울산을 지나 오늘은 경주시에 도착하게 된다.

시작이 반이라더니, 770km 해파랑길을 어느새 7분의 1을 걷고 있는 것이다. 왜구의 침입을 알렸던 주전봉수대가 있는 봉대산이 짙푸른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해가 수평선 위에 얹혀져있는 구름에 가려져 있다가 살짝 모습을 드러내고 넘실거리는 파도가 가슴을 시원하게 한다. 

주전해변에서 정자항까지는 7.8km. 장마 때문에 취소했다가 1주일 후로 날짜를   잡아서 그랬는지 오늘 트레킹 하는 인원은 18명. 단출하다. 무덥다는 일기예보에 지레 겁먹은 발걸음들이 빠르다. 

주전포구의 아기자기한 구조물들이 눈길을 끌었다. 색깔을 입힌 바닷물 침수방지턱과 어촌사람들의 모습을 재현한 벽화도 보였다. 정자항으로 가는 곳 해안가에 밤톨만한 몽돌이 깔려 있었다. 한쪽에서는 몽돌을 끌어 모아 텐트를 칠 수 있도록 넓은 야영지를 만들고 있었다. 해안가를 벗어나니 집들 옆에 꽃들이 활짝 피어 있고 담장 너머로 살구가 눈길을 끈다.  

진실은 시간이 걸릴 뿐 밝혀진다는 용바위 설화와 바다로 간 소와 망이의 이야기가 있는 우가항 설화는 거짓은 진실을 이길 수 없다는 삶을 생각하게 했다.

기다리는 마음이 꽃말인 원추리가 바람에 산들거리고 어망을 손질하는 아낙네와 출항을 앞둔 배를 만지작거리는 어부들의 손길은 바쁘기만 하다. 활어직판장 상인들은 손님 맞을 채비를 하느냐고 분주한 반면 귀신고래 형상의 고래등대 한 쌍이 포구를 지키는 정자항은 고요했다.

아침을 시원찮게 먹은 뱃속이 아우성쳤다. 광어와 갑오징어를 손질해 해녀의 집 옆에 자리를 잡고 7.8km 걸어 온 다리를 주무르며, 막걸리 한 잔을 입에 털어 넣는 맛이 좋다.

해변은 몽돌이 파도와 어우러져서 예쁜 소리를 냈다.  햇빛이 뜨거워지자 참지 못하겠다며, 바닷물 속으로 뛰어 들어가는 이장신 선생을 따라 모두들 등산화를 벗고 종아리까지 바지를 걷어 올렸다. 

몽돌을 밟아 아팠던 발이 어느새 편안해 져 왔다. 바닷물 속을 함께 거닐던 사람들이 한결 가까워진 느낌이다. “형님 드세요.” 하며, 건네준 시원한 맥주를 마신 값으로 바다와 관련된 정현종의 <섬>과 장콕도의 <귀>를 읊조리는 시간은 즐겁다. 

더위를 식히기 위해 아이스크림을 사서 쪽쪽 빨면서 먹는 재미도 일상에서 일탈한 여행의 즐거움이다.

강동화암(花岩)주상절리는 정자항에서 1시간 거리에 있었다. 약 2000만 년 전인 신생대 3기에 분출된 현무암이 냉각되면서 열수축작용으로 생성된 냉각절리가 바닷가에 펼쳐져 있었다. 주상절리는 기울어지고 누워있고 위로 솟아 있고 부채꼴을 하며, 여행자들의 시선을 끌었다. 제주올레길 8코스에 있는 주상절리와는 또 다른 볼거리다.

해안가 옆에 다시마를 말리는 사람들이 보였다. 아주머니들하고 일하는 친구들은 인도네시아가 고향이라고 했다. 한국에 온 지 1년 됐다는 한 녀석들은 무엇이 즐거운 지 춤을 추었고 또 한 녀석은 무엇이 그리 웃기는지 쓰러져서도 웃고 있다. 저렇게라도 해야지 그리운 고향의 가족이나 친구들을 잠시라도 잊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하니 안쓰럽다.

▲ 말려지는 오징어

“야호! 경주다” 드디어 경주 양면남에 도착했다. 1.3km에 달하는 관성해변 뒤편에는 해송이 그늘을 드리우고 있고 밤톨보다 큰 몽돌이 깔려 있는 바닷가는 챠르챠르하며,  맑은 소리를 냈다.

17년 동안 오직 대하소설인『혼불』을 남기고 세상을 뜬 최명희는 얼음장 밑을 흐르는 시냇물 소리를 3일 밤낮을 살피다가 소살소살이라는 의성어를 찾아냈다고 한다. 몽돌과 파도가 어우러지며, 내는 챠르챠르하는 소리가 참 맑다. 가슴이 답답할 때 들으면 참 좋겠다.

모래와 몽돌이 어우러져 있는 모래언덕을 걷다보니 물길이 길을 끊어 놓은 곳이 있었다. 기사도 정신을 발휘해서 여성들을 업고 건널 수 있게 하겠다는 남성들, 머뭇거리며, 징검다리를 만들어 건너겠다는 여성들, 등을 징검다리 삼아 건너라며, 구부리는 진종재 선생을 보면서 한 참을 웃으며, 도착한 읍천마을 집 담장에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여행 온 젊은 친구들이 신기한 지 골목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통영 동피랑마을 벽화가 유명세를 타자 전국에서 담장에 벽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마을을 예쁘게 꾸미겠다고 시작한 벽화들을 관리하지 않아 오히려 마을이 지저분한 곳이 많다고 한다. 

월성원자력발전소에서 지원한 그림 있는 어촌마을 읍천항 갤러리도 정신을 어지럽히는 그림도 있었지만 걸음을 멈추게 하는 것들이 있다. 이런 작품들을 만나는 것도 또한, 여행의 즐거움이다.  

오늘 점심 요리를 할 요량으로 바다장어를 손질하는 아주머니들에게 장어를 사서 도착한 곳은 오늘 트레킹의 끝 지점인 나아해변. 해변가에는 더위를 이기지 못하는 젊은이들의 들뜬 목소리가 파도와 어우러져 뒹굴고  있었다.  

(‘13. 6.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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