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립 기자 / ‘총수 구속’이라는 암초를 만난 삼성그룹이 컨트롤타워 부재로 굵직한 투자 계획이 계속 미뤄지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재계 고위 관계자는 23일 “세간에서는 총수가 없다고 글로벌 회사가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하는데 영향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기존에 돌아가던 사업은 그대로 가겠지만 환율 불안정, 트럼프발 리스크, 업계의 빠른 변화 등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회사의 명운을 건 투자 집행은 총수없이 결정을 내리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어 “SK를 봐도 최태원 회장이 나온 이후 굵직굵직한 투자를 연이어 집행하고 있는 반면, 삼성은 최순실 사태가 본격화된 이후 큰 그림을 그리고 있지는 못한 모습”이라고 평가했다. 

삼성은 현재 이재용 부회장이 부재인 상태에서 비상 상황인 그룹을 주도적으로 이끌 리더십을 제대로 세우지 못하고 있다. 

이 부회장이 구치소 내에서 면회를 통해 보고를 받을 수 있지만 현장에서 직접 즉각적으로 일을 챙기는 것과 비교해서는 차질이 불가피하다. 

이 부회장을 대신한 미래전략실의 역할론이 대두되고 있지만 최지성 실장과 장충기 차장(사장)이 ‘최순실 게이트’로 인한 특검의 수사를 받고 있어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미래전략실이 예전과 같다면 이같은 상황에 수월하게 대처할 수 있겠지만 해체를 앞두고 있고 ‘총수 구하기’에 총력을 다하고 있어 사실상 손발이 묶인 상태다. 

삼성은 이 부회장을 비롯한 그룹 수뇌부에 대한 특검 수사가 진행 중인 만큼 그룹 개혁안 발표 시기를 미루고 있다. 사장단 인사와 조직개편 등은 적어도 오는 5월말이 지나야 윤곽을 드러낼 전망이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일단 임원 인사가 나야 조직개편을 하는 등 위에서부터 맞춰질 수 하는데 지연이 되고 있다”도 설명했다. 

아울러 그룹 차원에서 매주 수요일 진행하는 수요사장단회의 역시 브레이크가 걸렸다. 수요사장단협의회는 수요일마다 삼성의 계열사 사장단이 모여 강연을 듣고 미래 먹거리와 장기 플랜을 고민하는 자리다. 

연말·휴일 등의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취소하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지난달 18일에도 한 번 취소가 됐고 22일부터는 잠정 중단하게 됐다. 

그룹 입장에서는 총수가 구속수사를 받는 상황에서 계열사 별로 각 사장들이 비상 경영에 집중하기 위해 이같은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당분간은 각 계열사별로 전문경영인이 회사를 이끌어가는 대신 그룹을 아우르는 빅딜이나 조직개편 등은 이 부회장의 신변 결과가 최종적으로 확정될 때까지 미뤄질 예정이다. 

삼성전자 등 전자 계열사는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이, 나머지 계열사는 각 사장들이 이끌어가는 사장단협의회 체제로 경영이 돌아갈 것으로 보인다. 

현재 삼성그룹 내에 사장 이상의 직급을 가진 인사는 모두 49명이지만 회사의 명운을 좌우할 굵직한 결정을 내리기에는 현실적으로 무리가 따른다. 

삼성의 주요 경영현안은 계획대로 진행되겠지만 대대적인 M&A(인수합병) 등 미래 성장동력 사업 발굴에는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업계의 시각이다. 

실제로 그룹 내에서 가장 비중이 큰 삼성전자 역시 올해 투자 계획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열린 4분기 실적 발표에서 “올해 시설 투자규모를 아직 확정하지 못했다”고 했다. 

오는 3월에 열릴 주주총회에서의 안건은 사업재편 등의 굵직굵직한 내용이 빠질 예정이다. 올해 주총에서는 현금배당, 자사주 매입 및 소각 등의 안건만 상정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삼성전자 외에 물산, SDI, 전기 등 주요 계열사도 아직 안건과 주총 일정을 확정하지 못한 상태다. 오는 3월 중에 주총을 열어야 하는 만큼 조만간 일정이 정해지겠지만 안건은 최소화될 전망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CEO들은 임기가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비즈니스 파트너 입장에선 어떤 약속도 확실한 담보가 될 수 없다”며 “전문경영인이 실무적인 일을 한다면 큰 결단은 오너가 내리는 한국의 기업 구조 자체도 영향을 미친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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