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경 호안산시 중앙도서관장
최 경 호안산시 중앙도서관장

오늘 트레킹은 금곡교부터 구룡포항까지 15.7km를 걷는 여정이다. 포항시 장기면에 위치한 일출암은 장기천을 따라 내려 온 밀물과 동해 바닷물이 만나는 곳에 앉아 있었다. 육당 최남선은 바위와 소나무 틈새로 그림같이 떠오르는 일출 장면이 백두산 천지와 금강산 단풍 등과 함께 조선 십 경(十景) 중 한 곳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세월이 흘러 모양과 풍광이 변해서일까. 육당이 말한 일출암을 보는 내 눈은 반사적으로 머리를 갸우뚱하게 했다.
어부가 바닷물에 흔들거리는 배 옆에서 전복틀을 분주하게 만지고 있었다. 어촌에서 일하는 동남아시아 이주노동자들은 어부가 무엇을 하는지를 묻는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멀뚱거리며, 나를 쳐다보았다. 그들은 이국 멀리 낮선 땅인 한국의 농촌과 산촌 그리고 어촌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젊은이들이 고향을 떠나 도시로 나가 일손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만약에 이주노동자들도 없다면 이 궂은일을 누가 대신 할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도시는 점점 포화상태가 되고 있고 지방은 공동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그 현실을 마주하고 보니 기분이 씁쓸해진다. 
포항시 남구 장기면 신창1리에서 시작한 발걸음은 해변을 따라 걷다가 야트막한 언덕으로 올라섰다가 다시 해안으로 내려서기를 해야 했다. 바다가 시원하게 보이는 언덕 위에는 억새가 하늘거렸다. 갈대와는 달리 억새는 억세지 않게 은은하게 빛났다. 가을가을하다.
동네도 영암1리에서 영암2리, 영암3리로 바뀌어 지고 있었다. 그곳 옛 지명이 궁금했다. 수건을 머리에 쓴 아주머니는 이곳 옛 이름은 수영포였다고 한다, 영암3리 보다는 수영포가 더 어울릴 것 같았다. 그러나 마을회관 등 여러 사람들이 드나들면서 볼 수 있는 곳에는 또 다른 지명인 대진리, 하정리라고 써져 있었다. 머리에 혼선이 일었다.  
바닷가 옆으로 나 있는 길을 걸으면서 마을로 찾아 온 트럭잡화점에는 무엇이 실려 있나 살펴보고 과메기, 오징어, 가자미를 장대에 꿰어 말리고 있는 광경을 보는 것이 즐겁다. 다시 언덕 위로 올라섰다.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부스가 돼 영화음악 1492 conquest of paradise를 들었다. 가슴이 답답할 때면 듣는 음악인데 시야가 탁 트인 바닷가에서 들으니 나 자신이 세상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는 시 몇 구절을 읊조렸다. 더 할 나위 없이 좋다. 하늘은 맑고 바다는 깊었다.  뭉개구름이 언덕에 걸친 장면을 보고 사진을 찍으니 여행자들이 같은 곳에서 사진을 찍어 달라고 한다. 보는 눈이 모두 비슷하다.
배꼽시계가 울렸다. 산에 올라가서는 산에서 점심을 먹었으니 바닷가에서는 바닷가에서 밥을 먹는 것이 운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각자 준비해 온 밥과 반찬을 펼쳤다. 파도가 밀려왔다가 다시 바다로 쓸려 나갔다. 
아름드리 소나무가 청청하게 서 있는 곳에 구평리 성황당이 앉아 있었다.  해파랑길을 걷다보면 마을 마다 성황당이 보였다. 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나가는 가장家長들의 안녕을 위해 빌고 또 빌었을 아낙들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바닷가 사람들의 삶이다.
동해안로路 옆에 나른하게 앉아있는 장길리 낚시공원을 지나쳐 바다로 나아가니 저 멀리 바다를 끼고 다닥다닥 붙어있는 집들이 보였다. 과메기로 유명한 구룡포항이다. 오늘 트레킹 종착지이다. 나른한 오후에 5시간 이상 걸은 다리가 뻐근했다. 그래서인지 뒷풀이로 오징어회를 오물거리며, 마시는 막걸리가 입에 쩍쩍 달라붙는다. 매년 11월 초에 열리는 구룡포 과메기축제가 기다려진다.
(9.28. 포항시 남구 장기면에서)

저작권자 © 경기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