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행산 주필 지난 9월 남북 정상회담 때 특별수행원 자격으로 방북한 우리 기업 총수들이 옥류관에서 냉면을 먹고 있다가 불쑥 들이닥친 리선권 북한 조평통 위원장으로부터 "아니, 지금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느냐?"는 막말 수준의 꾸지람을 들었다고 한다.

리선권의 이 같은 노여움은 남쪽 기업인들이 자신들에게 돈을 싸들고 오지 않아 대북 경협이 부진하다고 불만을 품고 있던 차에 터져 나온 것이라고 한다. 이날 면박을 당한 우리 기업인들은 삼성·현대차·SK·LG그룹 등 세계적 수준의 글로벌 기업을 이끄는 총수들이다. 밥 먹다가 느닷없이 ‘목구멍’ 어쩌고 하는 상소리에 가까운 천박한 지청구를 들은 총수들의 표정이 어떠했을지 궁금할 지경이다. 

당시 이들 기업인들은 북한의 강한 희망에 따라 청와대의 요청으로 정상회담에 동행했다. 하지만 국제적 대북제재가 이중 삼중으로 작동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기업들이 대북지원에 나서는 것은 자살행위와 다를 게 없다. 지금은 경협을 명분으로 돈을 갖다 바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도대체 우리 글로벌 기업 총수들이 무얼 하자고 북한에 가야 했으며, 우리 정부는 왜 자국의 세계적 기업 총수들이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실패 국가의 관리에게 이런 몰상식한 대접을 받도록 만드는가? 

리선권의 천박하고 무례한 행태는 이번만이 아니다. 그는 회담 상대인 조명균 대한민국 통일부 장관에게도 '아랫것' 대하듯 한다. 지난 10월15일 판문점 남북고위급회담 때 남측 대표인 조 장관이 북측 대표인 리선권 앞에서 "말씀 주신 대로 역지사지하면서 문제를 풀어가겠다"고 머리를 조아리자 리선권은 "역지사지 같은 말 하지 말라"고 쏘아붙였다. 

말하자면 "하명하신 대로 역지사지하면서 받들겠나이다"라고 한데 대해 "역지사지 좋아하네"라고 힐난한 셈이다. 10·4선언 11주년 기념 남북공동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대규모 방북단이 평양에 갔을 때도 남측 단장인 조 장관이 약속장소에 2~3분 늦게 나타나자 리선권은 "단장부터 앞장서야지 말이야!"라고 대놓고 꾸짖었다.

‘주의’를 받은 조 장관이 "고장난 시계 때문"이라고 하자 리선권이 이번에는 "시계도 주인을 닮아서 저렇게....”라며 아예 깔아뭉개듯 퉁박을 줬다. 조 장관은 "시계부터 새로 사야겠다"고 멋쩍게 웃었다고 한다. 남·북 관계에서 북한이 위압적으로 나오고 그 앞에서 남측은 비굴하게 굽실거리는 이런 모습은 새삼스러운 게 아니다.

가난하고 잘 살고 하는 게 문제가 아니다. 북한은 핵을 가졌고 1천기가 넘는 장사정포를 남쪽을 향해 전진 배치해두고 있다. 고강도로 훈련시킨 10년 복무의 병력이 대한민국 병력보다 두 배가 넘고 엄청난 양의 화학무기도 갖고 있다. 그런 반면, 우리는 계속 국방력을 축소하고 있다.

만약 ‘제재 완화를 통해 핵 보유국 지위를 확보’하려는 북한의 전략이 성공한다면 그때부터 북한은 본격적으로 상전이 돼 남한을 식민지로 여기고 아랫것 취급할 가능성이 많다. 그때 북한의 거칠고 천박한 ‘혁명전사’들이 또 무슨 막말과 꾸중을 해대며, 남한을 닦달을 할 지, 벌써부터 입맛이 싹 가시지 않을 수 없다.

저작권자 © 경기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