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정권이 1987년 11월29일 발생한 대한항공(KAL) 858기 폭파사건을 대선에 정략적으로 활용하려 한 정황이 30년 전 외교문서를 통해 확인됐다. 
당시 특사로 바레인에 파견된 박수길 외교부 차관보와 바레인 측 논의 내용을 담은 1987년 12월10일 전문을 보면, 전두환 정권이 KAL기 폭파 사건 범인 김현희(하치야 마유미)를 대선(1987년 12월16일) 전에 국내로 데려오기 위해 노력했다. 
박 차관보는 바레인 측 실무자가 "KAL기 잔해도 발견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김현희) 인도가 성급하다는 이야기도 없지 않다"고 말했다고 전하며 "늦어도 (대선 전날인) 15일까지 도착하기 위해서는 12일까지는 바레인 측으로부터 인도 통보를 받아야 한다"고 보고했다. 
'늦어도 15일까지 도착'이라고 시점을 못 박은 것은 대선(12월16일)을 염두에 둔 것으로, 이 사건을 정치적으로 활용하려는 정부의 의도를 짐작케 한다. 
막판에 이송 일정이 연기되자 박 차관보가 "커다란 충격"이라며 "너무나 많은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면서 바레인 측을 압박하기도 했다. 
또 바레인 측이 김현희의 신병 인도에 대한 결정을 미루자 미국이 개입했을 수 있다고 박 차관보가 의심하는 내용도 전문에 담겨있다. 
박 차관보는 바레인 내무장관이 '한국이 대통령 선거로 인해 극히 바쁜 중에 방문해 조속히 귀국해야 할 것으로 이해한다'고 선거를 의식한 발언을 했다고 보고했다.
그는 "마유미의 인도가 선거 이후로 되도록 미국이 바레인 측에 작용했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으니 마유미 인도 문제와 관련해 미국 측에 너무 소상한 정보를 주지 않는 것이 좋을 것으로 사료된다"고 보고했다. 
한편 외교부는 이날 88서울올림픽대회 개최, 대한항공 858기 폭파 사건, 노태우 제13대 대통령 취임식 등의 내용이 포함된 1602권(약 25만여쪽)의 1988년 외교문서를 해제했다. 공개된 외교문서 원문은 외교사료관 내 '외교문서열람실'에서 열람 가능하다. 외교부는 1994년부터 26차에 걸쳐 총 2만6600여권(약 370만쪽)의 외교문서를 공개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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