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여순사건 당시 처형된 민간인 희생자들이 71년 만에 다시 재판을 받아 명예를 회복할 수 있게 됐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1일 고(故) 이모씨 등 3명의 재심 인용 결정에 대한 재항고 사건에서 재심 개시를 결정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증거 취사선택과 증명력은 사실심 법원의 자유판단 영역이고, 형사재판에서 심증 형성은 반드시 직접 증거로만 해야 하는 건 아니다”라며 “검사는 원심의 사실인정이 잘못됐다는 이유로 재항고했는데, 법원의 자유판단에 속하는 증거 선택과 증명력에 관한 판단을 다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 2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김명수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여순사건 재심 인용 결정에 대한 재항고 등 전원합의체 판결을 위해 앉아 있는 모습.
▲ 2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김명수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여순사건 재심 인용 결정에 대한 재항고 등 전원합의체 판결을 위해 앉아 있는 모습.

 


이어 “기록에 따르면 여순사건 당시 군경에 의해 무차별적으로 민간인 체포·감금이 이뤄졌고, 이씨 등이 연행되는 과정을 목격한 사람들의 진술도 이에 부합한다”며 “구속영장 발부 없이 불법 체포·감금했다고 인정한 원심 판단은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판결서가 남아있지 않아 재심할 수 있는 대상 사건이 없다는 점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판결서가 판결 자체인 것은 아니고, 판결서가 미작성됐거나 없어졌더라도 선고된 이상 판결은 성립한 것”이라며 “유죄 확정판결인 이상 재심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전제했다. 이어 “이씨 등의 판결이 선고되고 확정·집행된 사실은 판결 내용과 이름 등이 기재된 판결집행명령서, 당시 언론보도로 알 수 있다”며 “판결서 원본 작성과 보존 책임은 국가에 있다”고 판단했다.  


또 “계엄령에 따라 설치된 군법회의에 대해 위헌·위법 논란이 있지만, 국가공권력의 사법작용으로 군법회의를 통해 판결이 선고된 이상 판결 성립은 인정된다”면서 “재심을 통한 구제를 긍정하는 게 재심제도 목적에 부합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여순사건은 1948년 10월 여수·순천 지역에 주둔하던 14연대 군인들이 제주 4·3사건을 진압하라는 이승만 대통령 지시를 거부하면서 발생했다.
당시 국군은 지역을 탈환한 뒤 반란군에 협조·가담했다는 이유로 민간인들을 내란죄로 군사재판에 넘겨 사형을 선고했고, 이 과정에서 다수 희생자가 발생했다.
박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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