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노라 ▲‘그림으로 만나는 서양사’인문학 강사▲‘벗에게 가는 길’인문학 공간 대표
안노라 ▲‘그림으로 만나는 서양사’인문학 강사▲‘벗에게 가는 길’인문학 공간 대표

어제와 같은 오늘이라고 볼 멘 소리가 나오는 분들도 계시겠지요? “무슨 인생이 이렇게 이벤트가 없어?” 하며, 아쉬워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요? 한 해의 끝자락인 12월이 중반을 향해 치닫고 있습니다. 한 해를 돌아보면 전 년과 또는 전 달과 다르지 않은 자신을 보며, 지루해 하기도 하고 의기소침해 지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저와 같이 매양 똑같은 일상에 지친 분들에게 드리는 위로로 이번 주에는 제가 무척 좋아하는 피테르 브뤼헬의 작품 중 <추락하는 이카루스가 있는 풍경>을 가져 왔습니다. 
피테르 브뤼헬(Pieter Brueghel. 1525~1569 추정)은 16세기 북유럽 회화의 중심지인 플랑드르 지방에서 활약했던 최고의 화가입니다. ‘최고’라는 수식어 뒤에 ‘농민화가’라고 해야겠네요. 그는 장엄한 역사화나 종교화가 대부분이었던 당시의 미술 세계에서 농민, 장애인, 걸인 등 사회 하층민이거나 소외된 사람을 소재로 한 그림을 그렸습니다. 단순히 기록적인 풍속화로서의 의미만이 아니라 평범한 이들을 그림 전면에 내세워 풍자와 해학, 익살을 드러내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고통이든 슬픔이든 잘 익히고 삭아낸 것이 가지는 깊은 풍미가 살아있습니다. 그가 살던 시대는 정치적인 혼란과 억압이 가득했던 우울한 시대였습니다. 스페인이 네덜란드 사람을 카톨릭으로 개종시키기 위해 동원한 군대와 통치자로 사회가 질식할 것 같던 때였으니까요. 그가 미술사적으로 특별한 위치에 있는 건 아마도 당대 누구도 갖지 못했던 시선을 통해 시대를 바라보았던 그의 휴머니즘 때문일 것입니다.   
그림을 볼까요? 그림의 소재인 ‘이카루스’는 모비디우스 <변신이야기> 제 8권에 등장하는 신화 속의 인물입니다. 미노타우로스를 가둔 라비린토스의 설계자, 그리스 최고의 건축가이자 발명가인 다이달로스는 크레타 섬 미노스 왕의 분노로 자신이 만든 미궁 속에 아들 이카루스와 함께 갇히게 됩니다. 그는 아들만큼은 미궁에서 벗어나기를 원했죠. 그리스 최고의 발명가답게 밀랍으로 새의 깃털을 붙인 날개를 만들어 아들과 함께 미궁을 탈출합니다. 하늘을 날게 되자  신이 난 이카루스는 태양의 열이나 바다의 습기를 피하라는 아버지의 주의를 잊고 높이 높이 태양 가까이 올라갑니다. 어린 이카루스는 뜨거운 태양열에 밀랍으로 붙인 날개가 녹아 그만 바다로 추락하고 말지요. 그래서 후대의 사람들은 ‘이카루스의 날개’를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의 상징으로 삼습니다. 
그런데 브뤼헬의 그림에는 이카루스가 보이지 않습니다. 주인공은 어디에 있을까요? 제목 없이는 그를 찾기가 몹시 힘들군요. 그림 오른쪽 아래를 보면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다리가 보입니다. 그가 이카루스지요. 오히려 그림 앞부분에 있는 한가롭게 밭을 가는 농부가 시선을 잡아끕니다. 농부는 ‘첨벙’하는 이카루스의 외로운 외침소리를 듣지 못한 듯 합니다. 농부의 아래쪽에 있는 양치기는 한 낮의 정적을 깨는 소리에 잠시 하늘을 올려다볼 뿐이고 바닷가에 앉은 남자는 낚시를 하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화면 한복판에는 얌전한 수평선과 몇 척의 배를 품은 끝없는 바다가 평온히 펼쳐져 있습니다. 작열하는 태양은 밀랍을 녹여 이카루스의 날개를 삼키고도 시치미를 뚝 떼고 있네요. 브뤼헬은 왜 화면 귀퉁이에 이카루스의 다리만을 보여주었을까요?
브뤼헬은 우리의 평범한 일상이 위대한 신화보다 의미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농사를 짓고 고기를 잡고 양을 치는 매일 매일의 소중함 말입니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분들의 가장 큰 소원은 “따뜻한 밥 한 끼라도 내 손으로 차려주고 싶다”였습니다. 소중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올해가 다하기 전, 사랑하는 이들과 밥을 나눌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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