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반성장연구소 정운찬 이사장 인터뷰]

편집자 주 한국을 대표하는 경제학자, 동반성장이라는 시대의 화두를 던진 이명박 정부의 국무총리, 정계로 가지 않고 국가의 동반성장을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을 만나 한국경제의 현상황과 그가 추구하는 동반성장에 대해 들어봤다.

-동반성장 연구소의 역할과 설립배경은 무엇인가?

▶동반성장연구소는 법적인 강제성이나 행정적인 힘이 없다. 동반성장 문화의 조성과 확산이 목적이다. 1년에 40~50회 정도의 특강, 심포지움과 월례포럼을 열어 지역 간, 도농 간,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세대 간, 남녀 간, 남북한 간, 국가 간 동반성장 등 매우 광범위한 주제를 놓고 의견을 교환하고 해법을 도출하는 순수 민간사단법인이다.

불우한 어린시절 나는 ‘흙수저 중에서도 흙수저’였다. 초·중학교시절 점심을 먹어본 적이 없다. 초등학교 3학년때 부친께서 세상을 떠나시고 홀어머니 밑에서 5남매가 단칸셋방에서 어렵게 살았다. 모친은 병원에서 침대보를 세탁하는 힘든 일을 하면서 자식들을 가르쳤다. 나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직을 결심했었다.

그러나 3·1운동 민족지도자 34인 중 한 분으로 불리는 스코필드 박사가 중·고교 학비와 생활비를 부담했다. 스코필드 박사는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으로 성장은 되는데 빈부 격차가 너무 심한데 안타까운 것은 한국은 부자가 가난한 사람에 대해 배려가 없다”. “너는 빈부 격차건 소득 격차건 해소를 못할 망정, 완화할 수 있는 방안을 가르쳐 주는 학과에 가서 공부를 하고 일생을 그것을 위해 노력하며, 살아라”며 큰 가르침을 주셨다. 대학에 가서는 조순 선생님의 영향도 많이 받았습니다. 지난 1997년 말 외환위기 이후 불평등이 심화되면서 본격적으로 동반성장에 대해 심혈을 기울이게 됐다.

동반성장위원회는 국무총리 시절인 지난 2010년 봄에 중견기업을 경영하는 지인이 찾아와서 ‘이민을 가야겠다’고 하소연 했다. ‘왜 그러냐’고 했더니 ‘대기업 횡포가 너무 심해 견딜 수 없다’고 했다. 중견기업 CEO가 이민갈 정도면 중소기업은 어떻겠나. 즉시 실상을 파악하라고 지시했다. 결과를 보고받고 경악했다. 구두(口頭)주문과 가격후려치기, 어음 결제, 기술탈취가 많았다. 나는 곧바로 대통령 면담을 요청했다. 만나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건의했다. 그렇게 해 그해 12월13일 동반성장위원회가 출범했다. 동반성장 아이디어는 내가 냈다. 지인 중에 일본 기업과 거래하는 중소 기업인이 있다. 간혹 알 수 없는 목돈을 일본 대기업이 보내주기에 알아보니 정부보조금이 나오면 그 돈을 거래업체와 나눈다고 했다. 독일에서는 원자재 값이 오르면 즉각 부품가격에 반영해 하도급업체 납품가를 인상해 준다고 한다. 우리도 이런 걸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동반성장은 한마디로 ‘더불어 성장하고 함께 나눠 다 같이 잘 사는 것’이다. 영어로는 ‘Let’s go together’ 또는 ’We go together’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성장하자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함께 나누자면 쌍심지를 켜고 덤비는 사람들이 많다. 동반성장을 ‘부자 것 빼앗아서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 주는 것’으로 오해하기 때문이다. 동반성장은 경제가 정체된 상태에서 있는 사람 것을 억지로 없는 사람한테 넘겨주자는 뜻이 아니다. 서로 힘을 합쳐 전체의 파이를 먼저 크게 키우고 분배의 룰을 공정하게 바꿔서 다 같이 잘사는 사회를 만들자는 게 근본 취지다.

현재 한국 경제의 GDP가 100이고 부자들에게 50, 가난한 이들에게 50씩 분배됐다고 가정해 보자. 동반성장이 추구하는 패러다임은 GDP를 110으로 먼저 늘리고 분배는 55대55 대신 숫자는 훨씬 많은데 생활수준은 부자들에 비해 현저하게 떨어지는 이들을 배려해 54대56 또는 53대57 등으로 조정해 점진적으로 다 같이 잘살게 되는 기반을 조성하는 것이다. 그러면 부자들도 손해 볼 것이 없다. 오히려 부자나 빈자나 다 같이 이익을 보는 구조다. 게다가 가난한 이들의 증가분이 부자들의 증가분보다 상대적으로 조금 더 커지게 돼 삶의 질은 전반적으로 향상되고 사회는 그만큼 안정될 게 틀림없다. 

