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노라 <br>▲‘그림으로 만나는 서양사’인문학 강사<br>▲‘벗에게 가는 길’인문학 공간 대표<br>
안노라 
▲‘그림으로 만나는 서양사’인문학 강사
▲‘벗에게 가는 길’인문학 공간 대표

 

인간의 슬기는 시간의 허리를 끊어 마디를 만들고 마디의 이름을 ‘새해’라 지었습니다. 오랜 세월을 통해 자연의 순환 주기를 깨닫게 되고, 월령에 따른 농경문화가 형성된 것도 이유겠지만 지루함을 싫어하고 동일한 반복을 고통스레 여기는 인간의 본성을 배려한 삶의 지혜지요. 우리의 조상들은 한 해가 다하는 마지막 날을 섣달 그믐이라 하고 이 날은 잠을 자지 않았습니다. 그믐 밤 잠을 자면 이어오는 새 해, 새 날을 맞이할 수 없고, 그것은 영원히 잠을 자는 죽음을 뜻하는 거라 여겼습니다.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과거와 현재로 이어지는 시간의 영속성을 믿어서였을까요? 섣달 그믐엔 집안 곳곳에 불을 피우고 얘기꽃을 피우며 밤을 지새웠습니다. 어린 아이들이 곤해 졸면 “오늘 자면 눈썹이 희게 센다”고 해 재우지 않았습니다. 또 야광귀에 대한 전설도 전해 주었지요. 야광귀는 섣달 그믐 밤에 집집을 돌아다니며 자신의 발에 꼭 맞는 신발을 찾는다지요. 야광귀가 발에 맞는 신발을 신고 가면 그 신발 주인은 한 해 운수가 나쁘다는 말에 신발을 방 안에 들여 놓느라 한바탕 법석을 떨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혹시 그 예방법도 들으셨나요? 야광귀는 호기심이 많아 마당에 체를 걸어 놓으면 체의 구멍을 세고, 잊어버리고, 세고, 잊어버리다 날이 밝아 도망간다고요. 
그렇게 도란도란 해학과 정감이 넘치는 섣달 그믐이 지나갑니다. 정월 초하루, 다시 시작하는 첫 날엔 새해 계획을 세우고, 각오를 다지며, 잠시 소원했던 가족, 친인척들과 만나 떡국을 함께 먹었습니다. 설날에 가래떡을 먹는 건 긴 가래떡처럼 수명이 길어지기를 바라는 염원이 담겨 있지요. 또 앞길이 트이고 좋은 기(氣)를 받으라는 의미로 아이들의 머리에 검정색 복건과 함께 오방장 두루마기를 입혔습니다. 
우리의 명절 ‘설’입니다. 
그림을 보세요. 멀리 북악산이 보이고 광화문과 해태가 서 있네요. 앞 쪽에는 풍차를 쓴 젊고 기품 있는 어머니와 고운 설빔으로 차려입은 오누이가 있습니다. 어린 남자아이는 풍선을 부느라 뺨이 한껏 부풀어 있고 누이는 그 모습을 다정하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1921년작, 엘리자베스 키스(Elizabeth Keith 1887~1956)의 <정월 초하루 나들이>입니다. 이 작품은 채색 목판화입니다. 그런데도 목판화의 한계를 넘어 디테일이 살아있는 세밀한 묘사가 돋보입니다. 명절임에도 요란하지 않고 차분한 분위기에는 옅은 슬픔이 배어나옵니다. 엘리자베스 키스는 구한 말, 3.1운동 직후였던 1919년 3월에 우리나라를 처음 방문했습니다. 그녀는 서울, 평양, 함흥, 원산 등지를 여행하며 그림을 그렸습니다. 
영국인이었던 그녀는 불행하고 야만적인 시기를 살고 있던 조선의 남자와 여자들을 서양인의 편견 없이 그려 냅니다. 그녀는 시대의 우울과 정서 속으로 깊이 들어가 조선 산천의 아름다움에 공감했고 조선인의 굳센 기상과 품격, 삶의 모습을 그림에 담았습니다. 1921년과 1934년 두 차례에 걸쳐 개인전을 열기도 했지요. 바래고 시들어가는 조선의 마지막 풍경들이 그녀의 따뜻한 붓질로 생생히 살아납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땅의 신비스러운 아름다움이란... 별조차 새롭게 보인다”
설날이 왔습니다. 새 날입니다. 가족들과 떡국을 나눠 먹으며 정담을 나눕시다. 그리고 도깨비가 체 구멍을 세는 동안, 엘리자베스 키스의 그림 속 남자아이처럼 볼이 빵빵하게 희망을 불어보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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