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부한 언어들을 몽땅 사전 속에 밀어 넣고 성큼성큼 생명이 숨 쉬는 풍경으로 걸어 들어갑니다. 손닿는 곳마다 물길이 생기고 햇빛에 드러난 색들은 수채화처럼 번집니다. 작고 여리고 순한 것들의 수다가 들립니다. 봄이 쏟아집니다. 봄의 과녁은 우리의 가슴입니다. 조준이 정확한 미사일처럼 심장에 콱 박힙니다. 심장이 하얗고 노란 꽃물을 부지런히 펌프질합니다. 온 핏줄에 봄이 왔습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봄이 왔나요? 
르네상스는 역사의 봄이었습니다. 신이 머무는 높은 제단은 가파르고 추운 겨울왕국이었습니다. 자비가 없는 만큼 양식도 없었고, 완고한 신앙은 아름다움에 적대적이었습니다. 몹시 적막했겠지요. 오늘은 중세의 늙은 겨울을 밀고 새순처럼 갓 돋아난 르네상스를 이끈 산드로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 1445~1510)의 <La Primavera.봄>을 소개합니다. 
이 그림을 보는 순간, 8명의 인물들이 마치 연극의 커튼콜처럼 서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으세요? 나란히 손잡고 관객을 향해 우아한 인사를 할 것 같지요. 이 작품은 일종의 동영상처럼 제작 됐습니다. 여러 사건을 한 화면에 담았다는 얘기예요. 그럼 자세히 볼까요? 오른 쪽에 시퍼런 남자가 볼 가득 힘을 주어 바람을 불고 있습니다. 서풍의 신 제퓌로스예요. 제퓌로스가 꽉 붙잡은 여인은 시스루룩에 입술엔 꽃을 물고 있네요. 빠져나가고 싶지만 겁에 질려 뜻대로 안 되는 것 같습니다. 꽃의 여신 플로리스입니다. 제퓌로스에 잡힌 플로리스는 입술에서 꽃을 토해 냅니다. 플로리스는 곧 봄의 여신 플로라로 변합니다. 마치 성형 후 before, after처럼 보티첼리는 한 화면에 플로리스가 플로라로 변하는 모습을 담아 이탈리아에 서풍이 불면 봄이 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위기에 빠졌던 메디치가가 어려움을 이기고 다시 피렌체의 중심이 됐던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럼, 이제 한가운데, 메디치 가문의 상징인 오렌지 나무를 아치형으로 벌려 후광효과를 안고 등장한 아프로디테를 보세요. 아름답지요. 10등신에 가까운 몸매는 미의 여신답게 우아합니다. 아프로디테의 옆에 잠자리 날개 같은 옷으로 우리의 감각을 희롱하는 여인들은 사랑, 순결,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삼미신입니다. 아프로디테의 분신이지요. 머리 위에는 눈을 가린 에로스가 삼미신중, 순결의 신에게 화살을 쏘고 있습니다. 이제 곧 그녀는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겠지요. 예나 지금이나 봄은 사랑의 계절인가 봅니다. 가장 왼 쪽에는 날개달린 신발을 신고 두 마리의 뱀이 휘감은 지팡이로 어두운 구름을 휘저어 쫒아내고 있는 헤르메스가 보입니다. 그는 상업으로 번성한 메디치가가 특별히 사랑한 상업과 전령의 신이니까요. 평화와 번영의 시기에 액운이 끼면 안 되겠지요. 헤르메스는 자신의 직분을 성실히 수행하고 있는 중입니다. 
보티첼리의 <봄>에는 꽃들이 춤추듯 떠다닙니다. 어떤 꽃도 지치거나 바래보이지 않습니다. 모두 화사하게 저마다의 생명으로 피어오릅니다. 피렌체는 꽃의 도시였고 이 그림은 피렌체 시민을 황홀하게 했을 것입니다. 올 봄에는 심장이 나르는 꽃물로 당신만의 꽃을 피어보면 어떨까요? 거부할 수 없는 사랑의 화살이 그대를 향해 날아오는 눈물겨운 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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