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노라 <br>▲‘그림으로 만나는 서양사’인문학 강사<br>▲‘벗에게 가는 길’인문학 공간 대표<br>
안노라 
▲‘그림으로 만나는 서양사’인문학 강사
▲‘벗에게 가는 길’인문학 공간 대표

한국인의 정서를 가장 잘 표현했다는 시인 김소월의 시() <가는 길>입니다.

그립다/말을 할까/하니 그리워/ 그냥 갈까/그래도/다시 더 한번/ 저 산에도 까마귀/들에 까마귀/서산에는 해진다고/지저귑니다/ 앞 강물 뒤 강물/흐르는 물은/어서 따라오라고 따라가자고/흘러도 연달아 흐릅디다려

마음속에 담은 이가 보고 싶은 게지요. 그립다고 말을 해 볼까 생각하니 더욱 그리워지는데 조심스러움에 입은 쉬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다가가지도, 지나치지도 못하는 엉거주춤하는 마음이 애타게 그려집니다. 그저 무심한 강물만 흘러가는군요.

이렇게 그리운 이가 보고 싶을 때, 언제든 볼 수 있도록 하려고 그림이 생겨났다고 해요. 회화의 기원에 대한 오래고 오랜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로마인 플리니우스(Gaius Plinius. 23~79)가 자신의 저서 <박물지>에서 회화는 그림자 그림에서 기원했다는 기록을 남기고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 코린토스에서 도기를 팔던 옹기장이 부타데스(Butades)에게는 디부타데(Dibutade)라는 딸이 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녀가 사랑하는 연인이 전쟁터로 출정하게 됩니다. 고대에 평민이 치루는 전투이니 변변한 갑옷이나 투구도 없이 창 하나에 의지한 보병이거나 배의 노를 젓는 수병 일테니 생사를 장담할 수 없었을 터입니다. 그런데 이 아가씨는 무척 재능 있고 지혜로 왔나 봐요. 출정 전 데이트 때, 연인의 그림자를 따라 윤곽선을 그려 냅니다. 이 그림은 장 밥티스트 레뇨(Jean Baptiste Regnault.1785)가 그린 <회화의 기원>

입니다. 연인의 모습을 기억하려는 그녀의 애달픈 몸짓이 보이시죠? 그녀가 최초의 화가였을까요? 그건 모르겠지만 총명하고 다정한 아가씨였을 것 같습니다. 아버지는 딸이 그린 소묘 위에 생동감 있게 찰흙을 입혀 조각을 만듭니다. 이 작품은 로마에 의해 함락될 때까지 코린토스 시에서 보존했다 나중 뭄미우스(Mummius)라는 로마의 집정관에 의해 님파이온으로 옮겨졌다고 전합니다.

재현(representation)된 이미지가 있으니 그녀는 조각을 바라보며 곁에 있는 듯, 연인을 기다렸겠지요. 이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 회화는 재현에서 시작합니다. 대상을 그대로 복사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지금의 현대미술은 왜 이렇게 어렵게 느껴질까요? 회화의 기원은 재현이었지만 화가들은 만족하지 못했답니다. 자신의 상상력으로 대상을 다시 배열했고 미적 감수성을 동원한 새로운 형식과 표현에 몰두했습니다.

현대의 화가들은 예술작품을 만들고 싶어 했습니다. 진정한 예술은 있는 것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 있는 형식을 통해 예술가의 마음속에 있는 어떤 관념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어린아이들은 일반적으로 어른들보다 노래와 춤을 잘 춥니다. 이 때의 은 어디선가 음악이 들렸을 때, 자신의 몸을 그 음에 맞춰 흥겹고 자연스럽게 반응한다는 거예요. 목청과는 상관없이 흥얼거리며 여과 없이 감정을 표현하는 것도요. 내면에 웅크린 것을 자연스럽게 펼쳐내는 것이 예술과 더 가깝다면 아직은 세상의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 어린아이일 때, 우린 훨씬 더 예술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작권자 © 경기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