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노라 <br>▲‘그림으로 만나는 서양사’인문학 강사<br>▲‘벗에게 가는 길’인문학 공간 대표<br>
안노라 
▲‘그림으로 만나는 서양사’인문학 강사
▲‘벗에게 가는 길’인문학 공간 대표

 

수고하지 않고는 그 누구도 사랑할 수 없다고 하지요. 나박나박 도마 위를 디디는 바쁜 손길로 인해 반갑고 그리운 얼굴이 모이는 설이 더 풍성했으리라 여겨집니다. 어릴 적, 눈 나리는 장독대에선 자박자박 동치미가 살얼음 밑에서 익고 은은한 장지문에 술상을 마주한 집안 어르신들의 그림자가 비치었지요. 애틋한 매화 향처럼 추억되는 시간 한 가운데, 항상 부엌과 안방을 오가는 ‘엄마’의 종종걸음이 있었습니다. 푸짐하고 빛깔고운 차례 상에는 몸단장 한번 없는 엄마가 숨어 있었지요. 오늘은 누구에게나 헤프게 나눠줘서 인지, 누구도 값을 쳐 주지 않았던 ‘엄마의 수고’와 ‘정성’을 깊고 그윽한 눈으로 담은 화가를 소개합니다. 
박완서는 6.25 전쟁 이후 모두가 가난하고 남루했던 시절, 미8군 PX에서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나목>이라는 소설을 썼습니다. 그 소설의 모티브가 된 그림이 박수근(1914~1965)의 작품 <나무와 두 여인>입니다. 소설 속 경아는 전쟁으로 인해 대학을 휴학하고 PX에 일하게 된 자신의 처지를 몹시 불우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미군의 초상화를 그려주며 생계를 잇는 화가들을 마음속으로 ’환쟁이‘라고 업신여겼지요. 그런데 ’옥희도‘라는 화가를 만나고 그에게 끌리게 됩니다. 유난히 말이 어눌하고 현실감각이 부족한 그에게서 왠지 모를 ‘고독하지만 열렬한 예술적 에너지’를 느끼게 되지요. 그리고 우연히 그의 집을 방문해 가지런한 숨결의 투박한 고목 그림을 보게 됩니다. 
박완서는 소설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무 옆을 두 여인이, 아기를 업은 한 여인은 서성대고 짐을 인 한 여인은 총총히 지나가고 있었다. 내가 지난 날, 어두운 단칸방에서 본 한발 속의 고목, 그러나 지금의 나에게 웬일인지 그게 고목이 아니라 나목이었다. 그것은 비슷하면서도 아주 달랐다. 김장철 소스리 바람에 떠는 나목, 이제 막 마지막 낙엽을 끝낸 김장철 나목이기에 봄은 아직 멀건만 그 수심에 봄에의 향기가 애달프도록 절실하다” 
그럼 이제 봄의 향기가 애달프도록 절실한 겨울 나목을 우리의 눈으로 찬찬히 들여다 볼까요? 겨울 나무 한 그루가 서 있습니다. 모든 걸 떨어뜨려 가릴 것도 숨길 것도 없이 맨몸 그대로입니다. 삭풍에 온 몸을 내어 맡기고도 떨지언정 피하지는 않을 듯합니다. 그 아래엔 아기를 업은 여인과 머리 위에 짐을 이고 가는 여인이 있습니다. 두 여인 사이에는 아무런 연대도 보이지 않지만 아이를 업고, 짐을 이는 행위 자체가 이미 일상을 짊어진 여인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고단한 시절을 살아낸 우리의 엄마들처럼. 화면은 바위 질감을 나타내는 두꺼운 마티에르 효과로 인해 함축적인 선에 진중한 깊이가 더해졌습니다. 
박수근은 일하는 여인을 그렸습니다. <빨래하는 여인>, <절구질하는 여인>, <기름장수>, <시장 사람들>외에도 많은 작품에서 그의 여인들은 쉬지 않습니다. 그녀들의 등엔 아이가 있고 머리엔 짐이 있고 손엔 팔아야 할 물건이 쥐어져 있습니다. 삶의 부당함에 보채거나 투정 부리지 않고, 아픔에 요란하지 않고, 오해를 받더라도 굳이 말하지 않는 뒷모습에서 담담하고 굳센 사랑이 느껴집니다. 설에 어머니께 갔더니 몸의 물기가 말라 쥐면 한 줌이 못 될 것 같았습니다. 한 줌 안에 봄이 숨어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목>을 쓰다듬습니다.

저작권자 © 경기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