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노라 
▲‘그림으로 만나는 서양사’인문학 강사
▲‘벗에게 가는 길’인문학 공간 대표

소설에 이어 대설이 지나갔습니다. 집 근처 카페 유리창에 당근 코를 한 우스꽝스러운 눈사람이 서 있습니다. 한 여름 밀짚모자를 삐딱하게 쓰고 검은 색종이로 동그란 눈도 만들었더군요. 그 똘망한 눈이 어서 들어와 뜨거운 커피 한 잔 마시라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부지깽이를 품고 있는 안데르센의 눈사람처럼 설령 녹아내리더라도 따뜻한 사랑을 받고 싶은 겨울 한 복판입니다.  
오늘은 겨울 풍경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어때요? 하늘은 구름으로 가득해 무겁게 내려앉았습니다. 양쪽으로 바람도 안쓰러워 할 만큼 가늘고 마른 가지들이 높이 서 있습니다. 시선을 멀리 두어도 망막에 닿지 않는 지평선이 화면 뒤 배경입니다. 공간은 아스라이 펼쳐져 있고 마치 위에서 내려 본 듯이 건물과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오는 군요. 빙판 위에서 썰매와 스케이트를 타는 아이들도 보이고 지금은 골프가 된 운동인 ‘kolf’를 하는 사람도 있군요. 손을 꼭 잡고 가는 연인과 친구들과 무리지어 수다를 떠는 숙녀들도 보입니다. 빙판 위에 넘어졌거나 곧 넘어질 것처럼 뒤뚱거리는 모습도 재미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눈 내리는 겨울은 모두를 어린아이로 만들어 버리나 봅니다. 백 여 명에 가까운 사람들의 모습을 개성 있고 생동감 넘치게 그린 화가는 핸드리크 아베르캄프(Hendrick Avercamp 1585~1634)입니다.
그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1585년 1월 27일 태어났습니다. 그가 태어난 시기는 지금보다 평균기온이 훨씬 낮았던 소빙하기에 속합니다. 게다가 네덜란드는 스페인과 계속되는 정치적, 종교적 마찰을 겪고 있었습니다. 날씨는 매섭고 삶은 거칠었던 때, 말을 하지 못했던 어머니의 유전형질을 받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귀먹은 벙어리 상태로 태어납니다. 이런 신체적 장애가 그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더 깊고 내밀한 눈을 갖게 했을까요? 생애 대부분을 캄펜(Kampen)에서 보낸 그에게는 “캄펜의 말없는 자”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그는 많은 작품에서 네덜란드 캄펜의 겨울 풍경을 그려 내었습니다. 그 속에는 풍속화가 갖는 다양한 군상들의 발랄함과 색채의 명랑함, 수다스럽지만 사랑스러운 일상들이 담겨져 있습니다. 
애정을 가지고 오래도록, 천천히 관찰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사소하지만 소중한 것들을 포착해 화폭에 올린 시선의 섬세함에 놀랍니다. 미술계의 베토벤이라고 해야 할까요? 
물론 베토벤은 후천적인 것이었기에 절대 음정을 기억했을 것입니다. 선천적으로 들리지 않았던 핸드리크 아베르캄프의 눈에 비친 시대의 소리는 무엇이었을까요. 그의 작품에서 보이는 ‘소란함 속의 고요’는 신이 그에게 내린 은총, 즉 언어가 아닌 이미지가 갖는 무한함을 알게 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언어가 닿으면 이미지는 덴다고 합니다. 계절이 깊어 갈수록 더 적게 말하고 더 많이 느끼는 풍요로운 겨울을 만드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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