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호안산시 중앙도서관장
최경호 안산시청 관광과장

대포항은 북적거리지 않았다. 예전 모습이 아니었다. 여행자들은 대포항을 지나 외옹치해변을 거쳐 속초해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늘은 삼포해변까지 걷기로 했다. 만만치 않은 거리다. 쌀쌀할 것이라던 예보와는 달리 햇빛이 들어서 포근했다. 많은 사람들이 겨울 해변을 거닐고 있었다. 격랑의 세상과는 달리 바다는 평온해 보였다.

금강대교가 보였다. 대교에 오르니 속초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왔다.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전 이곳은 한반도 북쪽이었다.

함경도에 사셨던 분들은 전쟁이 끝나면서 이곳에 정착하였고 고향에서 먹었던 순대를 브랜드로 만들어 아바이마을을 만들었다. 함경도순대를 먹어 보고 싶었다. 마을에서는 이 봅세~날래 오기오!”라며 여행자를 꼬드겼다. 혈혈단신 남쪽으로 넘어 오신 선친께서도 생전에 이 보오 날래날래 오라우!” 라고 말씀하시고는 했다. 사임당막걸리를 들이켜고 남쪽에서 유명한 병천순대 맛과 버금가는 북쪽의 아바이순대를 오물거리는 맛이 좋다.

속초항을 지나 영금정길로 접어드는데 아주머니들이 오징어가 싱싱하다고 발걸음을 잡는다.

1만원에 다섯 마리를 썰어서 소주 몇 잔을 마시니 엿장수가 흥을 돋는다. 선착장에서는 그물에서 양미리를 떼어 내고 있었다. 11월 양양은 도루묵, 12월 속초는 양미리가 풍년이었다.

영금정에는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동명항 갯바위를 영금정이라 불렀는데 해안으로 이은 길을 영금정길이라 불렀다.

파도는 바다에서 포말을 이뤄 뭍을 위협했다.

봉포항을 지나니 관동8경 중 한 곳인 청간정과 거울 속에 정자가 있다할 만큼 빼어나 고성 제2경이 된 천학정(天鶴亭)이 기암절벽 위에서 노을을 머금고 있었다.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여행자들은 발걸음을 빠르게 옮겼다. 철이 지나 문을 연 호텔이 없어서 삼포해변의 해변민박까지 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능파대에서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능파는 미인의 걸음걸이라고 했다. 바위들이 풍화작용을 받아 암석의 표면이 벌집 모양으로 변한 아름다운 장관을 이룬 곳에서 아무리 급하더라도 급히 지나칠 수 없었다.

오후 530분이 지나니 급격히 어둠이 내려앉았다. 여행자 발걸음이 경보선수 같이 어둠을 갈랐다. 대포항에서 삼포해변까지 30km 이상 걸은 다리가 뻐근했다. 민박 베란다를 여니 검은바다는 쉴 새 없이 지난 추억을 불러내고 있었다.

다음날, 주섬주섬 배낭을 챙기고 속풀이 라면을 끓여 아침밥상을 차렸다. 밖으로 나왔지만 바다는 아직도 칠흑 같다.

송지호로 향했다. 서서히 어둠이 물러나며 동해바다의 기운이 송지호로 몰려오고 있었다. 여행자들은 발걸음을 멈추고 동쪽을 바라보았다. 왕곡마을로 가는 길에서 아름다운 장면을 맞이한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왕곡마을은 강릉 최씨 집성촌이었다. 산 밑에 꽤 크게 둥지를 튼 마을이다. 14세기부터 마을이 만들어졌지만 19세기에 자 북방식 한옥이 들어섰다는 왕곡마을은 고즈넉했다.

영화<동주> 촬영을 했던 방앗간이 보였다. 영화 <동주>가 클로즈업 되었다. 동주를 만난 후 나는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읽으면서 윤동주의 채취를 느끼고자 했었다. 시인을 생각하게 하는 아침이다.

왕곡마을을 벗어나니 저잣거리가 보였고 논으로 이어지더니 공현진항과 가진항이 보였다. 가진항 아침은 분주했다. 바다에서 건저 낸 도치가 함지에서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겨울의 별미는 도치두르치기라고 했다. 이번 여행의 목적지인 간성시내가 보이고 있는데 나는 이번 여행에서 구상하려고 했던 내년도 계획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더덕막걸리에 황태해장국 먹을 궁리를 하고 있다.

해파랑길을 벗어나서 조완선의 소설 <천년을 훔치다> 배경이었던 고성1경인 건봉사를 찾았다. 금강산자락에 앉아 있는 천년고찰은 고즈넉했다. 트레킹을 하면서 가보고 싶었던 곳을 찾는 재미가 쏠쏠한 여행이었다.

해파랑길 48코스에서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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