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경 호안산시 중앙도서관장
최 경 호안산시 중앙도서관장

 

“해안가이니 그곳에서 점심 사 먹으면 안 되나요?” 도시락을 챙기며, 아내가 한 소리 한다. 새벽부터 귀찮게 하는 남편에 대한 불만이다. 아내는 내가 690km 백두대간 종주산행을 했던 3년 동안 도시락을 쌌었다. 또 다시 742km 해파랑길 트레킹을 하는 남편을 위해 도시락을 싸고 있다. 산행할 때는 밥 사먹을 곳이 없어 어쩔 수 없이 도시락을 준비했지만 겨울철 해안가에도 문을 닫은 음식점이 많기 때문에 굶지 않으려면 도시락을 싸야하기 때문이다.
어둠이 도시에 짙게 깔린 오전 5시 20분에 버스에 올라 오전 10시가 돼서야 호미곶에 도착해서 도구해변 방향으로 길을 나섰다. 
들판에서 까마귀떼가 날았다. 까마귀는 내가 그동안 여행했던 일본, 인도, 아일랜드에서는 길조로 여겼다. 그러나 한반도에서는 흉조라고 했다. 문뜩 삼족오가 떠올랐다. 세발가락의 까마귀다. 북녘에서 조차 흉조라고 하는 걸 보면 고구려 연개소문 장군이 전장에서 휘날렸던 삼족오 깃발이 중국인들에게 두려운 존재였던 것은 분명하다.
마을 언저리에 독수리바위가 서 있었다. 인도네시아를 여행하면서 보았던 바탄섬 독수리 형상과는 달리 오랜 시간동안 비바람을 견디어 낸 바위는 우직해 보였다. 
기온이 올라 있었지만 바다 바람이 옷 사이로 파고들었다. 오늘 트레킹에 참여한 여행자는 16명. 오늘 걸을 거리는 20.7km. 발걸음이 같은 사람들끼리 삼삼오오 짝을 이뤘다. 
백두대간과는 달리 해파랑길은 이정표가 제대로 돼 있지 않았지만 길을 찾기에는 어려움이 없었다. 
대동배2리 마을 도로가에는 오징어와 꽁치들이 대나무에 꿰여져 햇빛에 말려지고 있었고 선착장에서 쉬고 있는 배들은 한가하게 이리저리 저들끼리 놀고 있었다. 그 너머에 있는 동해면 발산2리 해안에서 아주머니들이 배추를 절여내고 있었다. “아주머니 바닷가에서는 배추를 어떻게 절이나요 ?” 울릉도에서는 눈이 도로에 쌓이면 염분기가 있는 바닷물을 도로에 뿌려 눈을 녹인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터라 소금물인 바닷물로 배추를 절여 내지 않을까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저 멀리 방파제에서는 여럿이 도릿깨 질을 하고 있었다. “콩을 털고 있나 아니면 깨를 털고 있는 것일까” 생각 없이 툭 던진 내 말을 받아 옆에서 “콩을 털려면 이곳에서 털지 왜 저 먼 방파제까지 갔겠어요” “그도 일리가 있구먼!” 툭툭 던지는 말이 오후 바닷가를 여유롭게 했다. 
이런 궁금증을 만들어 가는 것도 여행이고 모르는 것을 알아가는 것도 여행이다. 
오전 내내 배낭에 넣고 다녔던 도시락이 어깨를 짓눌렀다. 배꼽시계는 진작부터 울리고 있었다. 늦가을 볕을 쬐며, 바닷가에서 먹는 점심도 맛있는데 앞서 나간 일행들이 음식점으로 오라는 연락이 왔다. 철을 비껴난 바닷가 횟집 문들은 닫혀있었지만 마을과 마을을 잇는 곳 횟집에 우리 일행들이 있었다. 소주를 입에 털어 넣고 오물거리는 즐거움은 여행의 맛이다.
소주를 마시면서 횟집 유리창을 통해 우리 일행이 앞으로 지나가는지를 보았는데 단지 몇 명만이 지나갔기 때문에 우리는 유유자적 대낮에 마신 반주로 얼굴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뒤쳐졌다고 생각했던 일행들은 바닷가로 걸어서 우리 앞에 있었다. 이러한 실정을 모르는 우리는 느긋하기만 했다.
뒤쳐져 있던 일행이 도착했다며, 어디 있는지를 물어왔다. 그때서야 우리가 늦은 것을 눈치 채고는 발걸음에 힘을 주고 걷기 시작했다. 저 멀리 포항제철이 보였고 오늘의 목적지인 도구해변이 눈앞에 있었다. 
막걸리 한 잔 들이켜고 제철을 맞은 과메기를 오물거리면서 토끼와 거북이 우화를   이야기 하는 오늘 트레킹은 멋진 풍광을 만나지 못했지만 늦가을 바람을 쐐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를 훨훨 날려 보낸 여행이었다. 
(11. 23.)

저작권자 © 경기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