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호안산시 중앙도서관장
최경호
안산시청 관광과장

안산을 출발한 지 3시간 만에 삼척에 도착해 관동 팔경 중 한 곳인 죽서루를 찾았다. 죽서루는 고려 때 세워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보물 제213호로 지정된 곳이다.
문을 열고 첫걸음을 내딛으며 옷깃을 가다듬었다. 이른 아침 천년의 시간 속으로 걸어 들어가니 고요하다. 많은 선대들이 누각 밑에 글을 써서 걸었다. 용이 돼 동해를 지켰던 문무왕이 드나들던 용문 앞에 서서 천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았다.  그 시간이 묵직하다.
지난 4월 유채꽃이 만발했던 맹방해수욕장에 초록 물결을 이룬 수수가 눈을 시리게 했다. 해수욕장을 개장했건만 아직은 때가 이른지 썰렁하기만 했다. 3개월 만에 찾은 해파랑길이 낯설어 잠시 갈 길을 잡고 헤맸다. 상맹방해수욕장이 보이는 한재로 올라서는데 헉헉대며 페달을 받는 여성들이 당차 보였다. 강릉에서 왔다는 한 남성은 스탬프를 찍으며 담배를 피워 물었다. 이들도 어쩌면 나처럼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고 있는 중 일 것이다. 그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삼척항에서 1만원에 4마리를 썰은 오징어와 막걸리를 배낭에 꿰차고는 방파제에 앉았다. 바닷바람을 가슴에 들이켜 막걸리 한 잔에 회를 오물거리는 시간이 즐겁다. 여행은 자유다. 
막걸리 힘을 빌려 흥얼거리며 걸어가다 보니 동해의 명물 곰치를 아주머니들이 능숙하게 손질하고 있었다. 비치조각공원에는 이를 환기 시키려는 듯 곰치 조형물이 여행자를 맞이해 주었다. 
며칠 전 인터넷에서 소개했던 작은후진해수욕장을 지나니 삼척해변(삼척항에서 5.7km)이 보였고,  또 1시간을 걸어 올라가니 추암해변(2.6km)이 보였다. 조각 작품이 곳곳에 배치된 추암공원 옆에는 바다에서 우뚝 솟아 오른 촛대바위가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저 멀리에서는 국토종단을 하는 대학생들이 서로를 응원하는 소리가 들렸다. 문득 2003년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안산시지부가 ‘깨끗한 공무원 깨끗한 공직사회’라는 슬로건으로 땅끝 마을 해남부터 임진각까지 내륙 국토종단 했을 때가 떠올랐다. 한 여름에 땀을 뻘뻘 흘리며 걸었던 시간이 벌써 13년 됐고 나는 또 하나의 해안 국토종단인 해파랑길을 걷고 있다.
33코스로 접어들었다. 34코스 시작점인 묵호역까지는 13km. 날씨가 더워 점심식사로 물회를 먹으려고 했는데 음식점이 보이지 않았다. 허기진 발걸음이 더듬거렸다. 동해에 들어서니 도로에 난장이 서있다. 5일장이다. 늦은 점심은 물회에서 시원한 메밀막국수로 바꿨다. 시원한 막걸리를 단숨에 들이키는 여행자들에게 음식점 사장은 버스타고 다니라고 한다. 차비가 없어서 걸어 다닌다는 농을 트고 풀린 다리에 힘을 넣는다. 오늘 종착지를 묵호역에서 거리를 늘렸기 때문이다.
삼척부터 고성까지 동해안으로 연결된 6개 지자체가 이름붙인 낭만가도에는 곳곳이 해수욕장이었다. 동해항을 중심으로 해수부가 실행하는 프로젝트에 반대하는 현수막이 도로변 곳곳에 붙어 있었다. 일방적 행정행위보다는 조금 더디더라도 여러 목소리를 듣는 것이 중요한데 일방적으로 몰아 부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해 상권은 삼척보다 큰 것 같았다. 동해에서 울릉도와 독도를 가는 여객선 항로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독도로 가기 위해서는 울릉도를 가야하고 울릉도를 가기 위해서는 포항이나 동해로 가야하기 때문이다. 
해파랑길을 트레킹하는 여행자들은 도심을 통과하는 구간에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이곳에도 솔밭이 그늘을 드리운 곳이 있었고 철길이 있었다. 드디어 오늘의 종착여행지 묵호항이 보였다. 수협이 보이는 공용주차장 앞에는 민박이라고 써져 있는 건물들이 많았다. 시장도 가까웠다. 시장에서 생선회에 소주 한 잔 털어 넣고 휘적휘적 걸어간 방파제 주변에 관광객들이 옹기종기 앉아 있었다. 어느새 날이 어두어져 있었다. 아버지가 사회보고 엄마는 노래하고 아들은 색소폰을 연주하는 그들은 마지막 곡으로 신중현의 아름다운 강산을 불렀다. 관광객들은 몸을 흔들며 함께 불렀다. 770km 중 532km를 걸어 온 두 다리야 애썼다. 자신의 발전이 반드시 행복이 아니라고 한다. 여행은 자유이고 행복이다. 참 좋다.
어제는 종일 비가 내린다는 일기예보를 비웃듯이 날씨가 좋았으나 오늘은 해무가 짙어서 일출을 맞이할 수 없었다. 오늘은 동해시를 벗어나 강릉으로 접어드는 34코스 여행이다. 옥계시장까지 16km(묵호역-옥계시장, 19.2km)를 걸어야 한다. 해안가에는 밤새 술을 마신 몇몇이 아직도 횡설수설하고 있었지만 고즈넉했다. 일찍 보트를 타고 바다를 한 바퀴 돌며 어달항으로 들어오는 이들의 얼굴은 만족감으로 환했다. 
어달해변을 뒤로 하고 대진항과 노봉해변 그리고 망상해변을 지나쳤다. 망상해수욕장에 와 본지는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듯싶다. 여행자들은 망운산 언저리로 방향을 잡지 않고 가곡해변에서 해안가로 길을 잡았다. 국도에는 동해·삼척고속도로 공사가 한창이었다. 불현 듯 기존도로를 확장해 연결하면 안 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트레킹을 하면서 이중삼중으로 도로가 놓여 진 곳을 볼 때 마다 드는 생각이었다. 
야호! 이른 새벽 투덜거리는 두 다리를 앞세워 묵호항을 출발해서 강릉시 옥계현내시장에 도착했다. 허기진 몸을 이끌고 두부음식집을 찾았다. 강릉하면 초당두부가 맛있는데 우리가 들어 간 음식점의 사장님은 “내가 만든 두부가 진짜여! 직접 수확한 콩으로 집에서 만든 두부는 다른 집에서 파는 것과는 다르다”고 했다. 
옥계막걸리 한 잔을 들이키며 큼직한 두부를 입에 넣고 오물거리며 포만감에 시골장터를 둘러보는 재미를 만끽해 본다. 마침 5일장이 서는 날이라 호박이며 파, 풋고추 등을 가지고 나온 어머니들을 만나 이야기를 건네는 즐거움이 있다. 옥계농협에서 5일장 활성화를 위해 작은 음악회를 열고 농수산물 직거래장터를 열었다. 전통시장과 농협구판장이 상생하는 인상적인 장면이다. 막 쪄낸 옥수수와 감자를 오물거리고 옥계막걸리를 마시며 색소폰 음률에 고단했던 몸을 쉬게 하는 시간은 여행자에게는 꿀맛이다.
32구간 부터 34구간 까지 54km 해파랑길 트레킹을 마쳤다.
나에게 여행은, 자유이고 행복이다. 
(7.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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