동반성장위원회는 발족할 때부터 지금까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동반성장만 문제 삼고 있지만 우리 동반성장연구소에서는 ‘동반성장’이란 개념 자체를 그보다 훨씬 폭넓게 해석하고 있다. 

대중소기업은 물론 빈부 간, 지역 간, 도농 간,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남녀 간, 세대 간, 남북한 간, 그리고 국가 간 동반성장 등을 포괄적으로 다룬다. 예를 들어 개성공단은 남북한 간 동반성장의 상징적 의미를 가지는 것이고 서울대학교가 입시제도로 채택한 지역균형선발제는 지역 간 동반성장을 위한 고려다. FTA는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국가 간 동반성장의 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동반성장위원회를 이끌면서 올린 성과는 어떤 것인가?

▶중소기업 적합업종을 선정했고 중소기업 위주의 정부 구매제도 도입은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좋은 예로 LED 조명등을 생산한다는 한 업체가 중소기업 적합 업종으로 선정되기 전에 대기업들이 마구 들어와 매출이 30억원에서 20억원으로 줄어들 뻔했는데 지난 2011년 가을에 적합업종으로 선정되자 이듬해 35억원, 그 다음해 40억원으로 늘어났다”고 고마워했다. 중소기업제품 정부 구매와 관련해서도 부친의 유언대로 IT 산업체를 이어받은 어떤 분이 “하청에 하청을 받다 보니 너무 장사가 안돼 수업차 시장에 들어갔다가 정부가 직접 사주니까 수익구조가 수입차 30%, IT 70%로 이전과 반대가 되더라”며 저에게 고마움을 표시한 바 있다.

이번 여당을 포함한 각당 대표들의 국회 대표연설에서 일반적인 중점이 ‘불평등 완화였다’ 동반성장위원회와 동반성장 연구소의 하나의 업적이 아닌가 생각한다.

5년전에는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약 20%에 달하던 납품단가 후려치기의 불공정 거래해위가 상당히 줄어들었다. 

-한국경제의 현 상황은 어떤 것인가? 또 처방을 제시한다면?

▶경제 부문에서 우리 사회는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을 동시에 갖고 있다. 먼저 밝은 면을 보면 한국은 세계에서 인구가 5000만명이 넘으면서도 1인당 소득이 3만달러가 넘거나 이에 근접한 세계 7개 국가 가운데 하나다. 다른 6개국은 미국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뿐이다.

어두운 면은 저성장과 양극화다. 지난 1980년대 8.6%, 90년대 6.7%이던 경제성장률이 2000년대 들어서는 4.4%로 하락하더니 2010년대에는 2~3%대까지 떨어졌다. 소득분배도 점점 악화된 데다 삼성, 현대, LG, SK 등 4대 그룹의 1년 매출액이 GDP의 60%에 육박할 정도로 특정 대기업 의존도가 커졌다. 이처럼 경제적 힘이 한쪽으로 쏠리면서 경제 전체의 활력이 떨어지고 있다. 한국을 상징하던 ‘역동적 한국(Dynamic Korea)’란 구호가 아득한 옛날 일처럼 느껴진다. 이대로 놔두면 경제가 쇠약해짐은 물론이요, 언젠가는 사회 전체가 결속력을 잃고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휩싸이게 될까봐 우려된다. 한국 경제의 밝은 면은 더 밝게 하고 어두운 면은 덜 어둡게 해야 한다. 

지난 1960년대 초 정부 주도의 본격적 경제개발계획이 실시된 이래 선성장-후분배는 경제정책의 기본 전략이었다. 수출기업 및 중화학공업 같은 특정 산업을 선도부문으로 먼저 육성하고 그 성과가 경제 전체에 파급되기를 기대하는 불균형 성장전략, 이른바 낙수효과 모델에 전적으로 의존해온 것이다. 성장과 효율을 극대화하는 것이 지상 목표였기 때문에 분배와 형평은 부차적 고려사항이었다. 

이러한 불균형 성장전략은 경제개발 초기 단계에서는 매우 효과적일 수 있지만 언제까지나 그런 건 아니다. 불균형 성장의 결과 소수 대기업에 편중된 산업구조가 고착됐고 국민 대다수의 고용과 소득을 담당하는 중소기업은 대기업과의 수직적 관계 속에 불공정 거래를 감수해야 하는 처치로 전락했다. 

특히 지난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우리 경제의 가계부문과 기업부문이 각기 양극화의 가속적 심화를 경험하면서 분배문제는 지속적으로 악화돼 왔다. ‘고용 없는 성장’이라는 말이 회자되더니 최근에는 ‘임금 없는 성장’의 문제를 경고하는 경제학자들이 출현할 정도로 현 상황은 심각하다. 그 결과 가계부채와 중소기업 부실은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는 양대 문제로 자리 잡았다. 우리 사회에서 분배의 공정성을 개선하지 않고는 더 이상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게 된 핵심 배경이 바로 이것이다.

