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경 호 안산시 중앙도서관장새벽 3시 30분에 도착한 경주수협은 짙은 어둠이 깔려 있었다. 출항을 준비하는 고깃배 위에서 바쁘게 손을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부시다. 그렇게 새벽은 일하는 사람들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오이냉국에 밥 한 덩어리 말아 먹고 어둠을 헤치며, 나아간 곳은 감포항. 오늘 트레킹은 감포항에서 시작해 전촌항, 나정해변, 감은사지를 거쳐 문무대왕릉이 있는 봉길해변까지 12.3km를 걷는 트레킹 여정이다. 북진을 했던 때와는 달리 오늘은 남진을 하기로 했다. 감포항 해안을 끼고 마을 안길을 30여 분 걸었는데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갈랫길에서 해파랑길 표식이 제대로 안돼 있어 몇 번 발걸음을 다시 시작해야 했다. 용굴이라는 표식이 보였다. 용굴 위에는 해안 군부대초소가 자리 잡고 있었다. 안산 대부도 해안을 걷는 대부해솔길에도 멋진 자연을 감상할 수 있는 곳에 군부대 초소가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했는데 이곳도 그렇다.  

수평선 위로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저기 저기 좀 봐!” 내 목소리에 놀란 일행들이 “와 -” 하고 분위기를 맞췄다. 오늘 트레킹도 멋진 일출과 함께 시작됐다. 감포항에서 1.9km 떨어진 전촌항에 도착했는데 후미 일행이 길을 잘못 들어 엉뚱한 곳으로 걷고 있다는 연락이 왔다. 쉬는 김에 누워가라고 했던가. 일행을 기다리며, 땡볕에 그을린 얼굴에 선크림도 바르고 스트레칭도 하는 시간이 여유롭다. 30여분 지나 합류한 후미는 3년 전 함께 백두대간 종주산행을 했던 김은철 산악대장이 길을 잡고 있었고 오늘 처음 트레킹에 합류한 몇몇이 뒤를 쫓고 있었다. 

전촌항에서 1.4km 떨어진 나정해변에는 나리꽃을 비롯해서 이름 모를 꽃이 활짝 피어있었다. 소나무길 솔향기가 짙다. 가곡제당 옆 소나무 두 그루가 발걸음을 잡는다. 가곡마을 당산나무인 할아버지, 할머니 소나무다. 나보다 연배인 여행자가 “과장님은 사모님과 왜 같이 다니지 않으세요?”라며 물어 왔다. 왜 같이 오고 싶지 않겠냐마는 느린 발걸음 탓을 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주고 싶지 않다고 하니 이런 물음을 들으면 내 마음 역시 갑갑하다. 

감은사지는 나정해변에서 6.3km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육길산으로 길이 연결돼   있었다. 해파랑길에 또 다른 이름이 있었다. 방랑자길과 대나무길을 지나쳐 도착한 곳에 동탑 서탑이 오래전 이곳에 건축물이 있었음을 느끼게 했다. 터의 중심부가 되는 금당터는 발굴을 통해 옛 모습의 흔적을 느낄 수 있도록 관리하고 있으나 다른 부분은 주춧돌이 삐죽삐죽 풀 더미에 묻혀 나뒹굴고 있었다. 서기 682년 신라 신문왕 때 완성된 감은사(感恩寺)는 문무왕이 삼국을 통일한 뒤 왜구의 침략을 막고자 세운 절로서 죽어서도 용이 돼 나라를 지키겠다는 문무왕의 유언에 따라 대왕암에 장사 지낸 뒤 용이 된 부왕이 드나들 수 있도록 특이한 공간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문무대왕릉이 있는 봉길해변은 감은사지에서 2.7km 떨어진 곳에 있었다. 점점 멀어지는 감은사지는 풍수지리에 어두운 내가 봐도 안정적이고 명당자리인 듯싶었다.

한낮의 기온이 34℃인데도 봉길해변에는 피서객들이 많지 않았다. 바다 저 멀리에   바위들이 삐쭉 솟아올라 있었다. 그곳에 문무대왕릉이 있다고 한다. 1331년 전, 문무대왕은 왜 이곳에 자신의 묘를 쓸 생각을 했을까. 해변 한쪽에서 무속인들이 굿을 하고 있었다. 굿당 몇 곳도 눈에 띄었다. 이곳은 기운이 센 곳이 아닐까. 몇몇 사람들이 문무대왕릉을 향해 절을 하고 있었다. 

공무원노동조합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공직에서 해임됐을 때 태백산에 올라 천제단에서 아홉배를 올렸던 때가 떠올라서 나 역시 문무대왕릉을 향해 아홉배를 드렸다. 함께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막걸리 한 잔에 목을 축이며, 광어회 한 점을 오물오물 씹는 시간이 즐겁다.

그리고 보면 이번 해파랑길 6차 트레킹은 역사기행이 아닐런가. 

(2013.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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