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경 호안산시 중앙도서관장
최 경 호안산시 중앙도서관장

새벽을 여는 사람들이 감포항 뱃전에서 밧줄을 당기고 있었다. 지난달에는 이곳에서 봉길해변으로 남진했는데 오늘은 북진으로 영포항을 거쳐 금곡교까지 트레킹하는 15.6km 여정이다.
한 켠에 쪼그려 앉아서 밥 한 숟가락을 뜨는데 가랑비가 날리기 시작했다. 오전 내내 비가 온다는 예보에 우의를 걸치고 몇 걸음을 걷다보니 땀이 흘러내렸다. 우의는 흐르는 땀을 밖으로 배출하지 못하고 온 몸을 끈적끈적하게 만들었다. 버스에 두고 내린 우산을 가져올 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순간의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깨달으며, 다다른 것은 송대말등대. 송대말은 소나무가 펼쳐진 끝자락이라는 의미다. 등대 주변에는 수 백 년 된 소나무 숲이 조성돼 있었다. 등대가 어둠 속에 우뚝 솟아 있었다. 등대는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배에게 길을 안내하는 역할을 한다. 그렇다면 내 삶을 옳고 참된 길로 안내하는 등대는 무엇일까. 나는 길과 산 그리고 책을 멘토로 삼았다. 그리고는 멘토와 함께하는 내 삶의 시간들을 블로그에 담고 있다. 훗날 이런 삶들을 꺼내 읽다보면 추억이 될 것이고 내 삶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될 것으로 나는 믿고 있다.
피서객들이 다 떠나버린 오류해변에는 파도가 밀렸다가 씻겨 내려가고 또 밀려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백사장 모래가 마치 비단을 자로 잰 것 같다해 척사(尺紗)라고 불렀다고 하는데 비를 맞으며, 걷는 기분이 삼삼하다. 
발걸음이 빠른 여행자들은 어디까지 갔는지 보이지 않았지만 뒤에서 걷는 내 발걸음은 한가하기만 하다. 오늘 걷는 거리가 짧아서 발걸음을 가볍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늦동이와 함께 걷고 있는 연세가 지극한 여행자의 발걸음도 즐거워 보였고 함께 걷는 부부들의 모습도 행복해 보였다. 행복이 뭐 별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해안가를 걷다보니 철조망이 쳐져있었다. 군부대 경계지역이다. 해안가에는 크고 작은 바위가 이곳에는 얼씬도 하지 말라고 하는 듯이 경계를 하고 있었다. 해안에서 큰 도로로 넘어오려고 만만한 곳을 찾았으나 비탈진 곳에서 미끄러져서 팔뚝에 상처를 내고서야 여행자들의 발과 맞출 수 있었다. 
  이렇듯 가끔 내 삶에서도 스스로 경계하지 않으면 심한 상처를 입을 수가 있다. 어느덧 공직생활 한 지 33년 됐다. 지금까지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아직까지 공직에 있는 것을 보면 운이 좋았다. 앞으로도 운이 이어졌으면 좋겠다. 물론, 나 자신도 지금까지 해왔던 바른 생각과 행동을 해야 운도 따라 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감포초등학교는 경주시와 포항시 경계에 있었다. 경주시는 오류리에서 끝이 나고 포항시는 두원리에서 시작됐다. 부산에서 울산 그리고 경주를 거쳐서 포항에 도착한 것이다. 부산 오륙도 부터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 까지 50구간으로 나뉘어져 있는 해파랑길의 12코스에 해당하는 이곳은 바다와 바다가 이어져 있어 구분이 돼 있지 않았다. 
그러나 바다는 아랑곳하지 않고 바닷물을 모래 언덕으로 밀어 올렸다가 바다로 돌려보내고 있었다. 바다에서 일을 하려고 트럭에서 내리던 사람들은 이곳이 경주인지 포항인지를 모르고 있었다. 그들에게 바다는 그저 바다였고 일터일 뿐이었다.
그곳에 작은 나무숲이 보였다. 작은 봉수대가 있던 섬이라고 해서 불리어졌던 소봉대였다. 드디어 포항에 도착했다는 기쁨으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슈퍼에서 사 온 맥주 한 잔으로 기분을 나누었다.
차들이 다니는 큰 도로를 걷다가 마을로 들어가니 커다란 건물이 보였다. 벽면에는 손재림 문화유산전시관이라고 써져 있었는데 이른 시간이라 문이 닫혀 있었다. 일별한 야외에는 여러 조각상들도 보였고 2달러 지폐가 벽면에 그려져 있었다. 미화 2달러 지폐는 행운을 가져 온다고 해 사람들은 지폐를 케이스로 만들어 상품화했다. 나의 집에도 딸녀석이 가져 온 상품화된 2달러 지폐가 있다. 앞으로도 내 삶에서 운이 따라 주었으면 좋겠다.
그동안 걸었던 코스와는 달리 오늘은 그다지 눈요기 할 것이 별로 없었다. 이를 눈치 챘는지 저 멀리 항구가 눈에 띄었다. 해안을 걷던 발들이 구룡포 수산업협동조합 위판장으로 모여들었다. 오늘 아침 바다에서 올려 진 우럭은 컸다. 3kg 이나 되는 우럭 2마리는 아침을 시원찮게 먹은 여행자들의 입맛을 돋우었다. 그 지역에서 나는 싱싱한 특산물을 먹는 것은 여행의 즐거움이다.
포항 남부권 중심어항인 양포항에는 바다낚시, 해양레저 계류시설 등을 만들어 놓았는데 철이 지나서였는지 썰렁했다. 가랑비가 가랑가랑내렸지만 우의도 벗고 우산도 접었다. 우리는 11시가 조금 넘어서 오늘의 목적지인 금곡교에 도착했다. 모두들 걸은 거리가 짧다며, 더 걷자고 의견을 내놓았다. 그러나 다음 구간을 생각해서 진행하는 사람들 의견에 따르기로 했다. 
처음 만났을 때 서먹서먹했던 사람들이 서로 악수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람과 사람들이 어울리고 소주잔과 맥주잔이 부딪치면서 즐거워하는 뒷풀이는 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이다. 
(2013.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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