제가 생각하기에 한국경제가 잘 안되는 것은 투자부족, 설비투자부족 때문이다. 이것이 어디서 온것이냐면 기업에서 온 것이다. 대기업도 중소기업도 투자를 안하는데 대기업은 돈은 많은데 투자대상이 마땅하지 않다. 대기업 투자대상은 첨단 핵심 기술이고 이는 연구개발(R&D)에서 나온다. 우리나라는 대부분 개발(D)이고 연구(R)는 없다. 혹자는 R이 개선(refinement) 에 불과하다는 얘기도 있다. 한국 경제가 재도약하려면 대기업들이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D 에서 R로 방향전환을 해야한다. 중소기업은 투자할 데 많지만 돈이 없다. 지난 1960~70년대라면 세금 걷어서 주겠지만 지금은 조세저항도 심하고 유망산업이 어딘지도 잘 모른다. 

-현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 평가한다면?

▶지난 대선 때 여야 후보는 ‘경제민주화’를 동시에 제시했었다. 그러나 양당 후보 모두 경제민주화를 ‘정책가치’ 또는 ‘정치철학’으로 체화(體化)하지 않은 채 표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만 생각했기에 선거 이후 경제민주화는 실종되고 말았다. 

대선이 끝나자 경제살리기를 위한 노력으로 현오석 전 경제부총리의 규제타파를 통한 투자증진을 꾀했지만 실적이 없었다. 이는 진단이 미흡했기 때문이다. 투자는 규제 때문에 안 되는 것이라고 진단했지만 규제가 없어서 투자가 된다면 경제정책이 너무 쉬웠을 것이다. 

이후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가 ‘소득증대를 통한 소비 증진’ 이끌었다. 근로소득을 올리기 위해서는 임금 상승을 위해서는 최저 임금을 올리거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해 임금올리고 소비증대와 경기침체 완화를 꾀했지만 이 또한 소득증대로 이어지지 않아 효과는 미흡했다.

소득을 늘리기 위해서는 배당, 임대, 이자, 근로 소득이 늘어야 하지만 배당소득은 기업실적이 좋은 기업은 대부분 외국인이 소유하고 있거나 국내 기관투자자들이 소유하고 있어서 배당을 해도 개인에게 돌아가지 않고 토지와 건물의 임대소득은 토지와 땅을 늘리지 않고서는 소득증대가 되지 않는다. 

또 근로소득은 기업실적이 좋은 기업이라도 임금인하가 어려워 사실상 인상을 꺼리고 있으며, 이자소득은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다. 가계 빚이 1275조로 사회 분위기 침체되서 소득을 올라도 소비를 늘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대기업은 자금 여력이 있지만 투자할 곳이 없고 중소기업은 투자할 곳이 많지만 자금이 없다. 한국 대기업의 경우 연구개발(R&D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지만 연구(research)가 아니라 개선(refinement)만 하는 등 본격적인 연구 지출이 없다. 중소기업의 경우에는 투자 대상은 많지만 자금을 확보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동반성장의 접목이 어려운 이유는 무엇인가?

▶동반성장의 접목이 어려운 이유는 재벌기업들이 중소기업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이 잘 돼야 한다. 같은 배를 탔다는 인식을 해야 풀릴 문제다. 현재 세계의 기업생태계는 ‘도요타 : 현대’의 기업경쟁이 아니고 ‘도요타+협력업체 : 현대+협력업체’다. 

또 대기업의 인사정책도 바뀌어야 한다. 대기업 대부분의 임원들이 구매담당이나 자금담당이다. 자금담당은 일류대학 출신을 뽑아 재무부와 친분을 유지하게 하고 구매담당은 납품단가 후려치기로 실적을 크게 올리면 인사에 반영한다. 

-앞으로 정치에 입문할 계획이 있는가?

▶지난 2008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공천심사위원회에서 저보고 한나라당 국회의원으로 나오라고 해서 안 갔다 그 제안을 한 분에게 ‘저는 머리는 한나라당 같은데 가슴은 민주당이라 한나라당에 가면 정신분열증에 걸릴 것 같다’고 농담 삼아 말했다. 

평생 민주당에 정이 많았다. 여기서 말하는 민주당은 신익희 선생님의 전통적인 민주당의 정신을 말한 것이다.

단순한 논리의 언론기사를 읽는 독자들이 색깔론과 정당색이 뭐냐고 오해할 수 있어 이런 건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총리를 했지 때문에 정치에 영향을 주기도 하고 받기도 했지만 정치가는 아니다. 자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일을 하느냐가 중요하다. 나는 어느 자리에 있든지 동반성장 사회건설을 앞당기기 위해서 무엇이든 할 의향이 있다.

내 앞날에 대해서는 앞날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기 때문에 말 안하는 것이 좋겠다. 모든 길을 열어놓고 동반성장을 위한 일로 매진할 것이다. 

대담 = 경기매일 우정자 회장

정리 = 장형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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