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노라 <br>▲‘그림으로 만나는 서양사’인문학 강사<br>▲‘벗에게 가는 길’인문학 공간 대표<br>
안노라 
▲‘그림으로 만나는 서양사’인문학 강사
▲‘벗에게 가는 길’인문학 공간 대표

 

빨간 동그라미는 해일까요? 동그라미 아래 있는 모형은 별 같군요. 해 아래 반짝이는 별은 우리의 상식 밖에 존재하지요. 수묵화처럼 번지는 검은 선은 이제 어디로 가야할지 고개를 빼고 있는 듯해요. 길을 잃은 목동이 별에게 물어보듯 말이예요. 이 작품을 그린 호안 미로(Jpan Miro 1893~1983)는 무엇이라고 했을까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답니다. <1953년 작, 무제>예요. 미로의 작품 대부분은 제목이 없습니다. 제목이 없으면 그림을 읽기 어려워집니다. 우리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도대체 무어라고 한 거야?” 고심 합니다. 어쩌면 미로는 그걸 원했는지 모르겠어요. 자신의 작품을 훈련된 이성의 아무런 간섭 없이 원시적인 감각으로 각자 느끼고 상상하기를 바랐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의 그림은 마치 어린아이가 몽당 크레파스로 그린 그림처럼 단순하고 명확합니다. 색은 밝고 형태는 자유롭습니다. 선과 색과 형태가 서로 독립적이면서 어우러져 놉니다. 왕따도 없고 리더도 없습니다. 혹시나 하며 숨바꼭질하듯 작가의 의도를 찾아보지만 보이는 건 낙천적인 천진함과 생동하는 생명력 뿐 입니다. 
작품의 이런 특징은 그의 삶과 연관 있지 않을까요? 그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태어났습니다. 카탈루냐 지방이지요. 아직도 카탈루냐 사람들은 ‘카탈루냐는 스페인이 아니다”라고 말하며 독립과 자치를 주장합니다. 가우디, 달리, 타피에스 등 뛰어난 예술가들을 배출한 곳입니다. 미로의 독립성은 위대한 땅, 카탈루냐 풍토의 영향이 컸는지 모릅니다. 미로는 어린 시절, 초상화와 정물화에 재능을 보였습니다. 관찰력이 뛰어나고 섬세한 상상력과 표현력으로 표면 속에 감추어진 내면을 포착할 줄 알았지요. 요즘 드라마에서 외치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드러낸다‘고 해야 할까요. 그의 재능은 그를 예술의 산실 ’파리‘로 이끕니다. 
그는 밝은 그림을 그렸습니다만 그의 시대는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이 휩쓸고 간 격동의 시간이었습니다. 새로운 세기가 열렸으나 일상이 피폐해지고 인간에 대한 믿음이 추락하는 비참한 시기였지요. 예민한 감수성으로 세기의 변화를 감지한 예술가들은 20세기 초 인상파, 야수파, 입체파, 다다이즘 등으로 시대를 수용하고자 애씁니다 그는 넓게 퍼지는 예술의 스펙트럼을 접하고 초현실주의에 참여하며 영감을 얻지만 어떠한 미술사조에도 속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에스파냐 동부의 원시동굴화에 깊은 영향을 받고 자신만의 고유한 세계를 구축하기 시작합니다. 문명의 작위성과 허위를 벗어나 생명의 본질을 그리고자 했던 그의 개성 있는 작품<사람과 새들의 춤>, <밤 풍경의 사람과 새들>, <갈라테아> 등 다수의 명작이 탄생합니다. 
그의 작품 속 ‘여자’는 개인으로서의 여자가 아닌 역사로서의 여자, 생명의 순환을 감당하는 여자입니다. 
그의 작품 속 ‘새’는 고대로부터 액막이나 풍농, 풍어를 기원하는 솟대처럼 하늘의 신령스런 기운을 땅 위에 전하는 주술적인 새입니다. 그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눈과 새와 문자와 여자는 속도와 과학의 세기에 맞서 원시적인 집단무의식을 드러내는 오브제 같습니다. 
그는 말년에 동양의 선(線)에 매료 당하고 서예에 심취했습니다. 그의 작품은 갈수록 밝고 단순하고 간명해져서 한 편의 시가 됐습니다. 미로는 우리에게 꿈과 영감으로 가득 찬 조형적인 언어로 말을 건넵니다. “이것은 내 꿈들의 색깔이다‘”라고 했던 그는 20세기, 초현실주의의 거장으로 자리매김 했습니다.  

저작권자 © 경기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