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정 (▲다문화전문가 ▲트라우마협회 다문화분과이사 ▲전. 한국다문화센터 공동대표)
이현정 (▲다문화전문가 ▲트라우마협회 다문화분과이사 ▲전. 한국다문화센터 공동대표)

OECD국가 중 눈에 띄게 상위 1,2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노인 빈곤율, 저출산율, 임금 격차율, 자살률, 공교육비 민간부담 비율, 지역 간 경제격차 비율 등이 있다. 이 모든 것들을 나열해보자니 참으로 불행하기 짝이 없는 항목들이다.

결국 한국의 행복지수가 34개국 중 32위를 마크(UN, 2018)하고 있으니 더욱더 젊은 사람들은 결혼보다는 자신에 대한 삶의 내실을 찾기에 급급하다. 자녀생산은 더욱더 멀어질 수밖에 없어 보인다.

그것보다 더 빠른 스피드를 보이는 것은 바로 다문화 진행속도. OECD국가 중에서도 그 속도가 월등하다.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진행돼 현재 전체국민의 약 4%대가 다문화로 채워졌다. 국민인식은 별로 변화되는 것 같지도 않은데, 이주민의 증가속도는 엄청난 것이다.

성인이주민들의 경우와 다르게 전혀 체감이 되지 않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다문화자녀. 이들은 지금 10만여 명이 집에서 우유 먹고 삶을 시작하려 하고 있어, 우리 눈에는 더욱 보이지 않는다.

그 외에 12만 여명이 취학을 시작, 혹은 취학 중이어서 사회에 발을 띠고 있다.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 순으로 보자면 초등학생 수가 월등히 많다. 집에서 우유 먹고 대기하는 다문화자녀들이 매년 초등학교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이 아이들이 태어나 말을 익히고 주변의 의식이 자라나면서 뭔가 이상하다라는 낌새를 갖게 된다. 그리고 또래 아이들로부터 자각되거나 아니면 스스로 뭔가 난 다르다라는 것을 느끼게 되면서 이들은 부모에 대한 분노를 먼저 체득한다.

이게 다 외국인인 엄마 때문이야라는 원망이 생겨나는 것이다. 사춘기 때가 되면 주변의 놀림과 터부시, 차별, 왕따, 괴롭힘, 스스로의 위축감, 자책, 자멸감 등에 남다른 고통에 시달리게 된다. 정신적인 성숙이 되기도 전에 이들은 트라우마에 젖어들고 누구에게 의지하지도 못한 채 시들어간다.

요즘 다문화자녀를 대상으로 한 저질스럽고 악질스런 왕따 사건사고들이 매일 뉴스로 보도되고 있다. 다문화선진국이라는 캐나다나 호주 같은 곳에서는 초등학교마다 심리치유사나 심리교사 등을 의무적으로 배치시키고 있으며, 학교장의 재량에 의해 경찰을 두는 곳도 있다. 폭행이나 폭력사태에 대비한 강력한 예방조처의 모습이다. 이는 사춘기의 저돌적이고 세상 무서울 것 없어 보이는 혈기를 학교나 학교주변에서 조절하려는 장치들이다.

어쨌든 우리의 다문화자녀들은 곧 우리의 아들, 딸이자 딸이고 아들들이다. 내 자녀만 잘 크면 된다는 이기적인 마음은 국가발전 저해요소의 끝판왕이다. 결국 우리의 딸 아들, 아들 딸들이 사회에서 만나야 할 상대가 바로 다문화자녀이다. 내국인자녀와 다문화자녀를 둘로 보지 말고 그저 우리미래의 기둥으로 생각했으면 한다.

앞으로의 사회는 서로 공감하고 공존하는 시대가 되어야 한다.

너와 나를 둘로 가르는 마음에서 모든 고통과 비극이 싹튼다. 이미 수많은 역사를 통해 겪어온 터인데도 그러한 분리하려는 마음이 계속되고 있다. 시집살이 겪은 며느리가 시집살이를 되물림 한다고 하듯이, 이제 우리가 잘 산다고 오만해져선 안 될 일이다.

인성이 사라진 지식덩어리만 전수시킨 교육의 결과물이다. 앞으로 지식전달은 인공지능이나 로봇들이 할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만드는 것은 바로 감성, 인성, 공감능력 등이다. 냉철한 이기주의적 똑똑이들은 사회의 해악만 넘쳐나게 할 뿐이다.

우리 바로 옆의 다문화자녀가 힘들어하고 있다. 이 세상이 지옥같다고 울부짖는다. 그들의 마음의 상처는 평생을 갈 것이고 고스란히 우리의 상처로 남을 것이다. 우리의 자녀들은 기성세대들의 거울이다. 이들을 어떻게 방치할 수 있을까.

현재 다문화자녀의 학교 이탈률은 심각하다. 거기에 중도입국자녀의 학교 이탈률은 더욱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이런 방치는 곧 사회, 국가의 위기를 조장하는 일이다. 하루빨리 이들을 아우르고 대안적 조치를 만들어야 한다. 직업교육, 심리치유 프로그램 마련 등이 시급하다.

유럽이나 기타 다문화국가들이 밟고 있는 그 길을 영혼 없이 따라가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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