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호안산시 중앙도서관장
최경호
안산시청 관광과장

해파랑길 35코스는 옥계현내시장에서 시작됐다. 옥계면 현내리는 한 달 전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지난달에 왔을 때는 5일마다 열리는 장날이라 어머니들이 손수 가꾼 오이와 애호박 등을 광주리에 이고 이곳에 난장을 차렸었다. 옥계농협에서는 작은음악회를 열고 농민들과 상생할 수 있는 직거래장터를 열어 북적거렸는데 오늘은 적막하기 까지 했다.
  주수천 제방으로 길을 잡는데 방향이 혼돈스럽다. 주민에게 묻고 또 물어 정동진역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옥계시장부터 정동진역까지는 14km. 길가에 단감이 짙초록색을 띄고 벼들은 초록색에서 옅은 노란색으로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어느덧 8월도 하순으로 접어들고 있다. 가슴에서 오세영 시인의 <8월의 시>를 꺼냈다. 시인은 “세상은 한창 초록색으로 법석이는데 8월은 정상에 오르기 전 한 번 쯤 녹음에 지쳐 단풍이 드는 가을 산을 생각하게 한다”고 노래했다. 
길 안내표시가 제대로 돼 않아 몇 번이나 헛발걸음을 했다. 철이 지난 옥계해수욕장은 철시를 앞두고 한산했다. 심곡어촌마을에서는 관광객들을 위해 마을 뒷산에 산책로를 조성해 놓았다. 문뜩 올해 조성한 풍도어촌체험마을이 떠올랐다. 풍도에 해보고 싶은 것이 많았으나 실질적으로 별 도움을 주지 못했었는데 풍도 주민들은 나를 친근하게 대해 주었다. 풍도를 한 바퀴 도는 산책로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해파랑길은 해안가로만 이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마을과 마을로 이어져 있고 때로는 산 중턱으로도 길이 이어져 있었다. 헉헉대며 산중턱을 오르니 땀이 비 오 듯했다. 올해 경산시 하양읍 최고기온은 40.2℃. 112년 만에 가장 높은 기온을 나타냈다. 열대야 현상이 한 달 동안 이어지며 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있다. 생태학의 근본법칙은 한 마디로 “모든 것은 서로 연결돼 있다”라고 정의하는 학자들이 있다. 사람들은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고 나무를 베어내는 등 자연 환경을 오염시키고 파괴한 댓가를 받고 있는 것이다. 다행스럽게 이곳 동해안은 기온이 내려 가 있었지만 내리쬐는 햇빛은 날카롭다. 점심 지나 정동진에 도착했다. 배꼽시계가 울렸다. 강릉은 초당두부가 유명하다. 옥수수로 만든 신사임당 막걸리 한 잔에 초당두부를 오물거리고 후루룩 들이키는 콩국수가 피로를 가셔 주었다. 
정동진 박물관에는 아주 오래된 시계가 놓여 있었다. 그 시계를 보고 있노라니 지나 간 시간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내가 관광 업무를 맡았던 시간은 3년 7개월. 스스로 원해 하루 3시간 출퇴근했던 대부해양관광본부에서의 지나 간 시간이었다. 원하지 않았는데 왜 정보통신과로 이동하게 됐을까? 궁금해진다. 내가 했던 일들이 미덥지 못했을까? 무슨 잘못이 있었나? 여행은 자신과 직면하는 시간을 갖게 한다고 한다. 
정동진역이 보이는 언덕 위에 영인정이라는 정자가 보였다. 뜨거운 햇빛으로부터 잠시 몸을 쉴 수 있는 장소로 정자를 선택했다. 수평선이 부채처럼 펼쳐져 있는 곳에서 바람이 살랑 불었다. 오침은 꿀맛이었다. 햇빛은 더욱 강렬했지만 가야 할 길이 있었다. 
아우대! 아름다운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약칭 깃발을 들고 열 명이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여학생 한 명을 포함한 중앙대 수학과 2학년 대학생들이었다. 녀석들은 지난해는 포항 구간을 걸었고, 올해는 1주일 계획으로 삼척에서부터 걷고 있었다. 배낭이 묵직해 보였고 배낭 뒤에는 양말 등 빨래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2003년 공무원노동조합 안산시지부가 국토종단 했던 때가 떠올랐다. 저 녀석들은 왜 걷는 것일까? 파이팅하는 나에게 환한 얼굴로 화답한다. 6.25 남침사적탑이 보였고 북한에서 침투했던 잠수정이 보였다. 쾌방산을 끼고는 안보체험관광지가 조성돼 있었다. 
안인진리 해수욕장 주위에 바다가 보이는 곳에 방을 얻었다. 모텔 옥상에 탁자를 펼치니 근사한 저녁 테이블이 만들어졌다. 수평선 너머에서 달이 뜨고 있었다. 구름 속을 비집고 나온 빛이 환상이다. 
고단한 몸이 알콜까지 흡수해서 깨지 않고 숙면했다. 이른 아침 안인진리를 출발해서 연꽃단지로 향했다.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해 동네 사람에게 길을 물어 길을 잡았다. 보이지 않던 해파랑길 표식이 보였다. 잃었던 물건을 찾은 기분이다. 병사들이 해안가를 수색하고 있었다. 우리는 점점 한반도 북쪽으로 올라가고 있다. 각자 생각에 잠겨 길을 걸었다. 연꽃단지에 들어섰는데 비가 후두둑 연잎 위로 떨어졌다. 이참에 쉬어 가라는 것 같았다. 모처럼 듣는 빗소리다. 평안하다. 
국도에는 강릉 6km라고 표시가 있었지만 해파랑길 표식이 끊겼다. 그 길은 정해진 길이 아니었다. 삶도 때로는 정답이 없을 지도 모르겠다. 
하늘이 맑다. 뭉게구름을 보면서 7월 28일부터 맡게 된 정보통신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생각해 본다. 요즘 정보통신의 화두는 클라우드다. 용어가 낯설고 한편으로는 새롭다. 나는 이 새로운 영역에서 무엇을 해야 할까? 내 삶을 리셋하자.
8.20. - 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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