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네이버】
【출처 = 네이버】

 

안노라 <br>▲‘그림으로 만나는 서양사’인문학 강사<br>▲‘벗에게 가는 길’인문학 공간 대표<br>
안노라 
▲‘그림으로 만나는 서양사’인문학 강사
▲‘벗에게 가는 길’인문학 공간 대표

 

문제를 하나 내어 볼까요? 이 그림에 있는 병아리는 모두 몇 마리일까요? 벌써 한 마리, 두 마리 하고 세고 계시지요? 모두 열 네 마리입니다. 무얼 하나 볼까요?

무조건 엄마 품속으로 파고드는 놈, 깨진 사발에 아슬아슬 주둥이 대고 물 마시는 놈, 목마른 게 가시니 눈 가늘게 뜨고 먼 데 쳐다보는 놈, 실지렁이를 꽉 물고 가는 다리 버팅기며 서로 기 싸움 하는 놈, 멀찌감치 서서 형제들 소란 지켜보는 놈, 그리고 엄마가 언제 저 맛난 먹이를 주려나 하고 목이 빠지게 기다리는 놈, 하늘보고 멍 때리는 놈, 자식이 많으면 오롱이조롱이 라더니 열네 마리 병아리들의 모습 하나하나가 친근하고 조밀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화면 중앙에는 풍성하고 윤기 나는 꽁지깃을 바짝 세우고 새끼 병아리들을 자애로운 눈으로 바라보는 어미 닭이 있습니다. 어미 닭의 표정 좀 보세요? 마치 “에고, 요 이쁜 것”하는 목소리가 들릴 듯 하지 않으세요?

어미 닭은 벌 한 마리를 물고 있습니다. 병아리들은 어미의 부리에 달린 먹이가 언제 내게 오나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부리를 중심으로 앙증맞은 병아리들이 빙 둘러 어미가 음식을 잘게 부숴 알맞은 크기로 나누어 줄 때를 얌전히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마당에서 사립문짝 바라보며 엄마를 기다리는 코흘리개 형제들 같습니다. 천진하지요. 이렇듯 섬세하고 탁월한 묘사가 가능했던 화가는 누구였을까요?

닭의 묘사에 있어서는 신의 경지에 들어섰다는 평을 들은 화재(和齋) 변상벽(卞相璧 1730~?)의 <모계영자도 母鷄領子圖>입니다. 변상벽은 말을 더듬었습니다.

부끄러움도 많이 탔습니다. 남 앞에 나서는 것을 꺼려 동무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습니다.

코끝에 땀이 똑 똑 떨어지도록 몰입해 그림을 그렸지만 인기척이 나면 그리던 것을 멈추고 숨어 버렸습니다.

하지만 변상벽의 어머니는 이런 숫기 없고 소심한 아들의 성정 안에 감춰진 남다르고 탁월한 재능을 알아보았습니다. 할아버지 때부터 기운 가세를 말없이 감당하며 아들을 뒷바라지 해 줍니다.

어둠을 물리치고 새벽을 알리는 특성으로 인해 고래로 닭은 잡귀들을 물리치는 벽사의 상징으로 쓰였습니다. 또 붉고 당당한 볏은 높은 관직을 의미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호랑이와 더불어 한 해의 액을 막고 복을 지키는 세화(歲畵)의 모델이었지요. 조선의 국왕들은 새해 아침, 신하들에게 닭과 호랑이 그림을 선사 했습니다. 변상벽은 도화서 화원이 되어 궁중에서 필요한 그림을 그렸는데 그가 그린 고양이와 닭은 여느 화원의 그림과는 달랐습니다. 그의 영모화(翎毛畵)에는 훑어본 자가 아닌, 애정을 가지고 지켜본 자만이 표현할 수 있는 우리의 정서가 배어나옵니다.

“서양화가는 대상의 형태를 파악하기 위해 관찰하지만 동양화가는 대상을 이해하기 위해 관찰 한다.”고 합니다.

다시 그림으로 가 볼까요? 암탉의 눈을 보면 한낱 미물임에도 지극한 모성애를 느낄 수 있습니다. 변상벽에게 변계(卞鷄)라는 별명이 붙은 것은 그가 대상을 깊이 있게 이해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어머니의 헌신이 주는 마음을 이해했기에 저토록 자애로운 암탉의 표정을 그릴 수 있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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