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행산 주필 인간의 의식은 언어로부터 시작된다. 따라서 북한에서는 의식화의 일환으로 모든 용어의 의미를 본래의 의미가 아닌, 사회주의 혁명에 부합되는 의미로 재구성해 사용해오고 있다. 

북한 사회의 체제가 그러하니까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남북이 화합하고 하나가 되려면 이를 비난만 할 수도 없다. 이같은 현상은 공산주의 특유의 언어전술에 따른 것이기 때문이다.


청소년 통일교육의 방향 

대한민국 국민은 북한 주민의 ‘용어 차이의 불가피성’을 이해하되 비판하거나 다툴 것이 아니라 인내와 포용적인 방법으로 “그 용어의 본래의 뜻은 이런 것”이라고 타당하고 보편적인 요소의 해석방법, 곧 정론(正論)을 제시해 줌으로서 하나의 인식, 공통된 사유를 도출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마음이 하나가 되고 동질감이 이뤄질 수 있으며, 진정한 의미의 평화와 통일이 시작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북한 체제의 특수성과 그에 따른 말의 특수성을 알아야 하고 북한주민이 사용하는 용어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사상 관련 용어에 대한 정확한 지식과 인식교육이 필요하다. 

언어는 의사소통의 도구인 동시에 인식과 사유의 도구이기 때문에 언어생활에서 사용되는 용어들과 그 용어들의 의미는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사물인식과 사상에 영향을 미친다. 그 중에서도 특히 사상과 관련된 용어들은 사물인식과 사유의 핵심적 기호이다.

인간은 감각과 본능적 욕구를 가진 존재이기 때문에 완벽한 객관성을 유지하기가 어렵다. 인간은 자기의 희망과 욕구가 충족되기를 바란다. 따라서 사회현상을 이해하고 평가함에 있어서 자신의 욕구충족을 방해하는 현상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관점을 가지게 되고 그 반대의 현상에 대해서는 수용적인 관점을 가지게 된다. 

이러한 속성으로 인해 인간은 사회현상에 대한 사유에 있어서 편견과 왜곡을 범하게 되고 그러한 편견과 왜곡을 정당화하는 관념과 이론이 생기게 된다.

동질성을 지닌 공동체라 할지라도 그 구성원들의 사회인식과 사유가 각기 다르면 그들의 사회적 행동이 서로 다를 수밖에 없고 구성원들이 서로 사회적 행동을 지속적으로 다르게 하면 그 공동체는 비록 통일된 하나의 국가라 할지라도 혼란과 다툼과 분열을 면할 수 없게 된다.

인간의 사유능력은 계속 발달해왔고 앞으로도 발달할 것이지만 본질적으로 한계가 있다. 이러한 인간의 사유능력의 한계는 사회현상을 이해하고 평가하는 데 있어서, 그리고 삶을 영위하면서 당면하게 되는 문제들의 해결을 강구함에 있어서 미리 마련된 해석방법과 처방전, 곧 이미 마련된 정답의 도움을 필요로 하게 된다. 

이때의 해석방법과 처방전이란 편견과 왜곡된 관념을 내포하지 않은 타당한 보편적 요소의 해석방법과 처방전, 곧 정론(正論)을 말한다. 이를 ‘세계관’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현대의 학문분야로는 ‘관념학’ 또는 ‘인식론’에 속한다.

진정한 평화와 통일을 위해서는 남북의 사회현상을 바르게 이해하고 비판이 아닌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세계관, 곧 바른 인식교육이 필요하다. 이것이 통일교육의 핵심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혁명적 사회주의를 적대시해왔다. 혁명적 사회주의란 공산주의와 완전히 동일한 것이다. 정부와 교육기관들은 지금까지 공산주의를 비판하고 그에 반대할 것만을 교육·홍보했을 뿐 공산주의와 사회주의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공급하지 않았다.

어차피 반대할 사상이므로 그에 대한 정확한 지식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판단에서였을 것이다. 그 결과 국민들이 공산주의와 사회주의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쌓을 기회는 거의 없었다.

일반 국민들, 특히 통일한국의 주역이 될 청소년들은 남북공존과 교류·통일이 현실화될 수도 있는 오늘날에도 북한의 사회주의에 대해 여전히 잘 알지 못하고 있으며, 그와 관련돼 북한 주민들이 사용하고 있는 용어들 앞에서 혼란을 느끼고 있다.

무엇보다 우선 상호간에 말(뜻)이 통하지 않은 관계에서 어떻게 교감을 이룰 수 있으며, 어떻게 ‘하나’가 될 수 있겠는가? 평화와 통일은커녕 오히려 자칫 적대감만 증폭되고 싸움만 격화될 수 있다.

결 어

통일기반 구축을 위한 청소년 통일교육은 가장 먼저 남북 청소년이 하나의 인식, 공통된 사유를 획득할 수 있도록 사상 관련 용어에 대한 최소한의 교육을 실시하는 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남과 북은 한 민족이면서도 오랜 세월 동안 전혀 다르고 서로 으르렁거리며, 대결하는 적대적 체제에서 각기 살아왔기 때문에 인간의 사고행위의 핵심인 사물인식과 사유가 상당부분 다를 수밖에 없다.

우리 정부의 지금까지의 통일교육은 통일문제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제고(提高)하고 통일의지를 결집하는 수준에 머물러왔다. 늦었지만 이제부터라도 정부 차원에서 정예의 통일교육 전문인력을 양성해 각급 학교와 민간단체 등에서 남과 북의 사상용어 인식교육에 대한 보다 실질적이고 본격적인 교육을 실시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하고 실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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