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산 주광현
효산 주광현

우리나라의 전통 예절에선 행차하려면 의관을 정제(整齊)하고 매무시를 단정히 한 후 길을 나섰다. 우리의 예절 문화는 그렇게 이어져 오고 있다. 그런데 구한말에 서양 문물인 자전거가 들여오고 그 후 자전거는 서민들의 발 구실을 하는 중요한 교통수단이 됐다. 이렇게 자전거가 서민 생활에 밀착되면서 ‘갓 쓰고 자전거 타는 일’이 더러 있었다고 하니, 이는 격에 어울리지 않는 촌극(寸劇)이나 다름없었다. 해서, ‘갓 쓰고 자전거 타기’란 말이 생긴 것이다.
세상만사는 어울리는 것과 어울리지 않는 것의 양면성이 있다. 한복에 갓을 썼다면 의당(宜當), 말(馬)이나 가마를 타야 제격이고 자전거는 천부당만부당한 일이다. 탈 것이 정 마땅찮으면 자전거보다는 뚜벅뚜벅 걸어가야 차림새와 이동 모양새가 어울린다 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언어 예절을 매우 중요시 하고 실천했던 민족이다. 언어 예절의 핵심은 상대를 높이고 자기를 낮추는 겸손에 있다. 해서 존댓말이라는 높임말이 있고 이에 상대적인 예사말과 하대의 말인 낮춤말이 있다. 
말을 구사함에 있어서 주어와 술어가 서로 어울려야 바른 언어가 된다. 주어에는 높임말을 구사했는데 술어에는 낮춤말을 썼다면 ‘갓 쓰고 자전거 타기’ 와 무엇이 다르랴.
높임말은 손윗사람에게 정중하게 높여 쓰는 말이다. ‘밥을 먹다’에 대해 높임말과 예사말에 관한 설명을 해 보면 이렇다. 이 말은 ‘밥’이라는 체언과 ‘먹다’라는 서술어로 이루어진 문장이다. ‘밥’의 높임말은 ‘진지’이고 ‘먹다’의 높임말은 ‘잡수시다.’ 이다.
해서 이 말을 손윗사람에게 하는 높임말로 해보면, ‘진지, 잡수세요, 또는 진지 잡수십시오.’ 라고 해야 체언이나 서술어 모두 존대어인 어법에 맞는 말이 된다.
그런데 이 말을 ‘밥 잡수세요.’ 라고 하거나 ‘진지 먹으세요.’라고 한다면 어떨까? 이야말로 또 다른 ‘갓 쓰고 자전거 타기’가 아닌가? 전혀 어법에 맞지 않는 말이다. 
‘먹다‘뿐만 아니라 ’자다, 아프다, 병‘등 다른 일상어에서도 격에 어울리지 않는 말이 언중(言衆)에 난무(亂舞)하고 있다. ’자다‘의 존대어는 ’주무시다‘이고 ’아프다‘의 존대어는 ’편찮으시다‘이며, ‘병(病)의 높임말은 병환(病患)이란 걸 성인이라면 모르는 이가 거의 없을 것이다.
존칭어 구사에서는 술어에서 반드시 보조어간 (선어말어미) ‘시’ 가 들어가야 한다. 즉 잡수시다, 주무시다, 계시다 등이 그 예이다. 이와는 달리 낮춤말이나 예사말에는 선어말어미 ‘시’ 가 들어가면 안 된다. ‘먹다’라는 예사말에 조모음 ‘으’와 함께 선어말어미 ‘시’를 넣어 ‘먹으시다’라는 말을 언중에서 쉽게 들을 수 있다. 이 말은 어떤가? 이 말은 어법에 안 맞는다. 그 자체가 모순이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먹다’의 어간(語幹) ‘먹’은 예사말의 어간인데 그에 이어지는 보조어간(선어말어미)은 존칭을 뜻하는 ‘시’ 가 들어갔기 때문이다. ‘먹다’에 관해도 이러는데 이런 사례는 더 많이 있다. 
  ‘잠’에 대해도 ‘자다’라는 예사말에 대한 존대어는 ‘주무시다’이다. 네다섯 살 정도의 말 배우는 어린 손자가 할아버지께 ‘할아버지 잘 자요’ 라고 했다면 할아버지에 대한 존대어가 잘못 됐기에 어법에 어긋난다. 이런 경우엔 ‘자다’의 존댓말인 ‘주무시다’라고 해야 한다. 하지만 술어의 접미사에 ‘하오체’인 ‘-요’가 들어갔으니, 반말은 아니다. 이를 반말로 ‘할아버지 잘 자.’ 라고 했다면 어떤가? 실제로 이런 반말 투의 인사말이 자연스럽게 익혀지고 있는 오늘의 현실이 안타깝지 않은가. 아이들은 어른들의 거울이다. 어른들이 하는 대로 따라 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위해서도 또 후대를 위해서도 어법에 맞게 바른 말을 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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