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노라 <br>▲‘그림으로 만나는 서양사’인문학 강사<br>▲‘벗에게 가는 길’인문학 공간 대표<br>
안노라 
▲‘그림으로 만나는 서양사’인문학 강사
▲‘벗에게 가는 길’인문학 공간 대표

 배는 닻을 필요로 하지요. 어떤 배도 쉬지 않고 항해를 할 수 는 없을 테니까요. 바다와 맞닿은 하늘에 시커먼 구름이 몰려오고 새의 날개를 젖게 하는 물기 많은 바람이 불어올 때, 배는 항구로 돌아옵니다. 
배 안에는 깊은 바다로부터 건져 올린 마법의 주전자와 용맹한 기사들의 검과 세이렌의 달콤한 목소리가 실려 있지요. 
촛대의 초가 너울거리고 선장과 선원들이 열기에 들 뜬 목소리로 지난 항해를 추억할 때, 이야기에 넋이 홀린 사람들의 마음 역시 몹시 흔들렸겠지요? 이미 아득한 바다에 그물을 던지고 두 손은 바람에 펄럭이는 돛대를 잡고 있었을 지도 몰라요. 
그런 순간에도 배는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싣고 조용히 떠 있답니다. 
왜냐하면 닻을 내린 배는 다음 항해를 준비하거든요. 화가들도 그랬습니다. 작품을 끝내고 나면 새로운 작품을 향해 눈을 돌렸지요? 
무언가 새롭고 낯선 것, 그래서 자신의 감각을 깨울 수 있는 어떤 것으로요. 오늘은 인내심 있는 관찰로 주변에만 머물던 것을 중심의 자리에 실수 없이 옮겨놓은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urer 1471~1528)의 산토끼(Fedlhase)를 소개합니다. 
토끼의 두 귀는 쫑긋 세워져 있고 앞발은 가지런히 모아져 있어 달릴 의지는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의젓한 풍모는 토끼라기보다 호랑이 같군요. 
길들여지지 않은 산토끼여서일까요? 첫 눈에 보기에도 섬세한 붓 터치가 느껴질 정도로 구체적이고 세밀하게 그렸습니다. 바람이 불면 털 위로 ‘바람 길’이 보일 정도로 토끼 털 하나하나가 생동감 있습니다. 
수염은 가늘고 길며 자연스럽습니다. 
세 개의 붓 자국만으로 하늘 담은 창문을 그려 넣은 눈은 지긋이 앞을 보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A4용지 정도의 작은 그림입니다. 이렇듯 작은 사이즈의 그림에 토끼의 눈에 비친 창문까지를 그려 넣은 뒤러의 표현력과 집요한 관찰력에 탄복을 금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이 작품은 동물을 단독 주인공으로 캐스팅한 최초의 동물화입니다. 
르네상스 시절, 수많은 신화와 종교의 우상들이 이두박근과 대퇴근을 뽐내며 인간신체의 아름다움과 성령의 완전함을 숭배할 때, 토끼의 눈과 귀와 털과 앞가슴과 뒷다리를 그리고 있었을 뒤러의 모습은 이어 도래할 과학과 이성의 시대를 예비하는 예술가의 선견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알브레히트 뒤러는 당시 유럽을 통틀어 최고의 판화가이자 제도공이자 화가였습니다. 
그는 귀족이나 종교단체의 주문제작 방법이 주는 경제적 예속을 피해 개인의 시장판매를 시도한 ‘최초의 상업화’의 길을 열었습니다. 
작품 하단에 <1502 AD>라는 이니셜이 보이지요. 그는 자신의 이름 이니셜인 A와 D를 결합한 모노그램을 만들었습니다. 
일종의 고유상표였고 로고였지요. AD 서명이 없으면 뒤러의 작품이 아니었으니 저작권의 시초이기도 했습니다. 
자신의 이름을 넣은 판화는 대량생산이 가능했고 대중들도 자신의 집에 어울리는 그의 그림을 갖고자 했거든요. 그는 경제와 신분에 예속됐던 ‘그림을 잘 그리는 장인’의 굴레를 벗어나 ‘화가란 생명과 인식을 탄생하게 하는 창조자’라는 말을 하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16C 유럽의 미술사는 ‘알브레히트 뒤러’라는 닻을 내려놓고 다시금 미지의 세계를 떠날 준비를 했습니다. 그들이 돛을 펴고 노를 저어 닿은 곳은 성경의 귀퉁이에 있던 인간의 땅, 바로크의 시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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