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호안산시 중앙도서관장
최경호 안산시청 관광과장

 

한 달 만에 다시 찾은 축산항은 조용했다. 어둠이 깔려있던 새벽에 안산에서 출발했는데 어느새 해는 중천에 떠 있었다. 이번 트레킹은 축산항에서 시작해 고래불해수욕장을 거쳐 후포항까지 걷는 일정이다. 2.8km 떨어진 대소산봉수대로 발걸음을 잡았다. 땡볕이다. 산 속으로 들어섰다. 소나무가 그늘을 만들어 놓은 산은 아늑했다. 월영대(月影臺)를 일별하고 올라서니 일광대(日光臺)가 반겨 주었다.
대소산 봉수대에 오르니 축산항이 고요히 앉아 있었고 죽도산등대전망대가 해무를 젖히고 희미하게 보였다. 이곳 봉수대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는 한양 남산까지 연락 수단이었다. 저 멀리 앞바다에서 왜군이 아득하게 보였을 때 이곳은 다급해졌을 것이다. 지금의 바다는 고요했다.
소나무가 그늘을 가득 만들어 놓았다. 그래도 한낮의 여름이라 땀이 한가득했다. 산 둔덕의 정자는 6명이 앉아서 점심을 먹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점심은 한 상 가득한 뷔페였다. 배부르니 한 잠 자고 가도 잔소리하는 사람이 없다. 코를 고는 드르렁 소리도 매미와 화음을 이뤄 들어 줄만 했다.
마냥 쉬고 싶지만 가야할 길이 있다. 봉화산이라는 표지석이 서 있었다. 이곳에서 울진으로 가는 곳은 백두대간이 이어져 있다. 백두대간을 종주했던 때가 떠올랐다. 그 때는 산을 무작스럽게 탔다. 무슨 이유로 여유를 부리지 못하고 그리 산을 탔던 것일까? 
목은 이색 등산로로 발걸음을 잡았다. 이곳은 목은의 고향이다. 곳곳에 목은이 쓴 시들이 보였다. 선생께서는 제자인 포은 정몽주와 함께 새로운 나라 건국을 반대하다가 또 다른 제자인 조선 건국 충신 정도전에게서 내침을 당했다. 충절을 지킬 것인가 아니면 혁명을 할 것인가. 내 앞에 놓여 있다면 나는 어찌 할 것인가. 목은 등산로는 나를 침잠하게 하는 길이었다.
산자락을 빠져 나오자 영양 남씨의 집성촌인 괴시리 마을이 보였다. 170여 년 된 고택을 비롯해서 30여 채가 문을 굳게 잠근 채 마을 한 가운데는 왕벚나무가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수령이 얼마나 됐는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 마을 주민이 고래불해수욕장 가는 길을 알려 주었다. 해안가로 왔으면 거리가 짧았을 텐데 여행자들은 곧이곧대로 산을 넘어서 마을을 들렀고 다시 해안가로 발걸음을 하고 있는 것이다. 
강과 바다가 만나는 곳에 고래불대교가 물길을 이어 주고 있었다. 그곳은 물길과는 달리 고래불로(路)라는 이름이 있었다. 고래불해수욕장 덕천지구였다. 그랬다. 고래불해수욕장은 영리지구가 또 있었고 우리가 가고자 하는 곳은 별곡지구였다. 3.9km에는 소나무가 그늘을 드리우고 관광객들은 그곳에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홀로 고래불로를 걷는 여행자를 만났다. 그는 고성에서 출발해 부산 오륙도 까지 25일 일정으로 트레킹을 하고 있다고 했다. 사진작가라고 자신을 소개한 젊은이는 얼굴이 구릿빛으로 번뜩였다. 이곳까지 12일 동안 걸어 내려 왔다고 했다. 부산 오륙도에서 고성으로 향하는 나. 고성에서 출발해서 부산으로 향하는 그. 우리는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파이팅하자며 각자의 길을 향했다.
지난 7월, 전국마라톤대회가 열렸던 고래불해수욕장이 보였다. 별곡지구였다. 덕천은 영리보다 관광객이 많았고 별곡은 덕천보다 북적거렸다. 별곡지구 고래불해수욕장은 모래가 낮게 깔려 있었다. 어느새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했고 하늘이 흐려지더니 한 두 방울 비를 뿌렸다. 땡볕에 달궈졌던 몸이 춤을 추었다.
  모처럼 둥근 테이블에 앉아 여행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비박을 하기 위해 텐트를 쳤다. 꽁치통조림에 라면을 넣어 만든 안주로 들이켜는 한 잔 소주는 여름밤의 추억으로 남을지어다. 여행은 ‘여기서 행복’이라는 줄임말 아니겠는가?
푸르스름한 새벽이 슬금슬금 다가와서 여행자들을 깨우기 시작했다. 밤새 밤바다 정취에 취했던 다른 텐트에서는 미동이 없다. 잠자리가 불편해서 인지 몸이 찌뿌둥했다. 그러나 가야할 길이 있다. 후포항으로 향했다. 날씨가 맑다. 
용머리공원에도 인기척이 없다. 조용한 해변을 걷다보니 칠보산 휴게소가 나왔다. 아침식사를 하고 발길을 옮기는데 생태문화관광도시 울진이라고 써져 있는 큰 광고탑에는 대게가 여행자들에게 “날 잡셔보이소“하는 것 같았다. 영덕군도 대게, 울진군도 대게다. 대게는 우리지역이 진짜 특산물이다. 고 서로 자랑하는 듯 보였다. 동해에서 잡은 대게인데 영덕이나 울진이나 다 같은 대게가 아닐까? 
영덕과 울진 경계 도로변에는 배롱나무꽃이 눈을 시리게 했다. 저 멀리 후포항이 보였다. 피서철을 맞은 해안 숲 사이로 햇빛이 반짝였다.
(8.8.~8.9. 울진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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