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선화랑에서 개인전을 열고 주목받은 이정지 화백(76)이 1년만에 다시 선화랑에서 전시를 열고 있다.

묵시적이고 관념적인 모노크롬 작업을 선보였던 지난해과 달리 이번 전시는 기호와 문자가 들어간 대형(120~200호)신작을 내놓았다. 지난해 연 ‘What “Art” You Doing Now?’ 2부전이다. 

국내 여성 작가로는 드물게 모노크롬 분야에서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해왔다. 지난 1960~70년대 부터 작업 목표는 ‘탈(脫) 일루전(illusion)’이었다. 이미지를 지우는 ‘생장(生長) 시리즈’로 사물이 지워졌을 때 나타나는 공간과 흔적에 집중했고 이후 1980년대 모노크롬화의 바람을 탔다. 1983년 이후부터 ‘반복 행위’가 주를 이루는 모노크롬화에 천착했다. 신체성, 촉각적 특징이 두드러진 작업으로 1985년까지 ‘무제’ 시리즈로 나아가 현재까지 ‘Ο’시리즈로 작업해 오고 있다. 

안료를 긁어내는 것에 집중하고 남아있는 흔적을 통해 시간의 흐름과 공간을 표면에 새기고 있다. 90년대 중반부터 이 화면에 서체를 적극적으로 도입했다. 서체를 쓰고 지우는 행위로 글씨자체의 의미전달이 아닌 시간의 변화를 찾고자 집중한 시기다. 이 시기는 안진경체와 추사체를 작품에 끌어들여 행위를 화면과 일체화하고 있다.

이번 전시가 그 결과물이다. 문자와 결합한 단색의 화면은 긁고, 쓰고, 지우고, 깔고를 반복한 궤적의 층으로 작가가 의식적으로 숨겨 놓은 시간의 흔적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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