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리는 춤, 보이는 음악. 국립현대무용단이 11월30일부터 2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선보인 픽업스테이지 ‘쓰리 스트라빈스키’는 춤의 청각화, 음악의 시각화를 증명한 공연이다. 
러시아가 낳은 20세기 천재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3곡을 모티브로 삼은 김재덕·정영두·안성수 국립현대무용단 예술감독 등 3명의 현대무용가들이 작업한 3개의 작품이 펼쳐졌다. 
김재덕이 택한 ‘아곤’은 조지 발란신 이후 안무가들이 작업한 적이 거의 없는 음악이다. ‘아곤’이란 고대 그리스어로 대결, 갈등 등을 가리킨다. 
남성으로만 구성된 무용수들은 서로 접촉하거나 엇갈리면서 폭풍우 같이 힘이 넘치는 동작들을 선보였다. 서사를 특정할 수 없는 몸짓들은, 춤의 직관성 그리고 스트라빈스키가 갖고 있는 원시성을 폭발시켰다.  
작곡가이기도 한 김재적은 대부분 본인이 작곡한 음악을 가지고 안무를 해왔다. 그래서 춤의 언어와 음악의 언어가 더 일치했다. 하지만 ‘아곤’이라는 원곡에도 능히 자신의 옷을 입힐 수 있음을 보여줬다. 
라이브 연주조차 접하기 쉽지 않은 ‘심포니 인 C’는 스트라빈스키가 작곡의 방향을, 춤이 아닌 음악 그 자체를 향해 만든 곡이다. 그 만큼 춤의 서사적 문법에서는 다소 벗어나 있다. 
하지만 정영두는 이 곡을 춤의 영역으로 확실하게 끌고 들어온다. ‘아곤’과 반대로 여성으로만 채운 무용수들의 몸짓에서는 생동감이 피어오른다. 연둣빛 조명이 싱그럽게 무대를 탈바꿈시킨 뒤 시작되는 ‘심포니 인 C’ 속 춤들은 발랄하되 요란스럽지 않으며, 서정적인데 감상에 빠지지 않는다. 
정영두는 몸이 가진 시간성과 조형성을 강조하는 안무가다. 스트라빈스키 곡의 음표들이 동작으로 변해 무대 위에서 쏟아져 내리는 듯했다. 
안 감독이 택한 ‘봄의 제전’은 이미 다수의 안무가가 무용 작품으로 도전한 음악이다. 안 감독 역시 이 곡을 바탕으로 한 ‘장미’를 지난 2009년 초연했다. 
지난 2014년 세계적인 국제 공연예술마켓인 ‘제16회 시나르(CINARS)’의 공식 쇼케이스 작품으로 선정되기도 한 ‘장미’는, 까다로운 엇박자의 음악을 원시적인 기운으로 돌파했다. 이 ‘장미’를 발전시킨 ‘봄의 제전’은 좀 더 살을 붙여 육중함과 진중함을 느끼게 한다. 
결국 김재덕의 ‘아곤’, 정영두의 ‘심포니 인 C’, 안 감독의 ‘봄의 제전’은 스트라빈스키 음악의 호흡, 맥박, 근육을 보여줬다. 이번 작업은 음악의 육체성을 발견하는 일이었던 셈이다. 정치용 예술감독이 지휘한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세심하고 박력 있는 라이브 연주가 유능한 조력자였다. 
국립현대무용단이 현대무용 관객 확대를 위해 지난해 기획한 ‘쓰리 볼레로’를 잇는 쓰리 시리즈의 하나다. 기획 공연의 풍성함이 무엇인지 증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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