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산 주광현
효산 주광현

 

5일간의 설 연휴가 끝나고 또 한 주일이 지났다. 명절에 친·인척끼리 만나면 덕담이 오고 가게 된다. 이때 친·인척 사이에 부르고 가리키는 호칭과 지칭이 있다. 
이모의 남편을 ‘이모부’ 고모의 남편을 ‘고모부’라고 하는데 이는 조선 시대 때 ‘남존여비’의 사상에 의해 만들어진 속(俗)된 호칭과 지칭이므로 반드시 바꿔야 한다.
  조선시대 문화 중 잘못된 악습(惡習)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관존민비(官尊民卑)’이고 또 하나는 ‘남존여비(男尊女卑)’이다.
‘관존민비(官尊民卑)’는 ‘관리는 높고 귀하며 백성은 낮고 천하다고 여기는 생각이다.’
  관리는 그러잖아도 권력을 가진 자들인데 이들에게 권력을 더 휘두를 수 있도록 힘을 보태주는 사상이 ‘관존민비(官尊民卑)’이다. 
다음으로 ‘남존여비(男尊女卑)’는 ‘사회적 지위나 권리에 있어 남자를 여자보다 우대하고 존중하는 일이다.’ 이런 사상적 배경이 있기에 출생부터 ‘남아 선호 사상’은 자연 발생적이었다. 일제 강점기가 끝나고 시대가 바뀌어 ‘남녀평등’을 부르짖었지만 구호에만 그칠 뿐 현실과는 거리가 멀었다. 교육을 시키는 데도 남녀의 차별은 극심했다. 한 집 자식들 중에도 남아(男兒)는 학교를 보내는데 여아(女兒)는 학교를 보내지 않고 집에서 가사(家事)를 돕도록 했던 것이다. 남녀 차별은 두메산골이나 농어촌일수록 더욱 심했다. 심지어 밥상에서까지 차별을 했다. 남자들은 밥상을 차려 주고 여자들은 밥상이 없이 방바닥에다 차려 놓고 식사를 했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집은 여자들도 밥상에서 식사를 하도록 했지만 남자들과는 달리 여자들만 따로 밥상을 차렸다. 밥도 남자들은 쌀밥인데, 여자들은 보리밥이거나 잡곡밥이고 반찬도 고기류와 괜찮은 반찬은 남자들 상으로 보내고 여자들은 변변찮은 반찬만 가지고 식사를 했었다. 이게 우리의 지난날 아픈 역사이다. 
지칭이나 호칭에 있어서도 ‘남존여비(男尊女卑)’ 사상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게 ‘이모부’와 ‘고모부’이다. 이모부(姨母夫)나 고모부(姑母夫)는 ’이모 남편‘이나 ’고모 남편‘이라는 속된 지칭이다. 
이모와 고모는 누구인가? 이모는 어머니의 자매이고, 고모는 아버지의 누님이거나 여동생을 말함은 다 아는 일이다. 그러기 때문에 이모와 고모의 남편은 자기 부모의 항렬과 같은 반열(班列)에서 ‘숙(叔)자를 넣어서 이모 남편은 ‘이숙(姨叔)’ 고모의 남편은 ‘고숙(姑叔)으로 지칭하고 호칭해야 논리에 맞다. 
그런데 이모와 고모는 여자이기 때문에 ‘남존여비(男尊女卑)’ 사상에 따라 인격적으로 하대(下待)를 받아야 했다. 아무리 금쪽같이 귀한 혈육일 지라도 딸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우대받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하물며 딸에게 딸려 온 사위에게 예를 갖춰 융숭한 대접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해서 사위는 ‘김서방, 이서방, 최서방, 박서방….’ 등으로 하대하여 부르게 됐다. 딸의 하대(下待)는 다음의 대(代)로 이어진다. 그 예가 바로 ‘이모부‘ 또는 ’고모부‘로 하대(下待)하여 지칭하게 된 까닭이다. 이모와 고모가 부모 항렬이면 그의 남편들도 당연히 부모 항렬이어야 하거늘 ‘남존여비(男尊女卑)’사상으로 그렇게 존대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모 남편이라는 뜻의 ’이모부‘ 고모 남편이라는 뜻의 ‘고모부’로 지칭하게 된 것이다. 여자라는 이유로 여성을 하대하지 않으려면. 말부터 고쳐야 할 것이다. 말은 얼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국립국어원에서 남자 위주로 된 호칭을 바꾼다는 뉴스를 들었다. 만시지탄이지만 퍽 다행한 일이다. 무엇이 어떻게 바뀔지 궁금하다. 잘 바꾸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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